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한 ‘가교’ 믿다 줄줄이 낭떠러지로
국내에서 잘 알려진 한 중견식품기업 회장의 사위였던 김 아무개 NTC카자흐스탄 회장. 그는 지난 1991년부터 시작된 이 기업의 중앙아시아 진출 프로젝트 선봉에 서서 카자흐스탄 땅을 처음 밟았다. 장인어른의 사업을 돕기 위해 간 그곳에서 그는 고려인 출신인 카자흐스탄의 유력 여성 정치인을 만나 사랑에 빠졌다.
김 회장은 결국 본부인과 이혼한 후 이 여성과 재혼을 했다. 김 회장을 카자흐스탄으로 보낸 이 식품회사 회장으로서는 사업 잘하라고 사위를 믿고 보냈다가 애꿎게도 딸만 이혼녀로 만든 셈이었다.
김 회장과 사랑에 빠진 이 고려인 여성은 카자흐스탄에서 몇 개의 호텔을 소유하고 있는 재력가이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여성의 도움 덕분이었는지 본인의 능력이 뛰어나서인지 몰라도 그는 카자흐스탄에서 빠르게 자리를 잡았다. 그는 NTC카자흐스탄이라는 회사를 세워 호텔, 건설, 자원개발 등의 다양한 사업을 벌여 나갔다. 그가 카자흐스탄에서 자리잡은 사연은 유력 일간지에 소개되기도 했다.
해외에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던 그는 한국으로 눈을 돌렸다. 국내 한 건설업체와 손을 잡고 카자흐스탄에 대규모 주택건설 사업을 벌였고 동시에 국내 에너지 전문기업과 자원개발 사업을 벌인 것.
동시에 그는 한국 코스닥업체를 인수하면서 한국 시장 진출도 가속화했다. 그가 한국진출의 가교로 삼았던 회사가 바로 이번에 재벌 3세들의 주가조작으로 논란이 됐던 엔디코프다. 당시 업계 내에서는 “김 회장이 엔디코프를 우리나라 자본이나 산업체의 카자흐스탄 진출 창구로도 활용할 계획”이라는 소문이 파다했다.
김 회장과 손을 잡고 사업을 진행한 회사들은 처음에는 김 회장의 사업 수완에 상당히 놀랐던 것으로 전해진다. 김 회장과 사업을 했다는 한 기업인은 “지난해 말 건축법이 바뀌어 허가가 까다로워지기 바로 직전에 김 회장이 손을 써 사업개발에 필요한 모든 인허가를 다 받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기업들의 바람과는 달리 사업은 순조롭지 않았고 그와 손잡은 회사들로부터 좋지않은 이야기가 돌기 시작했다. 먼저 김 회장과 손잡고 도시개발 계획사업을 벌인 A 건설사. 이 회사는 김 회장의 제안으로 카자흐스탄에서 대규모 사업을 시작했다. 김 회장은 카자흐스탄 정부와 이 회사 사이에서 일종의 로비스트 역할을 했다. 하지만 여기에 사용할 자금문제로 회사와 김 회장 사이에 앙금이 생기기 시작했고 결국 둘은 올해 중반 완전히 갈라섰다. 이 와중에 일각에서는 “이 건설사가 김 회장에게 300억 원가량 사기를 당했다”는 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이와 관련해 A 사 관계자는 “원래 시행권을 김 회장과 회사가 50%씩 나눠 가지고 있었는데 은행이 PF(Project Financing:사업자금 조달의 기초를 사업주의 신용이나 물적담보에 두지 않고 프로젝트 자체의 경제성에 두는 금융수법)를 받는 조건으로 김 회장과의 사업을 정리할 것을 요구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김 회장과의 자금 문제는 정확하게 얘기해 줄 수 없으며 갈라서는 조건으로 나중에 일정 부분의 이익금을 나눠주기로 했다”고 말했다.
더 큰 문제는 자원개발 사업분야에서 일어났다. 김 회장은 카자흐스탄 자원개발 사업을 물색하고 있던 한국의 코스닥 업체인 G 사에 접근했다.
김 회장과 이 회사는 2006년 10월 카자흐스탄 내 모 유전 및 광산의 지분 공동인수를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했고, G 사는 이를 위해 김 회장에게 200억 원을 대여했다. 김 회장이 사업에 필요한 모든 인허가를 받는 조건이었다. 200억 원이란 돈은 당시 G 사 자기자본의 76.29%에 달하는 금액으로 회사 입장에서는 사활을 건 투자였던 셈이다.
하지만 김 회장의 마음이 바뀌면서 그는 지난해 4월 G 사와의 사업제안을 철회했다. 보다 자세히 얘기하면 김 회장에게 대여한 200억 원을 포함, 총 300억 원을 받는 조건으로 공동 인수키로 했던 광산 및 유전과 관련된 모든 권리를 김 회장 측에 넘기기로 한 것이다.
G 사 입장에서는 불과 반년 만에 100억 원의 이익이 나는 셈이어서 누가 봐도 손해보는 장사는 아니었다.
하지만 김 회장에게 갔던 투자금은 돌아오지 않았다. G 사측에 따르면 김 회장 계약철회를 한 지 한 달 뒤인 지난 5월에 300억 원을 지급하기로 했다. 그러나 그는 이 돈을 갚지 못했고 결국 G 사는 12월까지 기간을 연장하고 그 조건으로 김 회장의 엔디코프 주식을 담보로 잡았다. 그러나 김 회장은 12월까지도 투자금을 갚지 못했고 이 회사는 결국 담보로 잡은 주식을 내다팔았고 이로 인해 일부 금액을 회수했다. 하지만 이 주식을 산 H 씨도 잔금을 치르지 않아 G 사는 결국 상당한 자금 압박을 받게 됐다. 또한 이 회사 오너의 지분율도 38.87%에서 17.98%로 낮아져 경영권마저 위협받게 됐다.
김 회장이 이끌었던 엔디코프도 결국 수백억 원대의 부채를 갚지 못하면서 흔들리기 시작했다. 몇 차례 경영권 변경과정을 거치면서 지난해 2만 원이 넘던 주가가 최근에는 1000원 미만까지 떨어졌다.
김 회장이 손대는 사업마다 심각한 채무관계가 발생하면서 김 회장과 접촉한 기업들 사이에서는 그와 관련된 무성한 뒷얘기가 나오고 있는 상태다.
김 회장과 사업을 했던 회사의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김 회장이 기업들에게 접근할 때 카자흐스탄 대통령을 팔았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 취재 중에 만난 G 사의 한 투자자는 “기업들이 뭘 믿고 그와 손을 잡았겠느냐”며 “김 회장이 카자흐스탄의 실력자로 행세하며 기업들을 설득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김 회장이 “카자흐스탄 대통령과 친하다” “카자흐스탄 대통령 딸과 가장 친한 친구의 남편이다”는 등의 말을 기업 측에 했다는데 앞서의 A 건설사와 G 사에서는 이 부분에 대해 언급을 회피해 실제로 김 회장이 그런 말을 했는지는 확인할 수 없었다.
그와 손잡고 일한 건설사에 PF를 해준 은행들도 김 회장의 이런 소문들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하고 건설사 측에 그와 갈라설 것을 요구했다는 후문도 들린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결과적으로 투자가 잘못되긴 했지만 김 회장이 의도적으로 기업에 손해를 입힌 건 아니라며 카자흐스탄의 정치경제적 상황에 비쳐본다면 김 회장과 같은 다리 역할을 하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반론도 만만찮다.
박혁진 기자 ph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