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을 실현하지 못했다고 위축되면 대장부가 아니다. 제자 공손추가 맹자에게 “선생님은 어떤 점에서 뛰어난 것이냐”고 물었을 때 맹자가 “나는 남의 말을 잘 이해하며 나의 호연지기(浩然之氣)를 잘 기른다”고 한 것은 우연이 아니겠다. <맹자>는 홀로 수신(修身)하려는 사람에서부터 새로운 세상을 꿈꾸려는 사람들까지 의미 있는 책이겠다.
<맹자> 열풍이라고 한다. 21세기에 왜 뜬금없이 <맹자>인가 했더니 거기엔 드라마 <정도전>이 있었다. 드라마 <정도전>이 나오기까지는 나도 색이 아주 다른 남자, 정도전과 정몽주가 친구라는 것을 몰랐다. 부친상을 당해 낙향하여 3년상을 지내고 있을 때 정몽주가 정도전에게 선물한 책이 <맹자>였단다. 고려의 충신 정몽주가 눈빛이 살아있는 무서운 후배에게 <맹자>를 건넨 이유는 분명하겠다. 유교의 핵심 덕목이라 할 수 있는 충효인의(忠孝仁義)의 철학을 나누고 싶어서였을 것이다. 그런데 정도전은 그 맹자에서 충(忠)이나 인(仁)의 철학을 읽은 것이 아니라 혁명의 철학을 읽는다.
“백성이 가장 귀하다. 사직이 그 다음이고, 임금은 가볍다. 따라서 민심을 얻으면 천자가 된다.”
맹자는 하늘은 백성의 눈을 통해 보고, 백성의 귀를 통해 듣는다고 믿었다. 당연히 민심을 얻는 지도자는 천자가 되지만 민심을 얻지 못한 지도자는 가벼이 버림을 받을 수 있다고 보았다. 정도전은 그 <맹자>에서 천명을 잃은 왕조는 바뀌어야 한다는 혁명 사상을 이끌어낸 것이다. 분명히 <맹자>에는 국민이 주인이라는 민주주의 사상은 없다. 그러나 민심이 근본이라는 민본주의는 <맹자>의 근간이다. 가난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나 홍건적의 난 때 농민혁명군에 가담하여 황제에 자리까지 오른 주원장은, 그가 유교의 나라를 열었음에도 불구하고 유교 경전인 <맹자>를 금서로 삼는다. 민심을 얻어 황제에까지 오른 그였으나 정작 천자가 되어서는 천자의 자리가 민심에 의해 좌지우지될 수 있다는 철학이 부담스러웠을 수도 있겠다.
분명한 점은 민심을 귀하게 여기지 못하는 리더는 버림을 받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사람은 리더로서 자질이 없다는 것이다. 맹자가 말하는 것은 분명하다. 그것은 백성과 더불어 도를 행할 수 있는 사람, 민심을 천심으로 받들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지도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주향 수원대 교수
※본 칼럼은 일요신문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