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만이 또 뒤통수 맞았다”
박지만 회장. 연합뉴스
7일 오후 7시, 국방부에 대한 국회 국정감사가 실시되고 있을 무렵 확정된 인사안이 공개되자 단연 그 시선은 이재수 전 기무사령관에게로 쏠렸다. 지난해 10월 취임한 이 전 사령관이 불과 1년여 만에 전격적으로 물러났기 때문이다. 이 전 사령관은 제3야전사령부 부사령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장경욱 전 사령관이 6개월 만에 교체된 데 이어 현 정부 들어 기무사 수장이 두 번째 불명예 퇴진한 셈이다. 군 핵심 보직인 기무사령관 임기가 통상 2년 안팎이었고 이 전 사령관이 한민구 현 국방장관과 가까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는 것은 이번 인사에 청와대가 개입했을 것이란 추측을 가능케 한다.
8일 국방부 국정감사장에서도 이 전 사령관 인사는 ‘뜨거운 감자’였다. 야당 의원들은 임명된 지 1년도 안 된 이 전 사령관이 경질된 배경을 집중적으로 파고들었다. 한정애 새정치민주연합 대변인은 “국방부가 발표한 인사 결과는 국방부 장관 인사안을 청와대가 거부해 수정된 것”이라면서 “이 과정에서 청와대와 국방장관이 충돌했다는 말까지 돌고 있는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장관 인사안에는 포함돼 있지 않았던 이 전 사령관을 청와대가 ‘찍어’ 눌렀다는 것이다.
이재수 전 국군기무사령관 경질을 둘러싼 의혹이 증폭되고 있는 가운데, 그가 박지만 회장(위)과 정윤회 씨 간 파워게임의 희생양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이에 대해 이 전 사령관은 국정감사장에 출석해 “군내 사건·사고와 관련해 기민하게 대처해 지휘관에게 조언을 했다면 방지할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며 “1년도 됐고 해서 제가 장관님께 인사에 포함시켜달라고 말씀을 드렸다”고 설명했다. ‘셀프 경질’이었다는 얘기다. 국방부도 “기무사령관은 최근 군내 발생한 일련의 불미스러운 사건과 관련해 적시 적절하게 지휘 조언을 하지 못한 데 대해 책임감을 느껴왔으며 보직된 지 1년이 경과한 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교체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 전 사령관과 국방부 말은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많다. 오히려 권력 다툼의 결과물이라는 관측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박지만 회장과 가까운 이 전 사령관을 쳐내기 위해 여권 내 핵심 라인이 움직였다는 것이다. 물론 일각에선 이 전 사령관과 박 회장의 ‘결별설’을 제기하기도 한다. 이에 대해 박 회장과 가까운 한 측근은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이 전 사령관과 박 회장은 여전히 가깝게 지낸다”고 일축하면서 “설령 사이가 멀어졌더라도 박 회장이 군 인사에 관여할 수 있는 여지는 없다. 이 전 사령관을 몰아낸 쪽에서 박 회장 이름을 거론하는 것 같다”고 불쾌해했다.
이 전 사령관이 취임할 당시에도 박 회장과의 각별한 인연은 주목을 받았다. 이 전 사령관도 지난해 11월 5일 비공개로 진행된 기무사 국정감사에서 박 회장 관련 질문에 “고등학교 동창이자 육군사관학교 동기”라며 “친한 친구라 예전에는 가족들과 식사도 했고, 한 달 전까지 가끔 안부 전화를 했는데 이번 인사와는 관계없다”고 밝혔다. 이 전 사령관은 특혜 의혹에 대해서도 “(인사가) 공정하다고 생각은 하지만 마음은 불편하다”며 복잡한 심경을 드러내기도 했었다.
이 전 사령관 취임 후 여권 핵심부 내에선 ‘청와대가 박 회장과 가까운 이 전 사령관을 껄끄러워 한다’는 목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이 전 사령관이 조기에 경질된 것 역시 이러한 기류가 반영됐을 것이란 추측이 나온다. 이에 대해 앞서의 박 회장 측근은 “청와대가 이 전 사령관을 못마땅해 할 이유가 뭐가 있느냐. 그런 말을 흘리며 박 회장을 흔드는 쪽은 따로 있다. 고급 정보를 다루는 기무사령관 자리를 박 회장 우군이 차지하고 있는 것을 불안해하는 세력”이라고 말했다.
정윤회 씨
지난 4월 박 회장과 가까운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이 물러나자 정 씨가 주도하는 ‘박지만 인맥’ 제거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는 관측은 더욱 확산됐다. 또한 그 다음 타깃은 이번에 물러난 이재수 기무사령관이 될 것이란 말까지 나왔었다. 그런데 변수가 등장했다. 세월호 참사 당시 박 대통령 행적과 관련해 정 씨 이름이 오르내렸던 것이다. 이른바 ‘7시간 미스터리’다. 야권과 언론은 연일 정 씨를 향해 십자포화를 날렸고, 정 씨는 검찰 참고인 조사까지 받아야 했다.
정 씨는 세월호 참사 후 박 대통령과의 관계뿐 아니라 개인사(이혼)로도 집중적인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자연스레 정 씨 활동 반경도 위축됐고, 향후 정치적 입지 역시 예전만 못할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흥미로운 점은 이 과정에서도 권력 다툼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정 씨는 자신과 관련된 은밀한 정보가 언론 등에 흘러나가는 배경으로 박 회장 측을 지목했다고 한다. 대선 캠프에 참여했던 한 여권 전략가는 “정 씨와 박 회장이 정권 초기부터 계속 다투고 있는 것은 익히 알려져 있는 사실 아니냐”면서 “자신에 대한 좋지 않은 정보들이 돌아다니면 그 출처로 상대방을 제일 먼저 의심한다”고 귀띔했다.
그러나 정 씨는 얼마 전 검찰 수사 등을 통해 자신의 ‘알리바이’가 입증되면서 세월호 참사 후 불거졌던 의혹에 대해 면죄부를 받았다. 이런 시점에 이뤄진 군 인사에서 박 회장 라인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전 사령관이 물러난 것은 과연 우연의 일치일까. 정치권에선 이를 두고 ‘정윤회의 반격’이 시작됐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한 야당 중진 의원은 사석에서 “이 전 사령관 경질은 박 회장 정보라인을 차단하려는 것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라면서 “집권 중반기를 맞아 최고 실세인 양 측이 정보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한 암투가 벌어질 조짐을 보이고 있는데, 이는 박근혜 정부에도 큰 부담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