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기자가 인기 탤런트를 취재하러 갔다가 폭행을 당했다고 고소를 부탁했다. 이미 자신이 고소장을 능숙하게 써 왔다. 그녀는 내 앞에서 눈물을 흘리면서 전치 6개월의 진단서를 강조했다. 이상했다. 동행한 사진기자가 폭행당하는 걸 보지 못했다. 얻어맞았다는 시각 직후 찍힌 CCTV 화면에는 화장을 고치는 그녀의 모습이 보였다. 거짓이었다. 그런데도 그녀는 내게 기자회견을 해달라고 부탁했다.
시사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이름난 남자배우의 성폭행사건이 있었다. 남자배우는 하늘에 맹세하고 그런 일이 없다고 했다. 귀여워서 뺨을 톡 건드렸을 뿐이라고 했다. 전직 국회의장 사건과 비슷했다. 대중적인 인기와 돈이 있는 그는 이겼다. 대법원 판결문 속에 거짓이 들어박혀 버젓이 진실로 행세했다.
이승에서 한 거짓말의 숫자만큼 염라대왕이 그의 입을 한 땀씩 꿰맨다는 속담이 있다. 예전에 한 소설가가 거짓말 많이 한 김대중 대통령의 입을 공업용 미싱으로 드르륵 박아야 한다고 해서 재판에 회부된 일이 있었다. 그 소설가는 법정에서 대통령을 모욕한 게 아니라 사회지도층이 정직하게 살자는 취지였다고 했다. 거짓말이 짙은 매연처럼 흘러넘친다.
잘 알고 있는 법원장 한 분은 사석에서 ‘모든 사람은 거짓말을 할 권리가 있다’고 말했다. 단순한 농담이 아니었다. 그는 평생 재판을 해오면서 거짓말을 듣다보니까 진실을 말하는 사람이 오히려 이상하게 느껴지더라고 고백했다. 악취 속에 있으면 둔감해지고 몸에 그 냄새가 배듯이 법조인들은 거짓말에 둔감해지는 것 같다. 그 피해는 엄청나다. 치유가 불가능한 철저한 불신병에 걸리기 마련이다.
80대 나이의 원로 법조인과 식사를 하는 자리였다. 그는 평생을 고위 법관으로 지냈다. 그가 이렇게 말했다.
“법원에 내는 서류들을 보면 다 그럴 듯한데 도대체 믿을 수가 있어야지.”
평생을 거짓의 공해 속에서 살아온 법관의 모습이었다. 그런 고질적인 불신은 진실을 거짓으로 판단하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했다. 겉으로는 깨끗한 포장을 해도 분뇨통에서 오물이 넘쳐나듯 거짓이 판치는 세상이다. 아무리 진실을 외쳐도 믿어주지 않는 경우가 많다. 정직한 사회를 만드는 운동이 일어났으면 좋겠다.
예전에 도종환 시인의 집을 찾아가 얘기를 나누다가 이런 말을 들었다. 초등학교 1학년 아이가 담임선생인 그에게 “깨끗한 물 하고 더러운 물하고 싸우면 누가 이겨요?”라고 묻더라는 것이다. 그가 난감해서 가만히 있자 꼬마는 선생님에게 “에이 그것도 몰라요? 선생님. 깨끗한 물이 계속 나오면 더러운 물이 지는 거죠”라고 말했다고 한다. 거짓말 국회의원보다 얻어맞아도 정직한 대리기사 같은 사람이 더 많은 세상이 됐으면 좋겠다.
엄상익 변호사
※본 칼럼은 일요신문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