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당, 정육점 - ‘신분위장’ 막아라
사실 수입이 재개되기 전부터 미국산 쇠고기는 유통과정 상의 문제점이 여러 방면으로 지적돼 왔다. 정부도 유통과정에서 미국산 쇠고기가 ‘한우’로 둔갑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여러 가지 방안을 강구해왔다. 그러나 정부에서 내놓은 방안들도 문제점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한마디로 정부의 각종 대책들이 국민의 불신감을 잠재우기에는 역부족으로 보인다.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부터 유통, 소비까지 원산지 표시를 철저하게 강제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미국산 쇠고기의 검역이 재개돼 이제 국내시장에 뿌려지는 건 시간문제다. 이렇게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이 현실화되자 소비자들은 광우병보다는 오히려 미국산 쇠고기의 ‘신분위장’을 우려하고 있다. 미국산 쇠고기가 한우로 둔갑해 판매돼도 단속할 시스템이 취약하다고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에서는 ‘원산지 표시제’를 더욱 확대하겠다고 밝혔지만 과연 원산지 표시를 속이는 것을 제대로 막을 수 있겠냐는 지적이 계속 일고 있다.
음식점에 쇠고기 원산지 표시제가 도입된 것은 지난 2007년 1월 1일. 당시에도 원산지 표시제는 별 위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수입산 쇠고기를 한우로 팔다가 적발된 사례는 부지기수다.
지난 2007년 4월 식품의약품안전청(식약청)이 620개 업체를 대상으로 벌인 단속에서 수입산 쇠고기를 한우로 속여 팔다 적발된 업체는 모두 87군데. 같은 해 7월에도 대형음식점 525곳을 대상으로 조사를 했는데 원산지 표시제를 위반해 적발된 업체만 118곳이었다. 대략 20%을 넘는 업소들이 원산지 표시를 지키지 않고 판매해왔던 것으로 드러났다.
올 들어서도 이런 속여팔기는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 6일 식약청과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의 합동 단속에서 적발된 H 업체. 이 업체는 그동안 ‘한우만 취급한다’는 광고로 상당한 수입을 올려왔는데 지난 4월 20일부터 약 15일 동안 미국산 쇠고기 480kg을 한우로 속여 판매해왔던 것으로 밝혀졌다. 정부에서 강화했다고 강조해온 쇠고기 원산지 표시제의 허점이 그대로 드러난 사건이다.
식약청은 6월 22일부터 면적 300㎡ 이상인 구이용 쇠고기 판매 음식점에 대해서만 실시했던 ‘음식점 원산지 표시제’를 면적 100㎡ 이상으로 대상을 확대하고, 대형 구이용 판매점에만 적용하던 원산지 표시를 탕, 찜, 튀김 등을 판매하는 업소에도 확대 적용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도 현행 법규와 마찬가지로 쇠고기 ‘판매규모’가 아닌 ‘업체 규모’에 한정하고 있어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쇠고기덮밥’처럼 쇠고기를 재료로 한 음식을 파는 소형 가게에서 미국산 쇠고기를 한우라고 표시, 재료를 속이면 이를 적발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
기준을 강화하다보니 단속 대상 역시 늘어났지만 실제 단속 활동을 벌여야 하는 인력의 충원은 그에 미치지 못하는 점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현재 단속 대상 업소는 4300여 곳. 단속 기준이 강화되면 그 수는 1만 7000여 곳으로 늘어난다. 그러나 단속인력은 400명에서 1000명으로 늘어난다. 단속대상이 늘어난 만큼 숫자를 그와 비례해 늘리기로 했지만 인원 부족 현상은 여전할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이는 1인당 단속대상을 따져보면 잘 나타난다. 강화된 기준이 적용되면 1인당 약 10.75곳이던 것이 약 11곳으로 오히려 늘게 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시민단체와 소비자들은 “이전에도 잘 안되던 단속이 과연 제대로 될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을 제기하고 있다.
농식품부는 이에 대해 “한우식별 전문 관련협회와 단속전문가가 합동으로 연중 상시 단속반(전국 8개권역 15개반)을 운영해 부정유통을 근절시키겠다”며 “포상금 제도를 이용한 감시원이나 명예감시원을 활용해 사회적 감시기능을 강화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농식품부에서는 이외에도 쇠고기이력추적시스템을 도입해 원산지 표시제의 부족한 부분을 채우겠다는 입장이다. 농식품부의 한 관계자는 “쇠고기이력추적시스템을 2009년 6월까지 전 품목에 적용시켜 확대 시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력추적시스템은 사람의 ‘주민등록증’과 같은 것으로, 소에 개체 식별번호를 부여한 뒤 소가 도축·가공된 곳뿐 아니라 어느 곳으로 유통됐는지까지도 파악할 수 있는 제도다. 이 시스템이 도입될 경우 한우가 유통된 기록이 없는 곳에서 한우라고 속여 음식을 팔 경우 쉽게 추적이 가능하기 때문에 쇠고기 공포증에 걸린 국민들에게는 환영할 만한 소식인 셈.
그러나 이 시스템을 도입해도 허점은 여전히 남아있다. 시스템 자체가 미국산 쇠고기가 아닌 순전히 한우 쇠고기만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라 한우와 수입산을 같이 파는 경우 이 시스템도 상당부분 무력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한우협회의 한 관계자는 “앞으로 정부에서 추진하는 이력추적시스템 방안으로는 미국산 쇠고기의 이력 추적이 20%밖에 가능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정부가 미국산 쇠고기의 경우 도축 단계부터 샘플 시료를 채취해 문제가 발생됐을 때만 추적을 하자는 방침을 세우고 있다는 것이다.
한우협회의 박선진 차장은 “협회에서 주장하는 것은 (미국산 쇠고기 등) 모든 송아지의 출생 때부터 DNA 검사를 거치고 난 후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자는 것”이라며 “한우뿐만이 아니라 미국산 소의 경우도 출생부터 사육, 도축, 유통, 소비 단계까지 확실히 추적할 수 있는 방안이 마련돼야 쇠고기 질병이나 속여팔기로부터 안전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현재의 처벌 수위로는 속여팔기를 막기 어렵다”는 주장도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이는 앞서 미국산 쇠고기를 한우로 속여 적발된 H 업체의 사례만 봐도 알 수 있다. 영업주가 받게 될 처벌은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영업정지 7일. 징역까지는 가지도 않을 뿐더러 벌금도 기껏해야 300만 원선일 것이라는 게 동종업계 관계자들의 주장이다.
한우협회 측의 한 관계자는 “영업정지가 풀린 뒤 며칠만 영업하면 300만 원은 금방 메울 수 있다”며 “6월에 법률을 개정할 때 처벌 수위를 확실히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원산지를 허위표시 했을 때 정육점은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 원 이하의 벌금, 음식점은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는다”며 “형평성도 형평성이지만 이 수준을 똑같이 더 높은 수준으로 맞춰서 원산지 허위표시에 대한 경각심을 심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국민 혐오증이 더욱 심화되고 있기 때문에 속여팔기는 당분간 더욱 기승을 부릴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법제사법위원회에서는 처벌수위의 개정 요구를 아직까지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김장환 기자 hwan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