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은 사라지고 ‘벼락’만 왕창
최근 로또 1등에 당첨되고도 절도범으로 전락, 경찰에 구속된 사건을 계기로 로또신의 저주를 받은 사람들의 기막힌 사연속으로 들어가봤다.
# 어느 절도범의 인생 ‘도루묵’
지난 9월 29일 상습 절도 혐의로 검거된 황 아무개 씨(28). 이미 전과 20범이 넘는 황 씨는 지난 4월 중순쯤 소년원에서 알게 된 후배와 함께 금은방에 들어가 150만 원 상당의 금목걸이 두 개를 훔쳐 달아나는 등 진해와 대구, 부산 등지에서 모두 18차례에 걸쳐 500만 원 상당의 금품을 훔쳐온 혐의를 받고 있다.
놀라운 것은 황 씨가 로또에 당첨됐던 ‘행운의 사나이’였다는 점이다. 어릴 때부터 절도 등으로 소년원을 들락거리던 황 씨는 마산의 한 임대아파트에서 꿈도 희망도 없는 생활을 하고 있었다. 특히 황 씨는 2005년 3월 마산의 한 PC방에서 종업원을 폭행하고 20만 원을 뺏은 혐의로 수배가 내려진 상태였다.
하지만 ‘수배자’ 신분인 황 씨에게도 인생역전의 기회는 찾아왔다. 4개월 후 마산에서 산 로또가 1등(19억원)에 당첨, 13억 9000만여 원을 거머쥐는 행운을 잡은 것이다. 황 씨는 그간의 생활에서 탈피, 황태자 같은 생활을 시작했다.
아버지에게 개인택시와 주택을 구입해주는 등 난생 처음 ‘효자노릇’을 한 황 씨는 형에게도 번듯한 PC방을 차려줬다. 자신도 버젓한 술집 사장님으로 변신했다. 1억 원이 넘는 드림카를 구입한 황 씨는 주변인들에게도 수천만 원을 건네는 등 선심을 베풀었다.
하지만 황 씨의 화려한 생활은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로또 당첨 8개월 만인 2006년 3월 5일 앞서 저지른 강도혐의로 검거된 것이다. 피해금액은 두 건을 합쳐 약 40만 원에 불과했지만 이미 특수절도죄 등으로 징역 1년 6월을 선고받은 전력이 있던 황 씨에게 법원은 1심에서 징역 6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하지만 황 씨는 거액을 주고 변호사를 선임, 항소했고 그해 11월 14일 열린 항소심에서 벌금 700만 원을 선고받고 구금 88일 만에 풀려나게 된다.
자유의 몸이 된 황 씨는 물 만난 고기가 따로 없었다. 돈이 바닥나는 줄도 모르고 흥청망청 써대던 황 씨는 어느새 당첨금을 다 써버리고 만다. 하지만 이미 돈 맛을 알아버린 황 씨는 헤픈 씀씀이를 줄일 수 없었다.
황 씨의 도벽이 또다시 발동한 것도 그 무렵이었다. 범죄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한 황 씨는 지난해 4월부터 또다시 금은방과 편의점 등에서 절도를 하거나 사기를 치는 수법으로 500만 원 상당의 금품을 챙긴 것으로 드러났다. 방탕하고 무계획적인 생활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대박청년에게 돌아온 것은 차가운 쇠고랑과 전과 23범이라는 암울한 꼬리표뿐이었다.
# 어머니 살해 패륜아의 일장춘몽
어머니를 살해한 패륜아에게도 로또 1등에 당첨되는 행운은 주어졌다. 그러나 그 행운은 일장춘몽에 불과했다.
2004년 7월 어머니를 살해한 혐의로 검거된 박 아무개 씨(35)를 조사하던 경찰은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박 씨가 검거되기 얼마 전 로또 1등 당첨금 30억 6000만 원 가운데 세금을 제외한 21억여 원을 수령한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박 씨는 문제의 로또에 대해 자신이 구입한 것이라고 우겼지만 신은 ‘공평’했다.
경찰 수사결과 박 씨의 1등 당첨 로또복권은 박 씨가 한 취객으로부터 훔친 지갑에서 나온 것으로 확인된 것이다. 진짜 로또 주인을 가리는 결정적인 단서는 박 씨가 어머니를 살해한 현장에서 발견된 지갑 주인의 수첩이었다. ‘메모광’이었던 지갑 주인이 구입한 로또 번호를 이 수첩에 적어두었던 것이다.
자신이 살해한 어머니의 사체를 한달 이상 집안에 방치한 채 버젓이 생활해왔던 패륜아에게 로또신은 어김없이 저주를 내렸다. 어머니의 부패한 시신에서 나는 냄새 때문에 덜미가 잡히게 된 박 씨는 존속살해 및 절도로 법원으로부터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미처 쓰지도 못한 채 통장에 고스란히 모셔놨던 20억 원의 당첨금도 진짜 주인에게 돌아간 것은 물론이다.
# 제버릇 개 못준 장물아비
수차례 장물아비 전과가 있던 전 아무개 씨(36)는 지난 2003년 5월 로또 1등에 당첨되어 34억 원의 당첨금을 손에 쥐었다. 조사 결과 57평짜리 고급아파트에 거주하고 있던 전 씨는 대형 성인 오락실을 운영하고 있었을 뿐 아니라 수십억 원대 땅까지 소유하고 있는 등 남부럽지 않은 재력가였다. 하지만 제 버릇 개 못 준다고 했던가. 전 씨의 욕심은 끝이 없었다. 전 씨는 훔친 물건들을 귀신같이 처분해주는 ‘전공’을 살려 아슬아슬한 장물아비 행각을 멈추지 않았고 결국 빈집털이범으로부터 장물을 구입한 혐의로 경찰에 검거됐다. 로또에 당첨되고서도 장물아비의 유혹을 떨쳐버리지 못한 것은 로또신의 심술 때문이었을까.
# 이보다 억울할 수 없다
이보다 억울한 사람이 또 있을까. 로또에 당첨되었지만 풍족함을 누려보지도 못하고 운명을 달리한 기구한 사람도 있다.
2005년 5월 경북 포항에 사는 김 아무개 씨(46). 우연히 구입한 로또가 2등에 당첨된 것을 확인한 김 씨는 은행으로 달려가 4500만 원의 돈을 수령했다. 당첨금의 사용처를 두고 행복한 고민을 하던 김 씨는 일단 다음날 저녁 친구들을 만나 들뜬 기분으로 축하주를 마셨다.
하지만 이날 새벽 집에서 잠을 자던 김 씨는 돌연 사망했다. 김 씨는 평소 갑상선 이상으로 약을 복용해 왔다고 하는데 가족들이 부검을 원치 않아 정확한 사망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김 씨가 복권이 당첨된 기쁨으로 흥분된 상태에서 술을 마신 후 잠을 자다 심장마비로 숨진 것으로 추정된다”는 것이 경찰의 의견이었다.
# 당첨금 다툰 예비신부 경찰행
돈 앞에서는 사랑도 눈을 가리는 것일까. 2003년 8월 21일 폭행혐의로 울산중부경찰서에 입건된 예비부부 A 씨(38)와 B 씨(33). 경찰에 따르면 어려운 형편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지하 월세방에서 2년 넘게 행복한 동거생활을 해왔다.
아름다운 예비부부였던 두 사람의 관계가 틀어지게 된 것은 그해 5월 동거남 A 씨가 로또에 당첨되면서부터다. 34억 원이라는 거금을 수령한 후부터 두 사람의 관계는 삐걱거리기 시작했고 돈의 분배를 놓고 잦은 다툼이 있었다는 것.
결국 20일 오전 3시께 울산의 한 아파트 경비실 앞에서 ‘당첨금 중 5억원을 달라’는 동거녀 B 씨와 ‘내가 왜 돈을 나눠줘야 하냐’는 A 씨 간에 심한 다툼이 벌어졌고 이는 주먹다짐으로 이어져 결국 두 사람은 등을 돌린 채 나란히 경찰차에 올라야 했다.
이쯤되면 로또 당첨 후 무탈하고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로또신의 저주’를 넘어야 한다는 말도 그냥 흘러들을 얘기만은 아닌 듯하다.
이수향 기자 lsh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