뚜껑 열린 ‘판도라 상자’ 악취 진동
▲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신정아 씨 오피스텔 내부 복도. 검찰은 압수수색을 통해 여러 가지 단서를 포착했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신 씨 사건을 처음 접한 검찰의 움직임은 상당히 소극적이었다는 게 검찰 주변 관계자들의 공통된 전언이다.
지난 7월 18일 광주비엔날레 측은 광주지검에 신 씨를 고소했으나 검찰의 ‘초반 대응’은 일단 접수된 고소장을 토대로 광주비엔날레가 신 씨를 예술 감독으로 내정하게 된 과정과 허위이력서를 제출하게 된 경위 정도만을 파악하는 수준에 그친 것으로 전해진다.
‘신 씨 사건의 본류는 동국대’라는 전제하에 내부적으로 언론 보도를 살피며 판단을 유보하던 검찰이 신 씨에 대한 본격 수사에 착수한 것은 동국대가 신 씨에 대한 파면 결정을 내리면서다.
당시 동국대 진상조사위원회가 신 씨 임용 과정에서만큼은 비호와 은폐가 없었다고 못 박고, 이를 놓고 부실 조사가 아니냐는 여론이 확산되면서 검찰 수뇌부에서는 신 씨에 대한 직접 조사가 불가피하다는 결론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곧바로 8월 14일 서울서부지검 담당 검사는 신 씨에게 첫 메일을 보내 학교(동국대) 측에서 고소장을 제출했기 때문에 조사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긴급히 연락을 종용했다고 한다.
지난 8월 23일 이후 언론에서 일제히 변 실장이 신 씨 가짜 학위 파문 무마에 나섰다는 의혹을 보도할 당시 이미 검찰 내에서는 변 실장이 신 씨와의 사적 관계 때문에 허위 학력 문제를 제기했던 장윤 스님과 접촉했다는 점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던 상황.
실제 검찰의 차장급 간부와 전직 검찰총장의 점심식사 자리에서도 변 전 실장과 신 씨의 개인적인 관계에 대한 얘기가 비중 있게 오고 간 일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러자 자연스럽게 변 전 실장과 신 씨의 관계가 드러나는 정황을 두고 일부 검찰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청와대와 입장 조율을 해야 할 필요성까지 언급됐다는 후문이다.
변 전 실장 개입 의혹이 불거진 이후 검찰이 변 전 실장에 대한 특별한 조치를 취하지 않고 오히려 장윤 스님 출석 여부에 포커스를 맞추는 기색이 역력하자 일부에서는 청와대와 변 전 실장으로 하여금 압수수색 등 검찰 수사의 후폭풍에 대비, 일정 부분 시간을 벌어주려는 의도가 아니냐는 지적까지 흘러나온 것으로 알려진다.
하지만 지난 9월 4일 검찰의 신 씨 오피스텔 등에 대한 압수수색을 계기로 상황은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다. 검찰은 컴퓨터 등의 압수수색을 통해 변 전 실장과 신 씨의 관계를 비롯해 몇 가지 의혹을 뒷받침할 만한 추가 정황 및 신 씨 행적과 관련한 새로운 사실들을 적잖이 발견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한 언론, 경제계 및 국내외 미술계 전반에 걸친 신 씨의 넓은 인맥과 본인의 위치로는 불가능할 법한 로비를 벌인 단서까지 드러났다는 후문이다.
변 전 실장의 특혜 부분에 대해서는 지난 2005년 변 전 실장이 기획예산처 장관 시절 신 씨를 통해 정부 예산으로 미술작품을 구입한 사실이 확인된 것으로 알려졌다. 기획예산처 장관 비서가 신 씨에게 미술 작품의 적정가 책정까지 일임하겠다는 내용의 메일을 보낸 게 수사의 단초로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이번 압수수색을 통해 지난 6월 말 광주비엔날레 공동 감독을 선정하는 과정에서도 재단 상층부에서 신 씨에게 ‘우호적’인 기류가 형성됐던 사실을 파악한 것으로 전해진다. 광주비엔날레 재단 측이 먼저 미국에 있던 신 씨에게 ‘압축된 후보자’라는 사실을 알려줬고, 해외에 있던 신 씨가 서울로 돌아오는 항공기 비용까지 지원한 정황도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면접날 한갑수 당시 이사장이 대리인을 통해 식사나 같이하자는 다소 친근한 제안까지 전한 사실이 있다는 부분까지 파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갑작스러운 섭외, 그리고 곧바로 이어지는 한 이사장과의 면담 일정이 심상치 않은 대목.
또한 지난 2004년 11월에는 신 씨가 당시 이건무 중앙박물관장에게 공적자금비리로 구속된 김석원 쌍용그룹 명예회장(당시 성곡미술재단 이사장)의 구명을 위해 탄원서를 제출해줄 것을 부탁했다가 거절당한 사실도 압수수색을 통해 파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명예회장은 쌍용그룹 회장으로 재직하던 지난 1998년부터 2000년 사이 쌍용그룹 구조조정 과정에서 쌍용양회 등 계열사의 310억 원대 재산을 횡령하고, 같은 시기에 쌍용그룹의 부실화에 따른 보증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50억 원대의 부동산 명의를 변경해 보관한 혐의(부동산 실명제법 위반)로 2004년 11월 15일 법정 구속된 바 있다.
이번에 압수한 컴퓨터 기록 등을 통해 신 씨의 넓은 인맥도 여실히 드러났다는 후문이다. 신 씨는 몇몇 특정 언론사 기자들과 오랫동안 교분을 나누고 있었으며, 학력 위조 파문이 불거지자 이들 중 일부는 신 씨에게 도움을 주려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또한 신 씨는 가수 C 씨 및 몇몇 미술계 전·현직 교수들과도 상당한 친분을 나누는 사이인 것으로 밝혀졌다. 지난해 모 여대 Y 교수에게 보낸 서신을 통해서 신 씨는 몇 군데 대학에서 자신에게 교수 제의가 왔고 유일하게 동국대에서 성곡미술관과 겸직을 허용했다는 소식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 씨의 동국대 조교수 임용이 특혜투성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들여볼 수 있는 대목이다.
신 씨는 한 사적 모임을 통해서 언론인과 기업체 CEO, 젊은 미술계 교수 등과도 자주 접촉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이 모임 멤버 중에는 검사 출신이자 국내 굴지의 그룹 사장과 예일대 출신 대기업 상무급 인사와 현직 야당 여성 의원도 포함돼 있다는 후문이다.
변 전 실장의 부산고 동창인 박세흠 주공 사장이 대우건설 대표이사 시절 성곡미술관에 3년간 10차례에 걸쳐 2억 9000만 원을 후원한 것으로 드러난 가운데 검찰은 신 씨가 박 대표이사 명의로 외부로 보내는 연하장 초안을 갖고 있던 정황도 발견한 것으로 전해진다. 신 씨가 회사 연하장 디자인 등을 박 대표로부터 의뢰받았을 가능성이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유재영 기자 elegan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