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가 살아 돌아와도 수습 불가”
새정치민주연합이 9월 18일 여의도 국회에서 비대위원장 추천단 회의를 열고 문희상 의원을 신임 비상대책위원장으로 합의 추대했다. 문 의원은 차기 전당대회까지 임시 당대표 임무를 수행한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윤희웅 민(MIN) 컨설팅 여론분석센터장은 새정치연합을 가리켜 “DJ(김대중 전 대통령)가 살아 돌아와도 수습 불가능한 당”이라며 이렇게 진단했다.
“지금 새정치연합은 계파 간 갈등이 고질적인 일상화가 됐다. 당으로서의 목적보다는 계파 유지를 위한 목적이 더 강하다. 어느 계파도 절대적인 세력으로 성장하지 못하고, 어느 인물도 절대적인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후임 비대위 체제에서 변화와 혁신을 화두로 꺼내더라도 4~5개 계파가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어 하나로 합의하는 수준의 성과를 이뤄내기 어려울 것이다.”
시사평론가 공희준 작가는 한술 더 떠 “DJ가 아닌 이순신 장군이 들어와도 친노계를 못 당한다”고 일갈했다. 공 작가는 “현재 새정치연합 체제로는 어떤 경우라도 당권 교체가 불가능하다. 당권 교체가 불가능한 정당에게 정권 교체를 기대할 수 있겠느냐”고 되물으며 “지금 야당엔 차기 대권을 포기하더라도 금배지만큼은 빼앗기지 않으려는 직업정치인들이 즐비하다. 이들을 중심으로 당권 경쟁, 즉 공천권 확보를 위한 투쟁만 벌이고 있으니 정치인이라는 직업을 떼고 보면 건달이나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야권 일각에서는 차라리 갈라서는 게 효과적이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실제로 박영선 대표가 칩거에 돌입한 3일간 야권 안에서는 갖가지 분당 시나리오가 나돌았다. 박 대표로부터 비대위원장 제의를 받았다가 당내 반발로 좌절을 맛본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는 “박 위원장이 탈당하면서 도와달라고 하면 돕겠다”면서 “동반 탈당하는 의원이 20명이 있으면 그 자체로 국회에서 폭발력이 있을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정치 전문가들은 새정치연합이 당장 쪼개질 가능성은 낮다고 평가한다. 윤희웅 센터장은 “제3세력화가 성공하려면 큰 선거를 앞두고 있어야 하고, 탈당을 주도하는 인물이 지역 등 대중적 기반을 가져야 하는데, 지금은 이 두 가지 조건이 모두 충족되지 않았다”며 “당내 강경파 진영에서 나갈 테면 나가보라는 식인 것도 탈당 자체가 위협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공희준 작가도 “한국 정치사에서 분당이 성공한 경우는 현직 대통령과 청와대가 주도했거나 20명 이상 현역을 동반할 정도의 정치인이 주도할 때만이 가능했다. 분당이라고들 하는데, 사실 신당 창당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안철수 의원도 못한 것이 신당 창당인데, 박영선 대표 이름값만 믿고 누가 나오려 하겠느냐”며 “야권 대주주인 문재인 의원조차 현역 의원 20명과의 동반 탈당이 가능하지 않다. 박영선 대표가 비노계 바지사장이라는 말이 있듯이, 문재인 의원 역시 사실 친노계 바지사장이고 언제든지 버려질 수 있는 카드”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전당대회가 다가올수록 분당의 불씨가 되살아날 것이라는 진단도 적잖다. 전당대회 시기 및 경선 룰 결정에 관해 첨예한 대립을 예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강경파 대 온건파’ 혹은 ‘친노계 대 비노계’ 대립이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실명 거론하면 일감 떨어진다”는 한 정치컨설팅사 대표의 진단은 이렇다.
“전대 과정에서 친노그룹이 분화하면서 오히려 분당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 지금 친노가 야권 절대다수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앞에서 진두지휘하는 사람은 없고 뒤에서만 실력 행사 중이다. 친노계 분화가 가속화되고, 반면 비노계 결집력이 예상보다 강해지면 야권에 새로운 체제가 들어서고 친노계가 돌아설 수 있다.”
구체적인 로드맵을 요구하자 그는 “친노계가 당 정비 과정에서 ‘새정치 이름을 떼고 심플하게 가자’고 나설 경우 김한길-안철수 두 전직 대표 입장에서는 나가라는 통보로 받아들일 수 있다. 또 문재인 의원이 직접 차기 당 대표로 나왔을 때, 호남에 기반을 둔 정세균 의원과의 갈등 양상이 도화선이 될 수 있다”고 보탰다.
이는 계파별로 이뤄지고 있는 전당대회 준비 상황을 보면 어느 정도 표면화돼 있다. 현재 친노계에서는 문재인 의원이, 범친노에서는 정세균 의원이 차기 당 대표 후보로 거론된다. 비노계에서는 박영선 대표 카드가 좌절되고, 대신 김부겸 전 의원이 부상하고 있다. 옛 호남계에서는 추미애 의원과 박지원 의원 출마가 유력시된다. 기타 중도노선을 표방하는 김영환, 조경태 의원 등도 전대 출마를 고려 중이다. 486과 민평련(김근태계)에서는 이인영 의원이 거론되면서 군불을 때는 등 사실상 모든 계파에서 각개약진을 준비하고 있다.
“명분은 시민참여형에 있지만 실리는 당원중심형에 있다. 이번 6·4 지방선거 과정에서 야당의 정치적 기반인 호남 기초의회에 무소속 의원들이 대거 배출되면서 분당 가능 조건이 갖춰져 있다는 게 무서운 부분이다. 호남 기반 당권주자들은 당원중심 노선을 표방하며 내부 단속에 열심이다. 초·재선이나 수도권 기반 정치인들은 시민참여형 노선을 표명하면서 외부 세력과 조율에 나설 것이다. 후자의 논의가 초선 비례대표나 재선 의원 주도로 이뤄지고 있는데, 정치력으로는 중진들과 상대가 안 된다. 어느 쪽이든 진 쪽에서 수긍하기보다 반발하고 나가는 것이 가능하지 않겠느냐.”
이 같은 진단에 야당의 한 고참 당직자는 일부 수긍하며 “도저히 같이할 수 없는 세력이 범친노로 분류되는 SK(정세균)계와 김한길-안철수-기타 중도계로 분화한 DY(정동영)계다. 현재 언론에서 강경파와 온건파, 친노계와 비노계로 나뉘는데 진짜 시한폭탄은 여기”라며 “민평련(김근태계)와 손학규계 역시 계파 리더가 없는 상태라지만 캐스팅 보트 역할을 자처할 것”이라고 귀띔했다.
향후 문재인 의원을 향한 차기 전당대회 불출마 요구도 점차 거세질 전망이다. 당권과 대권 가운데 하나는 양보하라는 것이다. 앞서의 당직자는 “문재인 의원 지지율과 당 지지율이 거꾸로 가는 게 문제긴 하다. 당 안에서 안희정 지사나 박원순을 띄우려는 것은 그동안 본인이 보여준 정치력 한계 때문”이라며 “당에서 목소리만 큰 두 부류, 초선 비례대표와 김영환·조경태·황주홍 의원 같은 ‘종편계’의 갈등만 봉합해도 숨통이 트일 것”이라고 말했다.
‘친문재인’으로 분류되는 한 초선 의원은 “지금은 어떤 비난이라도 받아들여야 하는, 참 죄가 많다”며 “진보 진영의 통합 능력 부재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닐 것이다. 통합진보당 사태만 하더라도 각자의 명분을 갖고 진보당과 정의당이 분당한 이후 보여준 정치력이라는 게 미약하지 않나. 과거 열린우리당 분당 역시 결국 야권 안에서의 계파 갈등을 더욱 높이는 계기가 됐던 사례이기에 고려해선 안 된다”라고 전했다.
김임수 기자 ims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