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다 쫓겨날 판, 제발 오지 마세요”
지난 10월 22일 손학규 전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을 만나고 싶다는 <일요신문> 요청에 대한 손 전 고문 측 입장은 단호했다. 지도에 표시되지 않는 곳에 은거 중이고, 정동영 고문조차 만나지 않고 돌려보냈을 정도이니, 직접 가봐야 헛걸음이라는 조언이었다. 실제 정 고문이 다녀가기 수일 전에는 지지자 수십 명이 백련사를 이 잡듯 뒤졌으나 만나지 못하고 돌아가기도 했다고 한다.
손학규 전 고문이 칩거 중인 토굴로 가는 길에 붙어있는 출입금지 표시.
실마리는 템플스테이를 위해 백련사에 머물고 있는 한 중년 여성에게서 나왔다. ‘정말 두 분이서만 토굴에 사시느냐’는 기자의 물음에 이 여성은 “점심 공양에만 모습을 보이시고, 나머지는 정말 조용히 지내신다. 가끔 심부름을 봐주는 분이 오가는 것 같더라”고 덧붙였다.
그의 안내를 토대로 우여곡절 끝에 찾아간 손 전 고문의 토굴은 5평 남짓 허름한 토담집이었다. 화장실도 변변찮고 마땅한 샤워시설도 없었다. 초입에는 “묵언수행 중”, “정진 중 출입금지”와 같은 안내문이 부착돼 있기도 했다.
손 전 고문은 현재 이곳에서 자서전 집필에 몰두하고 있다고 전해진다. ‘세속의 일을 봐 준다’는 손 전 고문의 한 인사는 “외지인들이 찾아 소란이 있을 때마다 조마조마한 마음”이라며 “이곳에서 손 전 고문은 야당 대표 출신 정치인이 아닌 손님일 뿐이다. 곤란한 처지를 이해해 달라”고 읍소했다.
현재 손 전 고문은 아침마다 백련사에서 다산초당까지 이어진 길을 산책하는데, 정약용 선생이 걸었던 ‘남도유배길’이다. 1일 1식을 원칙으로 점심은 백련사에서 공양하고 나머지는 유정란, 고구마 등으로 그때그때 간단히 때운다. “마음을 깨끗이 하고, 몸을 단정히 하며, 말을 삼가고, 행동을 바르게 하는” 네 가지 원칙을 따르려 애쓰고 있다고 한다.
백련사 인근 다산초당에서 다산기념사업회를 이끌고 있는 윤동환 전 강진군수는 “저나 동네 주민들 역시 손 전 고문을 만나보고 싶지만 일부러 연락하지 않고 모른 척하고 있다”며 “한겨울이 되면 새로이 기거할 곳을 마련해야 하지 않겠느냐. 이곳에서 오래도록 정착하실 것으로 믿는다”는 바람을 남기기도 했다.
전남 강진=김임수 기자 ims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