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 체감 섹스… 나만의 ‘성’ 세워진다
영화 <데몰리션맨>에서는 실베스터 스탤론과 산드라 블록이 가상현실을 통해 서로 사랑을 나누는 장면이 나온다. 미래 세계에선 섹스도 ‘기계’를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개념의 ‘가상섹스’는 당시 허무맹랑한 이야기로 치부됐다. 하지만 이러한 영화적 상상력이 필름의 틀을 벗어나 현실에서 실현될 가능성이 조금씩 높아지고 있는 듯하다.
인간의 오감 중 시각과 청각, 촉각 등 세 가지 감각을 사용자가 느끼도록 만들어진 성인용 섹스 시뮬레이션 게임이 최근 온라인 서비스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쓰리필’(3feel)이란 이름의 이 온라인 게임은 남녀가 각각 사이버상에서 자신의 캐릭터를 생성해 서로 성적인 교감을 나눌 수 있도록 만들어진 게임. 사용자가 좋아하는 애무, 체위 및 성감 포인트를 설정해 게임에 반영시킬 수 있으며 상대방과의 교감을 극대화하기 위해 오디오(청각)는 물론 화상 카메라(시각)와 바이브레이터(촉각)까지 연동해 게임을 즐길 수 있게 꾸며져 있다.
이미 2004년 이 게임을 처음 개발한 한국 씨엠넷은 말레이시아 아이엔비사와 서비스 계약을 체결하고 지난 2월 중순부터 아시아 버전(한국 제외)의 베타테스트(시험용 서비스)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특히 관심을 끄는 대목은 씨엠넷 측이 쓰리필의 국내 서비스를 위해 3월경 게임물등급위원회에 심의를 신청할 계획이라고 밝힌 부분. 영화에서만 가능할 것 같았던 가상섹스가 국내에서도 현실로 다가오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게임 내에서 이루어지는 노골적인 성행위와 화상카메라, USB로 연결 가능한 바이브레이터의 사용 문제 등으로 인해 쓰리필의 국내 서비스는 적잖은 논란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사이버 섹스 게임을 표방한 쓰리필의 등장과 이로 인한 파장 등을 살펴보았다.
지난 2005년 E3(Electronic Entertainment Expo·미국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의 국제 게임 전시회) 전시장은 하나의 게임 때문에 술렁거렸다. 당시 이 게임 출품회사는 주최 측으로부터 시연 동영상이 너무 선정적이라는 이유로 동영상 교체 요구를 받을 정도였다. 소란의 주인공은 ‘쓰리필’. 게임아바타들을 이용해 사용자들이 실제와 같은 성행위를 사이버상에서 즐길 수 있는 가상섹스 게임이었다. 이 게임은 파격적인 성묘사와 오프라인 바이브레이터와의 연동 등으로 많은 관심을 받았지만 선정성 문제로 논란에 휩싸여야 했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난 지금, ‘그때 그 게임’이 국내 서비스를 눈앞에 두고 있어 파문이 예상되고 있다. 단순한 성인게임의 수위를 넘어 노골적으로 ‘사이버섹스’를 표명한 이 온라인게임이 국내 게임업계에 던질 파장은 만만치 않아 보인다.
게임 제작사인 씨엠넷 신도철 대표는 “3월 중에 게임물등급위원회에 등급 심의를 신청해 통과하면 바로 국내 서비스를 시작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미 “아시아 버전은 한국을 제외하고 말레이시아, 일본 등 몇몇 나라에서 베타테스트를 진행 중이고 홈페이지를 오픈해 회원을 모집하고 있다”며 “회사가 준비한 서버용량 인원을 초과할 정도여서 서버 증설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쓰리필과 이전 섹스게임의 차이점은 사용자들이 세 가지 감각을 느낄 수 있도록 게임을 설계한 부분이다. 음성에 야릇한 신음소리를 삽입했고 상대 캐릭터를 자극할 경우 캐릭터를 조작하는 게이머의 촉각을 자극하기 위해 바이브레이터 기능을 도입했다. 또한 화상카메라를 통해서 사이버 섹스 상대자의 얼굴을 직접 보며 채팅을 통해 대화를 주고받을 수 있게끔 만들었다. 그리고 ‘사이버섹스’의 느낌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 게이머의 캐릭터를 에로배우의 실제 행위를 캡처해서 표현했다고 한다.
화상카메라와 바이브레이터 사용에 대해 신도철 대표는 “국내에서도 이러한 기계의 사용이 가능한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도 “하지만 국내 서비스의 경우 민감한 부분이라 판단된다”고 말했다. 그는 “독립적인 비디오카메라와 보조 성기구는 (오프라인에서) 합법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라면서 “이러한 것들을 컴퓨터에 접목시켜 사용하는 문제는 허가 기관과의 협의를 통해 가능한 방향을 모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쓰리필이 기존의 섹스 게임과 또 다른 부분은 쌍방향 가상현실 체험게임이라는 점이다. 과거 섹스게임은 혼자만 즐기는 PC섹스게임이 주류를 이루었던 반면 쓰리필은 여러 가지 기술과 하드웨어를 이용해 세계 최초로 쌍방향성 체감이 가능하도록 한 게임이라는 것이 신 대표의 설명이다.
정작 발등의 불로 다가온 것은 쓰리필의 국내 서비스. 다른 나라의 경우보다 표현 수위를 낮춘다고는 하지만 성의 표현을 터부시하는 한국인들 사이에서 적잖은 논란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와 관련해 게임을 개발한 신 대표는 “현재 국내에는 이미 많은 성인 콘텐츠가 있다”며 “성적욕구를 일으키기만 하는 게임보다는 체감할 수 있는 게임이 더 사회적으로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감추고 숨기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먼저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고 그에 맞는 책임을 부여하는 것이 순리”라며 “성인산업은 기술집약적 산업으로 외국의 경우 대부분의 최첨단 기술이 성인산업에서부터 활성화 단계를 거친다 해도 과언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쓰리필의 국내 서비스가 이루어져 미성년자들에게 노출될 경우 심각한 부작용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이와 관련해 신 대표는 “국내의 경우에는 철저한 성인검증을 시행할 것”이라며 “부모의 주민번호를 도용하여 접속하는 미성년자들에 대비해 2차 수단으로 콘텐츠 내에 사이버폴리스란 개념을 도입해 미성년자 등 해당 서비스의 원칙과 반하는 행위를 하는 이용자에게는 강제 탈퇴를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게임물등급위원회의 한 관계자는 “만약 쓰리필이 게임 등급 심의에 올라오면 아마도 상당한 이슈가 될 것이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포르노와 같이 반사회적인 직접적 성 묘사를 한 경우에는 심의에서 거부되는 것은 당연하다”면서도 “하지만 심의 때 특정 한 장면만을 가지고 등급심사를 거부하는 것은 아니다. 전체 게임의 맥락을 살펴보고 판단한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이전까지 노골적으로 사이버 섹스게임을 표명한 게임이 없었기에 쓰리필이 심의 대상으로 올라오면 많은 논란이 일 것으로 예상했다.
사실 쓰리필이 처음 개발된 당시인 지난 2004년 영상물등급위원회는 이 게임에 대해 “성인전용게임이라도 미성년자에게 노출 가능성이 높고 바이브레이터 등 노골적으로 성을 게임화한 콘셉트에 대해선 심의를 내리기 어렵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하지만 2006년 발족한 게임물등급위원회는 ‘허용 가능한 범위 내에서 표현의 자유를 보장한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어 실제 쓰리필에 대한 심의 신청이 들어올 경우 어떤 결정을 내리게 될지 주목된다.
쓰리필의 ‘등장’과 관련해 게임업계에서는 기대 반 우려 반의 분위기다. 우선은 ‘국내 서비스가 되겠느냐’라는 회의적인 목소리가 많다. 하지만 만약 쓰리필이 심의를 통과해 국내에서 좋은 반응을 얻을 경우 게임업계에서는 그동안 금기시되던 ‘성’의 영역이 무너지며 새로운 시장이 열리는 것이기에 기대하는 목소리도 있다. 그러나 단순히 섹스게임이라는 점만으로도 게임업계의 전반적인 이미지마저 훼손할 우려가 있다고 걱정하는 이들도 적지 않은 게 현실이다.
네티즌들은 부정적 의견을 내는 경우가 많았다. 주로 게임이 성매매로 변질될 것을 우려하는 경우와 미성년자들에게 게임이 노출될 경우의 부작용에 대해 걱정을 하는 목소리들이었다. 게임을 통해 성적 체감을 할 수 있다고 하지만 현재 인터넷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채팅의 부작용처럼 결국 게임을 빌미로 조건만남 같은 성매매가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미 한 포털사이트에는 쓰리필 관련 카페가 개설돼 2만여 명이 회원으로 가입한 상태여서 이 게임에 대한 관심이 예사롭지 않음을 짐작케 해준다.
‘성’이라는 금기 영역을 건드리는 쓰리필의 등장으로 인해 국내 게임산업에도 적잖은 변화의 바람이 불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또한 이러한 변화가 사이버 성의 상품화를 부채질해 부정적으로 악용될 가능성도 우려되는 게 사실이다. 과연 쓰리필은 게임업계에 새로운 영역을 개척한 ‘선구자’가 될까, 아니면 사이버 성매매 같은 부정적 성문화의 또 다른 온상이 될까. 이미 ‘판도라의 상자’는 열리고 있다.
이윤구 기자 trus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