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신문] 한 시대는 노래로 기억된다. 과거를 추억할 때 마치 배경음악처럼, 당시에 즐겨 듣거나 유행했던 노래가 함께 떠오르는 것은 누구나 경험하는 일이다.
대중음악 평론가 임진모는 <팝, 경제를 노래하다>에서 1930년대 경제공황기부터 2000년대 세계금융위기까지 경제사를 대중음악을 통해 훑어 내려간다.
이 책은 1930년대 대공황기의 희망가 ‘무지개 너머 어딘가에(Over the Rainbow)’로부터 시작한다. 영화 <오즈의 마법사>에서 도로시가 불렀던 노래다. 무지개 너머 어딘가에는 암울한 대공황기의 경제 현실에서 모두가 바라는 한 줄기 희망의 빛이라는 정서적 공감대를 낳았기에 그처럼 인기를 끌 수 있었다.
1960년대 캘리포니아는 미국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주가 됐다. 풍부한 자원을 바탕으로 한 넓은 고용 기회 덕분이었다.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다는 긍정과 낙관, 나아가 쾌락이 캘리포니아 사람들의 정서를 지배했다. 이곳의 음악이라면 뭐니 뭐니 해도 서핑 뮤직이었다. 요즘도 여름만 되면 심심치 않게 들려오는 ‘서핑하는 미국(Surfin’ USA)’은 단연코 이 시대 캘리포니아의 주제곡이라 할 만하다.
대공황 이후 최악의 경기침체를 겪고 있던 1970년대에 펑크와 디스코 음악이 크게 유행했던 것은 경제 상황에 대한 ‘반작용’으로 볼 수 있다. 호주머니가 텅 비어 심리적으로 쪼그라든 시절에 춤으로 시름을 잊고자 한 것이다.
2000년대 세계금융위기로 경제가 붕괴된 상황이 반영된 그린 데이의 ‘네 적을 알라(Know Your Enemy)’로 책을 마무리한다. 그 사이에 주로 영미 대중음악사 흐름을 통해 세계 경제 상황을 짚어간다.
한국에선 1990년대 후반, 대중은 크라잉 넛의 ‘말 달리자’로 대표되는 펑크 록에 빠져들었다. 영국에서 1970년대 불황기 전설의 펑크 록 밴드 섹스 피스톨스가 태어난 것과 마찬가지다. 한국이나 영국이나 일자리를 못 얻어 생계를 위협받고 사회적 존재감이 바닥을 기는 청년들은 세상을 향해 분을 퍼부어댔다.
이처럼 IMF 체제 시절 크라잉넛과 노브레인 등의 펑크 록이 유행한 것이나 최근 글로벌 센세이션을 일으킨 ‘강남 스타일’도 소개하며 국내 독자들의 흥미를 끈다.
손석희 앵커는 추천사에서 “첫 부분을 읽으면서 ‘풋’ 웃음을 몇 번인가 했다. 사실 팝음악의 가사에 대한 해석은 귀걸이 코걸이인 면이 있어서 ‘임진모 평론가가 또 한 번 재기를 발산했군…’ 하는 정도였다. 그런데 중반을 넘으면서 자세를 고쳐 잡았다. ‘아, 이건 장난이 아닌데?’였다. 팝음악의 역사에 경제사회사를 이렇게 접목하다니…. 리듬만 넘쳐나는 시대에 이 책이 감사하다”라고 전했다.
임진모 지음. 아트북스. 정가 1만 5000원.
연규범 기자 ygb@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