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바지든 허벅지든 건드린 건 ‘수치심’
어쨌거나 과거 판례만을 믿고 행동했다가는 큰 코 다치기 십상이다. 특히 잘 아는 식당 여주인 청바지 위로 허벅지를 만진다든지 헤어진 애인에게 데이트 비용을 달라고 큰소리쳤다가는 톡톡히 망신살 뻗칠 수도 있다. 원심을 뒤엎고 다소 뜻밖의 판결이 내려진 이색사건들을 모아봤다.
▶▶데이트비용 청구 사건
“그동안 내가 너한테 쓴 돈이 얼만데, 데이트비용 다 물어내!”
밥 사주고 술 사주고 틈틈이 값비싼 선물공세까지 하는 등 지극정성으로 ‘공들인’ 애인에게 이별통보를 받은 남성이 급기야 옛 애인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가 망신을 당했다. 지난해 3월 여자친구 B 씨(26)로부터 결별통보를 받은 A 씨(29)는 ‘괘씸죄’를 물어 여자친구를 상대로 데이트비용을 청구하기로 마음먹었다.
이에 A 씨는 B 씨를 모텔로 데려가 “더 이상 만나지 않으려면 그동안 너에게 쓴 데이트 비용 1000만 원을 갚아라”며 지불각서 작성을 강요했다. 이에 B 씨는 지난해 5월 7일까지 1000만 원을 지급하기로 한 지불각서를 신체포기각서와 함께 건네줬다.
하지만 각서만으로 부족하다고 판단한 A 씨는 지난해 5월 법원에 대여금 청구소송을 냈고 1심 재판부는 지불각서를 근거로 A 씨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나 ‘강압에 의한 각서는 무효’라는 사실을 알게 된 B 씨는 항소했고 항소심 재판부는 “신체포기각서를 동반한 점으로 볼 때 B 씨가 쓴 지불각서는 강박에 의한 의사표시로 볼 수 있어 무효”라며 1심 판결을 뒤집었다.
군복무 스트레스로 머리 전체가 빠져버린 남자가 힘겨운 싸움 끝에 국가유공자로 대우받게 됐다.
평소 탄탄하고 윤기나는 머리카락을 자랑했던 D 씨(27). 그러나 입대 이후 지독한 군 복무 스트레스에 시달리던 D 씨는 갑작스런 탈모증상으로 고통을 겪게 된다. 하루하루 무섭게 빠지는 머리카락에 놀란 D 씨는 국군통합병원에 입원했으나 상태는 악화될 뿐이었고 결국 전두탈모증 진단을 받았다.
2005년 머리는 물론 눈썹 등 다른 부위의 털들도 빠진 ‘만신창이’ 상태로 전역한 D 씨는 전역 직후 “무더위 속에 방탄모를 쓰고 고된 훈련을 하는 등 군 생활의 스트레스로 인해 탈모증이 발병했다”며 보훈청에 국가유공자 등록 신청을 했으나 거부당했다.
하지만 법원은 달랐다. 지난 2월 24일 수원지법은 D 씨가 수원보훈지청장을 상대로 낸 ‘국가유공자 등록거부처분 취소’ 소송에서 D 씨의 손을 들어줬다. “입대한 지 1년 9개월이 지나 탈모 증상이 발생한 점, 탈모의 원인이 될 수 있는 다른 질환에 대한 검사결과 모두 정상인 점 등을 종합하면 원고의 범발성 탈모는 군 생활 중 교육훈련 또는 직무수행에 따른 스트레스에 의해 발병했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 재판부의 판단이었다.
▶▶ ‘장난 전화’ 파경책임 없는 이유
매일같이 계속되는 괴전화로 인해 부부사이에 불신이 생겨 파경으로 치달았다면 장난전화를 건 사람은 책임이 있을까. 아이러니하게도 아무 이유없이 장난전화를 해서 멀쩡한 부부를 갈라놓은 ‘못된 여성’은 파경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이 나왔다.
지난 2002년부터 E 씨의 집에는 받으면 끊어버리는 전화가 하루에도 수차례 걸려왔다. 결혼한 지 25년이 넘었지만 E 씨 부부는 서로 배우자의 외도를 의심하며 갈등을 빚게 됐고 E 씨가 부인을 폭행하는 일도 벌어졌다. 결국 이들은 2004년 협의이혼했다. 이혼 1년 뒤 E 씨의 부인은 “전화를 건 사람이 누군지 밝혀 달라”며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고 추적 끝에 50대 여성이 아무 이유 없이 E 씨의 집에 전화를 걸어댔으며 심지어 하룻밤에 115회나 전화를 걸었다 끊기도 한 사실을 밝혀냈다.
이에 E 씨의 부인은 “장난전화 때문에 부부관계가 파탄 났다”며 장난전화를 한 여성을 상대로 서울가정법원에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하지만 재판부는 “부부 이혼의 직접적 원인은 남편의 폭행과 생활비 미지급에 따른 신뢰 상실이지 전화가 아니다”라며 원고패소 판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