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늦은 후회… ‘이대로는 못 보내’
결혼도 못하고 평생 어머니한테 얹혀살다시피해온 이 남성은 어머니가 갑자기 돌아가시자 뒤늦게 후회, 어머니를 그냥 보내드릴 수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이 남성은 어머니 시신을 매일같이 깨끗이 닦으며 제를 지냈는데 정성이 얼마나 지극했는지 두 달이나 지났음에도 어머니 시신은 생각보다 ‘멀쩡’했다고 한다.
따로살던 동생의 신고로 시신과의 동거가 드러났고 이 남성은 한때 ‘패륜살인’으로 의심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사체 부검 결과 사인이 분명하게 드러나면서 의심도 풀렸다. 애끓는 사모곡으로 감동을 주고 있는 어머니와 아들의 사연 속으로 들어가봤다.
정 아무개 씨(여·71)가 자신의 집 앞마당에 쓰러진 채 발견된 것은 지난 10월 31일 늦은 저녁의 일이었다. 정 씨의 큰아들 김정석 씨(가명·45)는 어머니가 잠깐 산책을 나간다고 하고는 돌아오지 않자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어머니가 평소 고혈압을 앓고 있었기 때문. 한 시간, 두 시간이 지나도 어머니가 돌아오지 않자 김 씨는 마침내 어머니를 찾아 나서기로 결심했다.
가을비가 촉촉이 내리는 저녁 김 씨는 우산을 들고 집 앞을 나섰다. 하지만 김 씨의 발걸음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김 씨가 집을 나서자마자 어머니를 발견했기 때문. 어머니는 집 앞 마당에 쓰러진 채 엎드려 있었던 것.
너무 놀라 우산을 내던지고 뛰어간 김 씨는 어머니를 흔들며 애타게 불렀다. 하지만 어머니는 대답이 없었다. 어머니는 이미 입술이 파랗게 질려있는 상태였고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어머니는 그렇게 숨을 거둔 채로 큰아들 김 씨의 손에 의해 발견됐다.
이미 병원으로 옮기기에도 너무 늦어버린 상황이었다. 망연자실, 한동안 넋을 잃은 채 어머니 옆에 앉아있던 김 씨는 우선 어머니를 집 안으로 모시기로 했다. 처음에는 김 씨도 어머니를 집에 잠시 모셔놓고 장례식을 치르려 했다는 것이 경찰의 설명이다. 하지만 막상 어머니 시신을 방으로 옮기고나자 생각이 달라졌다고 한다. 어머니한테 한 번도 효도를 제대로 한 적이 없다는 자책감이 고개를 든 것. 이때부터 김 씨는 어머니 시신과 동거를 시작했다.
김 씨는 우선 어머니를 깨끗이 씻기고 옷을 갈아입힌 채 안방에 모셔놓고는 마루에 상을 차렸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던 김 씨였다. 상 하나와 향초가 전부였다. 이후 김 씨는 매일 제를 올렸다. 김 씨는 경찰에서 “어머니를 잠시만 모셔두려고 했는데 다른 곳으로 옮길 수가 없었다”며 “어머니를 모셔놓고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어머니가 벌떡 일어나 안방 문을 열고 나올 것만 같았다”고 진술했다.
김 씨에게는 남동생 한 명이 있었다. 유일한 피붙이인 동생 범석 씨(가명·43)는 틈틈이 어머니한테 안부 전화를 해오곤 했는데 김 씨는 그때마다 “잠깐 외출하셨다”는 등 핑계를 둘러대며 어머니의 죽음을 숨겼다. 하루하루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시신에서 썩는 냄새가 나기 시작했지만 띄엄띄엄 집들이 있는 시골 마을이었던 탓에 이웃에서는 아무도 이 같은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다.
하지만 너무 오랫동안 어머니와 통화가 되지 않자 이상하게 여긴 범석 씨에 의해 결국 어머니의 죽음도 밝혀지게 된다. 동생의 추궁을 받은 김 씨가 “사실 어머니가 돌아가셨고 내가 방에 모시고 있다”는 털어놨던 것. 지난 1월 11일 동생의 신고로 출동한 경찰이 어머니 정 씨의 시신을 발견하면서 2개월간에 걸친 ‘모친과의 동거’는 끝이 났다.
경찰이 현장에 출동했을 때 방안에서는 시신 썩는 냄새와 향냄새가 뒤섞여 코를 찔렀다고 한다. 시신은 부패가 진행 중이었지만 생각보다 심각하지는 않았다는 것이 경찰의 설명이다. 경찰은 “마치 방부처리를 한 것 같았다”며 “김 씨가 매일 밤낮으로 정성스럽게 시신을 닦아왔기 때문에 그런 것으로 보였다”고 말했다.
또 김 씨가 한겨울임에도 불구하고 난방조차 하지 않았던 것이 시신의 부패를 막는 데 일조한 것 같다고 경찰은 분석했다. 경찰은 “김 씨가 어머니 시신이 부패하는 걸 막기 위해 그 추운 집에서 난로 하나만으로 생활한 것 같더라”며 놀라움을 표했다.
처음에 경찰은 김 씨를 의심하기도 했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어떻게 돌아가신 어머니의 장례도 안 치르고 집에 모셔둘 수 있겠느냐. 뭔가 감추고 싶은 게 있지 않았겠느냐”는 것이었다.
하지만 김 씨는 경찰에서 “평생 효도를 하지 못해 어머니를 떠나보낼 수 없었다”고 일관되게 진술했다.
김 씨에 따르면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신 이후 어머니는 어린 시절부터 김 씨 형제를 혼자서 키워왔다고 한다. 동생 김 씨는 20대에 들어서면서 혼자 자립했고 이후 결혼도 하고 가정을 꾸려 잘 살고 있었다. 문제는 형 김 씨였다.
어려운 살림이었지만 어머니의 뒷바라지로 지방대학교 법학과를 나온 김 씨는 졸업 후 번번이 취업에 실패했다. 김 씨의 동생은 “형이 직장을 구한 적도 있었지만 단 한 번도 길게 버텨본 적이 없었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김 씨는 사십 평생을 어머니에게 얹혀살다시피 했다는 얘기다.
게다가 김 씨는 40대 중반의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결혼도 한 적이 없었다. 어머니는 평소 “큰아들 손주 좀 안아 봤으면 좋겠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 말뿐 평생 김 씨에게 잔소리조차 한 적이 없었을 정도로 어머니는 큰아들을 몹시 아꼈다는 것이 동생 김 씨의 말이다.
이렇듯 효도 한 번 제대로 못하고 무심하게 살아온 김 씨였지만 막상 어머니가 갑작스럽게 돌아가시자 심한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그제서야 자신이 살아온 모습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자신을 위해 평생 희생만 하고 돌아가신 어머니께 너무도 죄스러웠다. 경찰에 따르면 김 씨는 처음엔 따라 죽을 생각으로 농약까지 준비했지만 마지막에 용기가 나지 않아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고 한다.
경찰의 의심은 부검결과가 나오면서 완전히 풀렸다. 국과수의 사체부검 결과 김 씨 어머니는 신장에 이상이 생겨 사망한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은 “부검 결과 정 씨는 신부전증을 앓고 있었고 사망 당시에는 신장이 제 기능을 완전히 상실한 상태였던 것으로 밝혀졌다”고 말했다.
사건에 대한 결말이 나자 김 씨 형제는 어머니 장례식을 조촐하게 치렀다. 경찰에 따르면 김 씨는 어머니 시신을 매장하는 것을 끝까지 반대했으며 자신의 집에서 더 모시겠다고 고집해 이를 말리느라 가족들이 애를 먹었다고 한다.
김장환 기자 hwan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