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지는 고발 압박…재계는 떨고 있다
지난 10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의 국정감사에서는 중소기업청이 불공정 기업에 대해 의무고발권을 제대로 행사하지 않고 있다는 질타가 이어졌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지난 10월 10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의 중소기업청 국정감사에선 대기업 횡포가 여전한데도 중소기업청이 그나마 확보한 의무고발권을 제대로 행사하지 않고 수수방관하고 있다는 질타가 이어졌다.
노영민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중기청은 올 1월부터 대·중소기업 간 불공정거래를 고발할 수 있는 전속고발요청권이 생겼음에도 전담인력조차 제대로 갖추지 않고 이를 방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같은 당 소속 박완주 의원은 “중기청은 9월까지 공정위로부터 60건을 통보받아 검토를 마친 21건 가운데 3건만을 고발토록 요청했다”며 “중기청은 의무고발요청권을 부여받고도 전담인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적극적인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재계에 따르면 지난해 공정거래법과 하도급법이 개정돼 2014년 1월 17일 이후 체결되는 하도급계약부터는 공정위의 전속고발권 폐지 규정이 적용되고 있다. 당초 공정위의 전속고발권 폐지는 감사원, 조달청, 중소기업청에도 형사고발 권한을 부여해 해당 기관으로부터 고발 요청이 있는 경우 공정위가 의무적으로 고발하도록 한 것이다.
그러나 재계가 거세게 반발하면서 공정위 전속고발권은 그대로 두고 감사원·조달청·중소기업청이 요청할 경우 공정위가 검찰에 고발하는 의무고발권으로 후퇴했다. 의무고발권은 공정위가 ‘위반의 정도가 중요하지 않다고 판단해 고발하지 않기로 결정한 사건’을 중기청에 통보하면 이를 받아 심의해 고발을 요청하도록 하고 있다. 중기청 자체 조사권과 고발권이 배제된 것으로 입법 강도가 크게 완화된 것이다.
그럼에도 기업 입장에선 검찰고발 권한을 가진 기관이 늘어난 것이어서 제재가 보다 강화된 측면이 있다. 기업들은 과징금보다 법인과 총수 등에 대한 검찰고발을 더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최근 국감에서 중기청이 질타를 받는 이유는 대기업들의 불공정 거래관행을 제재할 권한을 부여했는데도, 이를 제대로 행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중소기업청이 국감에 제출한 ‘의무고발 요청권 운영현황’을 분석해 보면 올 들어 지난 9월까지 공정위로부터 60건을 통보받아 검토를 마친 21건 가운데 3건만을 고발토록 요청했다. 의무 고발권이 적용된 불공정행위는 국내 7위 조선업체인 성동조선해양, 특수목적용 기계제조업체인 SFA, 시스템통합(SI)업체 SK C&C다.
공정위는 중소기업청의 고발요청을 접수하고 지난 9월 검찰에 고발조치했다. 이들 업체는 수급사업자들에게 하도급대금을 무리하게 인하(단가 후려치기)하거나 수십 건의 거래를 계약서 없이 진행해 공정위에 적발된 바 있다. 하지만 당시 공정위는 시정조치와 함께 과징금을 부과했을 뿐 검찰에 고발하지는 않았는데, 중기청이 고발권을 행사한 것이다.
박완주 의원은 국감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공정한 시장질서 확립을 강조하고 중소기업 등 경제적 약자 보호를 위해 불합리한 거래관행 개선을 약속했지만 지켜지지 않고 있다”며 “중소기업에 경제민주화는 사라지고 창조경제는 실체가 없음이 드러난 것”이라고 지적했다.
공정위의 전속고발권 폐지는 ‘경제검찰’로서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며 도입된 것이다. 공정위가 감시대상인 기업 편을 들어 검찰수사를 요청해야 하는데도 임무를 방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민병두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지난 17일 공정위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분석한 결과 2011~2014년 9월 ‘경고’ 이상 행정조치 가운데 검찰고발 비율은 2.5%에 불과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공정위가 불공정행위를 한 기업에 내리는 행정조치는 경고, 시정권고, 시정명령, 과징금, 검찰고발 등으로 구분된다. 이 중 과징금부터는 기업이 직접적인 불이익을 보게 되는 ‘유효제재’에 해당된다. 특히 검찰고발은 가장 강도가 높은 조치로 꼽힌다.
민병두 의원에 따르면 이 기간 동안 신고사건 총 1만 47건 중 2645건이 행정조치를 받았고, 이 가운데 검찰고발건수는 66건에 불과했다. 전속고발권이 ‘전속 고발방해권’으로 남용되고 있음을 보여준다는 게 민 의원의 설명이다.
공정위와 중기청에 대한 고발권 행사 압박이 높아지자 기업들은 다시 ‘기업 사정(司正)’ 분위기가 조성되는 것 아니냐며 긴장하고 있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지난해 갑의 횡포 논란 이후 사실상 불공정거래 관행은 많이 줄었다고 봐야 한다”면서 “국회에서 다시 공정위와 중기청을 압박하며 왜 대기업들을 고발하지 않느냐고 으름장을 놓으면 우리로선 더 어찌할 도리가 없다”고 볼멘소리를 했다.
또 다른 대기업 관계자는 “새정치민주연합이 지난해 을지로위원회 등을 만들어 정기국회 때 톡톡히 재미를 봤다고 판단해 올해도 유사한 패턴을 보이는 것 같다”면서 “한 차례 홍역처럼 지나간 경제민주화 이슈를 되살릴 수 있다고 착각하는 것 같다”고 주장했다.
재계는 공정위의 전속고발권 폐지 이후 상황에 대해 불만이 가득하다. 전속고발권을 대체해 형사 제재가 늘어날 여지가 많다는 이유에서다. 전국경제인연합회 관계자는 “다른 나라들과 달리 우리나라는 담합은 물론 불공정거래행위에 대해서도 형벌을 부과할 수 있다. 형벌 적용대상을 확대할 경우 기업들에게는 치명적이 될 수 있다”며 “공정위가 조직 보강을 통해 기업조사를 확대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는 얘기가 돌아 대기업들이 긴장하고 있다. 경제검찰의 칼끝이 기업들을 향하는 게 아닌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박웅채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