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반에 5~8선으로 ‘거침없이 하이킥’
<1도>를 보자. 10월 13일 일본 제53기 십단전 본선. 백은 조선진 9단, 흑은 쑤야오궈(蘇曜國) 9단. 조선진 9단은 1970년생. 82년에 일본에 건너가 당시 안도 다케오(安藤武夫, 작고) 6단에 사사해 84년에 입단했다. 첫 손에 꼽을 전적은 1999년 제54기 본인방전 우승으로 3대 기전 타이틀 홀더 명단에 이름을 올린 것. 쑤야오궈 9단은 1979년 중국 광저우(廣州) 출신으로 91년 도일, 94년 입단. 굵직한 타이틀은 아직 없지만 2008~2011년 ‘정예리그’에서 우승한 경력이 있다.
흑1, 눈을 의심케 하는 가히 파천황의 첫 점이다. 흑3을 보고는 사람들이 기보 전달 착오일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았는데, 좌상-좌하귀 백에 걸친 흑5, 7에는 그만 질리고 말았다. 기보 전달 착오가 아니었다. 우상귀 소목을 차지한 흑9에서 바둑은 비로소 정상 비슷하게 돌아가는 것 같았다.
<2도>는 이어진 실전. 우하귀 백1에는 흑2로 들이댄다. 이것도 걸침인지. 그러나 놓이고 보니 그럴 듯해 보였다. 백3~11 다음 흑12를 선수하고 14로 벌리니, 해설자의 말마따나 “말이 되는 그림이 그려지고” 있었다. 171수, 흑 불계승.
“흑의 포석은 선악을 논하기 어렵다. 그러나 성립 여부를 차치하고 일단 신선하기 그지없다. 사실 초반에 1선이나 2선만 아니라면 어디에 두어도 한 수의 가치가 있다. 문제는 이후의 운영이다. 쑤야오궈 9단의 과감한 시도, 승부를 떠나 미지의 영역을 개척해 보겠다는 자세는 칭찬받을 일이다. 바둑의 신천지를 열었던 ‘신포석 혁명’도 그런 발상으로 이루어진 것 아닌가.” “신기하다”면서 껄껄 웃으며 바둑을 감상하던 천풍조 9단의 촌평이었다.
<3도>는 1933년, 본인방 가문의 마지막 장문인 제21세 본인방 슈사이(秀哉) 명인이 환갑을 맞은 기념으로 우칭위안과 둔 바둑. 흑이 우칭위안이다. 1933년은 신포석이 발표된 해였고, 대각선으로 3-3과 화점과 천원을 차지한 흑의 1-3-5가 바로 ‘중앙과 속도’라는 신포석의 사상적 배경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으나 우칭위안은 찬사와 비난을 동시에 받았다고 전해진다. 파격적인 출발은 박수를 받았지만 3-3이나 천원은 그때까지도 일본 바둑계에서는 금기였던 곳, 무엇보다도 위계질서를 존중하고 상하관계에 엄격했던 일본 바둑계로서는 명인을 상대로 3-3과 천원을 들이댄 것은 용납할 수 없는 무례요, 오만불손이었던 것이다.
바둑은 10월 16일 시작해 이듬해 1월 29일 끝났다고 한다. 바둑 한 판에 무려 100일 넘게 걸린 셈이다. 당시는 상좌에 앉은 사람이 “오늘은 여기까지”라고 하면 바둑은 거기서 중단되었다고 한다. 슈사이 명인은 100여 일 동안 14차례나 일시 중단을 거듭한 끝에 2집을 이겼다.
<4도>는 미국의 아마추어 애기가인 인공지능 프로그래머 부르스 윌콕스(Bruce Wilcox, 63)가 1984년에 선보인 ‘만리장성 포석’이다. 그해에는 또 한국기원에서 ‘한-미 친선 바둑교류전’이 있었다. 미국 팀에 윌콕스가 있었고, 우리 바둑계를 30여 년 동안이나 오래, 크게 후원하다가 2004년에 64세를 일기로 아깝게 타계한 부산의 기업가 김영성 사장이 그의 상대였다. 바둑이 끝난 후 김 사장은 “처음에는 당황해서 진땀을 흘렸다”면서 고개를 흔들었다. 김 사장은 아마5단 이상의 기력이었으니 윌콕스의 바둑 실력이나 그의 만리장성 포석도 결코 만만치는 않았던 것이다. 바둑은 김 사장이 반집으로 신승했다.
<5도>와 <6도>는 중국-일본 젊은 기사들이 10월 1일 대만에서 열린 ‘2014 국제신예대항전’ 1라운드에서 내놓은 시제품들. <5도>의 대국자는 중국의 렌샤오(連笑, 20) 4단과 일본의 시다 다쓰야(志田達哉, 24) 7단. 흑을 든 렌샤오는 양고목 다음 변에 벌리는 V포진을 들고 나왔다가 283수 만에 반집을 졌다. <6도>의 백은 일본의 이다 아쓰시(伊田篤史, 20) 8단이고 흑은 요즘 중국의 신예 중에서도 최고의 기재로 꼽히는 커제(柯潔, 17) 4단. 이다 8단은 백2로 대고목, 4로 3-3, 6으로 외목을 차지한 화려한 조합을 선보였다. 백8의 협공이나, 흑9의 걸침에 백10으로 붙여가는 것도 흔히 볼 수 있는 아니었다. 205수 만에 백이 불계승. 렌샤오는 실패했으나 이다는 성공한 것.
국제신예대항전에서 나온 작품들 중에는 희귀한 대고목 또는 아예 이름을 붙일 수 없는 곳에 착수한 기보들이 <5-6>도 말고도 여러 개가 더 있다. ‘사이버오로’ 기보감상-해외기보 코너에서 풋풋한 기보들을 감상하실 수 있다.
이들의 시제품이 본격 상품화에 성공할지 어떨지는 모른다. 신예대항전이니만큼 부담이 덜하다는 것이 창작 의욕을 북돋았을 수도 있다. 다만 이들뿐만 아니라 중국에서는 젊은 여자 기사들도 신제품 개발에 동참하고 있는 것을 보면 조만간 시제품은 쏟아져 나올 것 같고, 그러면 새 시대의 물결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 젊은이들의 시제품 기보가 눈에 띄지 않는 것이 벌써부터 좀 아쉽다. 가장 먼저 생각되는 것은 국가대표-상비군 훈련시간에 우리도 연구팀을 가동시키면 어떨까 하는 것이다. 어떤 평자는 이렇게 말한다.
“천풍조 9단의 말처럼 어디에 두어도 한 수의 가치가 있는 것이고, 그래서 앞으로 기존의 어떤 틀에도 얽매이지 않고, 내가 두고 싶은 자리에 내 마음대로 두는 시대가 온다면 그게 바로 포스트모더니즘이요, 해체요, 그런 거 아닌가. 세계적 사조에서 조금은 뒤진 감이 있지만…^^ 그래도 바둑이 세계적 사조에 동참하는 것이니 흥미로운 일 아닌가.”
이광구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