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개월차 새내기 대기록 세울까
입단한 지 1년도 안돼 승승장구하고 있는 박창명 초단은 기보집이 아닌 손자병법을 즐겨 읽는다.
예상대로 원성진과의 바둑은, 중반에 들어서면서 박 초단이 이길 수 없는 형세가 되어 있었다. 박 초단이 백을 들었는데, 백 대마가 한 집도 없이 쫓기는데다가 한쪽 귀는 또 생사가 패에 걸려 있었다. 흑이 지려야 질 수 없는, 이른바 필승지세. 백은 99% 절망이었다. 그 바둑을 박 초단이 이겼다. 원 9단이 백 대마를 안전하고 확실하게 잡자고 세심하게 하나 선수한 것이 그만 천려일실의 패착이 되었다. 정말이지 아흔아홉 번을 잘 두고 단 한 번의 실족한 것이었는데, 바둑은 여지없이 뒤집어졌고, 거기서부터 흑이 거꾸로 일패도지하고 말았던 것, “박 초단에게 운이 따른다. 일 내는 것 아니냐”는 소리가 나왔다. 타이틀 쟁취는 실력도 실력이지만, 실력과 함께 반드시 그런 운이 따라야 한다는 것,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바둑계의 정설 같은 속설, 속설 같은 정설이다.
‘물가정보배’는 2006년에 출범한 기전. 현재 ‘GS칼텍스배’ ‘하이원리조트배 명인전’ ‘국수전’ 등과 함께 메이저 4대 기전의 하나다. GS칼텍스배와 하이원리조트배는 예산은 4억 원으로 비슷하고 우승상금은 각각 7000만 원과 6000만 원. 국수전과 물가정보배는 2억 5000만 원 규모에 우승상금 4500만 원과 4000만 원. 제한시간 각자 10분에 40초 초읽기 3회.
결승의 상대는 이창호 9단을 꺾고 올라온 나현 4단. 박창명이든 나현이든 누가 이기든 히트다. 새로운 바람이다. 몇 년 전부터 머지않아 타이틀을 차지할 것으로 기대를 모아온 유명인사 나현이 아니라 늦깎이에다가 입단 8개월에 불과한 박창명이 이기면 가히 파천황이다.
결승3번기는 24일 막이 올라간다. 박창명이 우승한다면 그건 우리 바둑사에 불멸의 기록으로 남아있는 서봉수 9단의 명인 쟁취 이후 42년 만에 두 번째 등장하는 대기록이다. 서 9단은 1970년에 입단하자마자 곧장 명인전 본선 멤버가 되었고, 본선에서도 승승장구해 도전자가 되었고, 본선을 치르면서 2단이 되었고, 마침내 조남철 9단과 5번기를 벌여 타이틀을 쟁취, 열아홉 나이로 ‘명인’에 오르며 우리 바둑사의 한 페이지를 화려하게 장식하지 않았던가.
19세와 23세여서, 박 초단이 우승한다 해도 최연소 신기록은 아니다. 그러나 서 9단의 기록은 1년 반 정도가 걸렸는데, 박 초단이 타이틀을 안는다면 약 9개월로 최단시간 부문에서는 신기록이 된다. 다만 옛날 명인전 도전기는 제한시간 각 5시간이었던 것에 비해 물가정보배는 10분 초속기라는 차이가 있기는 하다. 장고와 속기의 우열을 매기기는 애매하다 하더라도 그 무게에서는 5시간과 10분은 다를 수밖에 없다.
어떻게 이렇게 반갑고 신나는 일이 생겼을까. 박창명이 원래 보통 기재가 아니라 천재였는데, 어쩌다 입단만 늦어진 것이고, 일단 입단하자 그 재주가 즉시 만개하는 것인지. 아니면 이른바 ‘입단 끗발’에 불과한 ‘찻잔 속 태풍’에 그치고 마는 것인지. 그런 예도 숱하게 보아 왔으니까. 재미있는 것은 박창명을 열심히 취재한 바둑 인터넷 사이트 ‘사이버오로’의 김수광 기자가 전하는 말이다.
원성진 9단(오른쪽)과의 대국 모습.
“대국 전후에 사진 찍고 인터뷰 하려고 자주 만났는데, 만날 때마다 무슨 책을 꼭 들고 다니는 겁니다. 무슨 책인지 좀 보자고 하면 웃으면서 잘 안 보여주려고 해요. 당연히 바둑 책인 줄 알았지요. 박정환 9단처럼 사활책이나 아니면 기보집 이겠거니 했습니다. 그런데 보니까 ‘손자병법’이에요. 신선하더군요. 바둑 승부하러 나오면서 손자병법…^^ 이런 책이 재미있냐고 물었더니 재미있다는 겁니다. 아니, 다른 친구들은 시간만 나면 바둑 책이나 기보집을 보는데, 이런 책을 읽는 게 승부에 도움이 되냐고 했더니 시야가 넓어지는 것 같고 여러 각도로 생각할 수 있어 도움이 된다는 겁니다. 갖고 다니는 책이 ‘그리스-로마 신화’일 때도 있습니다.”
김 기자는 박창명을 인터뷰하고 ‘인문학 돌풍 박창명…’이라는 기사를 썼다. 우리가 언제부터 인문학을 알아줬는지, 지금과 같은 우리 사회 분위기에 인문학이라는 말을 쓸 수 있기나 한 것인지 그건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반성이나 성찰의 의미에서 요즘은 앞 다투어 인문학, 인문학을 노래하는데, 김 기자가 그런 시류에 편승한 것은 아니지만, 바둑에 인문학을 들고 나오고, 고전을 읽는 것이 승부에 도움이 된다고 말하고 싶어 하는 것은 의미가 새롭다. 박창명이 김 기자의 지적을 사실로 입증해 주기를 바란다.
1982년, 조훈현 9단이 전관왕을 달성했다. 두 번째 천하통일이었다. 서봉수 9단은 무관이 되었다. 호주의 한상대 교수가 한국에 들렀다가 서 9단을 만났고 함께 유럽을 여행하자고 제안했다. 서 9단은 한 교수를 따라 몇 달간 유럽을 돌았다. 여행에서 돌아와 조 9단의 타이틀 세 개를 연달아 빼앗았다. 당시 기전이 일곱 개여서 하나만 더 차지하면 역전이었다. 서 9단이 제일인자가 되는 것이었다. 서 9단이 하나를 더 쟁취하지는 못했다. 그래도 모두들 궁금해 했다. 서 9단이 실력이 는 것일까. 유럽 여행을 다녀왔을 뿐인데 어떻게 갑자기?
1988~89년 시즌, 미국에서 살고 있던 차민수 5단이 제1~2회 후지쓰배 세계대회에서 일본의 9단들을 연파했다. 조치훈 9단에게도 이겼다. 불가사의한 일이었다. 초단 때 미국에 건너가 바둑 공부를 하거나 실전 대국을 한 것은 아닐 텐데. 차 5단의 주무대가 라스베이거스의 카지노라는 것은 다 아는데. 바둑은 공부를 하지 않아도 저절로 늘 수도 있는 것일까. 차 5단은 기막힌 승부의 천재인가. 답이 있을 리 없었다. 다만 넓은 땅에서 살면 시야가 넓어진다는 것, 포커의 명수면 승부의 명수, 바둑도 승부, 포커도 승부, 승부끼리는 통하는 점이 있으리라는 것, 사람들은 그렇게 말했고, 그걸 차 5단도 굳이 부인하지는 않았다.
여행을 자주 하고, 땅 덩어리가 큰 나라에서 살고, 포커 같은 게임에도 몰입해 보고 그러면 바둑도 늘까. 비례 관계나 필연적인 인과 관계는 없겠지만, ‘그런 것들도 도움이 된다’고는 말할 수 있으리라. 그게 보다 구체적이고 보편적으로 드러나게 하는 방법은 없을까.
이광구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