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해 여보, 나도 늙고 지쳤다우…”
파킨슨병 아내를 20년 넘게 간병해온 남편이 아내를 죽인 후 자신도 따라 죽으려다 목숨을 건졌다. 오른쪽은 영화 <그대를 사랑합니다>의 한 장면.
지난 9일 저녁, 아들 문 씨는 부모님과 명절을 쇠고 귀경길에 올라 집에 막 도착한 참이었다. 아들 문 씨는 부모님께 잘 도착했다는 안부전화를 드리기 위해 수화기를 들었다. 하지만 한참이 지나도 통화 연결음만 들려올 뿐 부모님과 연락이 닿질 않았다.
아들 문 씨는 점점 불안해졌다. 어머니 김 씨는 20여 년을 파킨슨병으로 투병생활을 하고 있었다. 최근에는 김 씨의 병세가 악화돼 혼자서는 거동도 어려울 정도였다. 아버지 문 씨가 어머니 김 씨를 옆에서 돌봐주고 있었지만 아버지도 오랜 간병생활에 지쳐 있는 상태였다. 두 사람의 건강이 악화돼 함께 쓰러진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 아들 문 씨는 밤잠을 설쳤다.
다음 날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아들 문 씨는 10일 아침까지 부모님과 연락이 닿질 않자 다시 부모님 집으로 향했다. 불안한 마음으로 부모님 집 현관문을 연 아들 문 씨는 눈앞에서 참혹한 광경을 마주했다.
문 씨는 안방에서 침대에 엎드려 있는 어머니 김 씨를 발견했다. 머리에 피를 흘린 채 발견된 어머니 김 씨는 이미 의식이 없는 상태였다. 아들 문 씨는 곧이어 안방 화장실에서 머리에 피를 흘린 채 쓰러져 있는 아버지 문 씨를 발견했다. 다행히 아버지 문 씨는 숨을 쉬고 있었다. 문 씨 옆에서는 머리를 내려치는 데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둔기가 떨어져 있었다. 아들 문 씨는 곧바로 112로 신고했다.
대구 수성경찰서 관계자는 “아들 문 씨가 처음에는 부모님이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생각했다가 다음 날 아침까지 연락이 되지 않자 다시 부모님의 집을 찾은 것”이라며 “아버지 문 씨는 곧바로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고 회복 중이다.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고 말했다.
당초 수사는 문 씨와 김 씨의 동반자살 계획 여부에 초점이 맞춰졌다. 경찰 관계자는 “문 씨와 김 씨는 사이가 나쁘지 않았다고 한다. 문 씨 부부는 자녀들과 교류도 잦고 관계도 원만한 편이었다”며 “외부 침입 흔적은 없었다. 문 씨가 아내의 병수발을 오랜 시간 해 왔고 일방적으로 아내를 살해했을 가능성도 적어 동반자살 시도로 추정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지난 18일 병원에서 치료를 받으며 회복 중이던 문 씨가 아들에게 “미안하다. 엄마랑 같이 가려고 그랬다”고 털어놓으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계획적으로 동반자살을 시도한 것이 아니라 문 씨의 단독범행일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결국 경찰은 문 씨가 회복하는 대로 살인혐의를 적용해 구속영창을 청구할 방침이다.
수성경찰서 관계자는 “문 씨는 비교적 담담하게 일체의 사실을 고백했다. 20년이 넘게 난치병 아내를 돌봤던 문 씨는 오랜 병수발로 인한 우울증 증세가 있었다. 최근 아내의 병세가 급격히 악화되면서 문 씨가 더욱 힘들었던 것으로 보인다”며 “무엇보다 자식에게 짐이 되기 싫었던 것 같다. 문 씨가 회복하는 대로 자세한 사건경위를 조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2008년에는 노인들이 하루 4시간 복지사의 방문관리를 받을 수 있는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가 마련됐다. 노인장기요양보험은 소득에 상관없이 등급만 받으면 복지사의 관리를 받을 수 있는 제도다. 현재 전국 600만 명의 노인 중에 35만 명이 이 제도를 이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구의 문 씨 부부도 이 제도를 이용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제도도 문 씨 부부의 어려움을 해결하는데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한국노인상담센터 이호선 센터장은 “대구 노부부 사건의 당사자들도 장기요양서비스를 받고 있었다. 하지만 요양사가 하루 평균 4시간 도움을 준다 하더라도 나머지 20시간이 그들에게 고통스럽지 않은 것은 아니다. 방문관리 시간이 늘어날 필요가 있다”며 “노인이 노인을 돌보는 ‘노노케어’가 노인 복지의 한 형태로 주목받고 있지만 별로 좋지 않은 방법이다. 대구 노부부의 경우도 ‘노노케어’라고 볼 수 있는데 노인이 아픈 노인을 돌보는 것은 ‘정’으로만 할 수 없다. 의학적 기술이 필요한 부분이라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노인들이 정보에 대한 접근성이 떨어지는 것도 복지 사각지대에 내몰리는 이유 중 하나다. 도시의 경우 복지사나 동사무소 직원들이 방문 상담을 하면서 여러 복지제도에 대한 설명을 하기도 하지만 인력은 턱없이 부족하다. 노인 인구 비중이 높은 농촌의 경우 지자체의 인력부족으로 방문 상담을 하지 못하는 경우도 다반사다.
이호선 센터장은 “홍보자체의 문제일 수도 있지만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를 이용한다 하더라도 등급판정 받는 과정이 굉장히 어렵다. 등급판정을 받기위해서는 의사가 방문진료를 해야 하고 노인들은 요양보험계획서를 제출해야 한다. 노인들이 계획서를 작성하고 직접 제출하는 과정이 쉽지 않아 자녀들의 도움이 필요하다”며 “하지만 신청을 한다 하더라도 6개월에서 1년간 추적조사를 한다. 가짜 환자를 가려내는 과정이지만 스스로 심하게 아픈 것을 증명해야 하는 문제도 있다”고 말했다.
문 씨 부부의 경우 장기요양보험제도를 이용하면서도 자식에게 짐이 되기 싫어 병간호의 스트레스를 남편이 혼자 감당하는 경우였다. 하지만 노인들도 간병문제와 관련해 적극적으로 도움을 요청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이 전문가의 지적이다. 이호선 센터장은 “가족들이 병간호를 하면서 오해하는 부분이 있다. ‘열심히’ 한다는 마음만으로 병간호를 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병간호를 전문 인력에 맡기는 것을 ‘불효’라고 생각하는 인식에도 변화가 필요하다”며 “우리도 노인이 된다. 사회가 노인을 돌봐야 하는 이유를 적극적으로 생각해 미래를 대비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배해경 기자 ilyoh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