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쇄’는 풀렸지만 앞길은 ‘오리무중’
▲ 박근령 육영재단 이사장에 대한 이사장 승인 취소 처분은 정당하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와 육영재단의 앞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육영재단 어린이회관 전경. 원 안은 박근령 이사장.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육영재단의 관리·감독 기관인 성동교육청은 2004년 박 이사장의 취임 승인을 취소한 바 있다. 이에 재단 측이 불복 소송을 냈는데 3심까지 이어진 재판 끝에 원고가 패소한 것이다. 그동안 박 이사장은 2심에서 소송이 기각되었지만 가처분 신청을 내고 직위를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 판결로 육영재단을 운영할 수 있는 공식적인 장치가 모두 없어진 셈이다.
성동교육청 관계자는 판결에 따라 “앞으로 임시 이사회를 구성하고 육영재단의 정상화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임시 이사회와 여기서 선임되는 이사장이 본격적으로 활동하려면 좀 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임시 이사회를 구성하는 데도 시간이 걸릴뿐더러 이사진들의 법원 승인 절차를 밟아야 하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육영재단 직원 12명이 대기발령을 받은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사장이 공석임에도 인사 권한이 없는 사무국장이 인사 발령을 단행한 것이다.
‘국토순례단 성추행 사건’과 재단 내 주도권 싸움으로 양산된 고소·고발 건, 성동교육청의 이사장 승인 취소 등으로 파행 운영되어 온 육영재단의 현재 모습과 전망을 살펴보았다.
‘어린이들의 꿈과 희망을 키운다’는 서울 능동 어린이회관 정문 앞에는 사설 경호업체 직원 두 명이 굳은 표정으로 서 있다. 이들 경호업체 직원들은 어린이회관의 외부인의 출입을 엄격히 차단하고 있었다. 정문에서 조금 떨어진 벤치에는 회사원으로 보이는 사람 몇몇이 역시 굳은 표정으로 앉아있었다. 벤치에 앉은 이들의 신분을 확인해 보니 육영재단 직원이었다. 그런데 이들은 왜 근무 시간에 회사 밖에 나와 있는 걸까.
육영재단 기획실 직원이라고 밝힌 김 아무개 씨는 “현재 대기발령 상태다”라고 밝혔다. 그는 “모두 12명이 지난 13일자로 대기발령을 받았는데, 재단에서 무슨 이유에서인지 회사 밖으로 나가 있으라고 지시했다”고 전했다.
그런데 의아한 점은 현재 육영재단의 이사장직이 공석이라는 사실이다. 육영재단의 관리·감독 기관인 성동교육청이 박근령 이사장과 이사진의 승인 취소 처분을 내렸기 때문이다. 즉 재단 내에 인사발령을 내릴 사람이 없다는 얘기다. 대기발령 중인 직원들은 “사무국장이 인사발령을 냈다”고 밝혔다. 하지만 육영재단의 관리·감독 기관인 성동교육청 관계자에 따르면 “사무국장은 인사권이 없으며, 현재 이사회가 없으니 통상적인 업무만 진행하라는 방침을 내린 상태”라고 전했다.
이사장 취소 처분 소송은 재단 측의 소송으로 3심까지 열린 끝에 원고 패소 판결이 난 상태다. 결국 박 이사장은 물러나고 새로운 이사회가 구성되게 되었다. 그런데 재단의 사무국장은 어떤 이유로 권한도 없는 인사발령을 내린 것일까. 성동교육청 관계자는 “우리로서도 난감한 상황이며, 만약 사무국장에게 문제가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 임시 이사회에서 바로잡을 것이다”라고 밝혔다. 대기발령 받은 직원들 역시 “사무국장이 대기발령을 내긴 했지만 우리는 교육청의 통보가 있으면 원래 근무처로 복귀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전했다.
육영재단은 그동안 수많은 소송과 고소 고발에 시달려 왔다. 또 한때 사회적인 이슈가 되었던 ‘국토순례단 성추행 사건’을 비롯, 몇몇 직원들의 비리, 이사장 퇴진을 요구하는 사무실 점거 농성, 박 이사장의 약혼자 신동욱 씨와 재단 전 대변인 간의 개인적인 다툼 등으로 얼룩졌다. 2000년 이후 재단이 받은 판결문만 30여 개가 넘으니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었던 셈이다. 2006년 결산보고서에 따르면 부채도 176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성동교육청은 이미 2001년에 감사를 통한 재단 운영실태를 조사한 바 있었다. 여기서 내부 인사들의 비리와 전횡이 밝혀졌고 결국 2004년 이사장 승인 취소 처분을 내렸다. 성동교육청 김순화 계장은 “감사에서 밝혀진 가장 큰 문제점은 공익법인으로 수익사업을 하는 데 있어서 적법한 절차를 밟지 않았다는 사실”이라며 “재단에서 그동안 벌여온 예식장, 수영장, 주차사업 등의 수익사업을 하려면 정관을 변경하고 이를 교육청 승인을 받아야 하는데 이를 이행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 계장은 “감사 이후 계속 시정 통보를 내렸는데도 아무런 변동이 없었으며, 이후에는 감사마저 거부하는 행태를 보였다”고 덧붙였다.
이사장 승인 취소 처분이 내려졌지만 박 이사장은 이에 행정처분 가처분 신청으로 대응하면서 이사장직을 유지하고 있었다.
재판 동안에도 내부의 주도권 싸움은 계속되었다. 작년 11월에는 30여 명의 직원들이 사무실을 점거하는 일도 벌어졌는데, 당시 직원들은 “박 이사장이 법과 행정지시를 위반한 것에 직원들이 반발한 것이다”라고 주장한 반면 박 이사장 측은 “사실상 육영재단을 탈취당한 것이나 다름없다”라고 얘기하는 등 양측의 주장이 팽팽히 엇갈렸다. 하지만 이때 박 이사장은 육영재단 집무실에서 나와야 했고 최근까지도 들어가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 5월 9일에는 박근령 이사장의 약혼자인 신동욱 씨가 정문 앞에서 “육영재단은 박 이사장의 것이다”라며 소동을 피우기도 했다. 신 씨는 박 이사장보다 14세 연하임에도 불구하고 산상에서 약혼식을 치르면서 세상의 주목을 받았던 인물. 이후 육영재단 감사실에서 일하다 18대 총선에서 한나라당 공천에서 탈락한 이력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직원들은 신 씨의 행동에 대해 “재단은 예전에도 개인 것이 아니었으며, 현재는 대법원 판결까지 났기 때문에 재단에 대한 어떤 요구도 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현재 박 이사장을 집무실 밖으로 끌어냈던 직원들 중 12명이 대기발령을 받고 회사 밖으로 나와 있는 상황이다. 이 직원들은 자신을 “작년 11월에 재단 정상화를 위해 지인들의 추천으로 들어왔는데, 이렇게 대기발령을 받고 밖으로 쫓겨나오니 이용만 당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전했다.
대법원 판결이 난 만큼 육영재단 관계자들은 “곧 재단이 정상화될 것”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앞으로 성동교육청은 임시 이사회를 구성하고 여기서 이사장은 선임할 예정이다. 교육청 관계자는 “진정한 어린이 회관을 만들기 위해 서둘러야 한다고 생각해, 올 상반기 안에는 이사회 구성이 끝내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끊임없는 고소와 고발, 그리고 사건으로 세간의 지탄을 받던 육영재단이 어린이를 위한 공익사업을 하는 정상적인 재단으로 발돋움해 국민의 사랑을 받게 될지 궁금하다.
류인홍 기자 ledh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