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002년 1월17일 박근혜 대표의 첫 자택 공개 당시. 이번 자택 공개는 정면돌파 의지를 나타낸 것으로 보인다. | ||
박 대표의 서울 삼성동 집이 비록 2002년 대선을 앞두고 1차로 공개된 바 있지만 지금처럼 관심이 높진 않았다. 당시엔 유력한 대권주자도 아니었으며, 다만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를 위협하는 ‘신데렐라’ 정도였다.
그러나 지금의 박 대표는 다르다. 원내 제2당의 대표이자 유력한 대권주자다.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공과 논란 등 박 대표를 둘러싸고 다양한 논란이 벌어지며, 관심도 박 대표에게 집중돼 있다.
박 대표는 자택 공개를 통해 자신의 베일을 한꺼풀씩 벗겨가면서 정치인으로서 주어진 과제를 정면돌파하려는 의지를 내보였다.
그간 한나라당에선 진영 대표비서실장과 전여옥 대변인 등 박 대표를 가까이서 모셔온 당직자조차 박 대표의 자택을 제대로 방문하지 못했다. 한나라당 내부에서도 감히 박 대표 자택을 보려는 엄두를 내지 못할 정도로 박 대표는 베일에 싸여 있었다.
박 대표는 자택 개방을 통해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추구했다. 자신의 사생활을 공개하면서 유연한 행보를 계속하는 동시에 작심한 듯 ‘정부여당과 전면전을 검토하겠다’고 발언, 투사로서 재출발을 다짐했다. 미소 짓고 상생정치를 외치는 이미지에서 벗어나 ‘철의 여인’으로서 이미지를 구축해가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이 때문에 이날 자택에서는 화기애애하면서도 긴장되는 분위기가 흘렸다.
박 대표는 3시간가량 기자들과 만찬을 하면서 시종 꼿꼿한 자세를 잃지 않았다. 내내 이어진 기자들의 질문에도 성의껏 답했다. 이날 식사는 정갈한 한정식으로 차려졌고, 술은 백세주를 준비했다. 식사 도중 한선교 대변인이 “심심하다”며 폭탄주를 주문했고, 인근 슈퍼에서 국산양주와 맥주를 긴급 조달했다. 박 대표는 초반에 폭탄주를 마시지 않았고, 백세주를 약간 입술에 적셨을 뿐이다. 다만 기자 한 명이 박 대표에게 러브샷을 요청, 박 대표가 술을 따라낸 채 거의 빈 잔으로 기자의 러브샷에 응했다. 이것이 신문에는 ‘폭탄주 러브샷’으로 보도됐다.
박 대표의 자택에는 가구가 거의 없다. 90년 이사를 오면서 기존에 살던 장충동 집에서 가구를 거의 가져오지 않았다.
1층은 응접실과 식당, 접견실 등으로 이용되고, 2층에 침실과 서재 등이 있다. 2층에 3개의 방이 있는데 박 대표가 모두 사용하고 있다. 박 대표는 이날 서재만 공개하고 침실을 끝내 공개하지 않았다. 박 대표는 서재에 있는 피아노에서 ‘아리랑’을 연주해 보였다.
박 대표의 서재 책상 위에는 영국 대처 전 수상의 <국가경영>이란 책이 놓여 있었고, 홈페이지 관리에 이용하는 컴퓨터가 주요 소품이었다. 박 대표는 자택에 들어오면 1~2시간 동안 홈페이지를 관리한다고 밝혔다.
박 대표는 취미를 묻는 질문에 테니스와 국선도, 피아노, 기타 연주 등이라고 대답했다. 기자들이 기타 연주만 본 적이 없다고 하자 박 대표는 “한번 보실래요? 그런데 기타가 어디 깊숙이 있어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고대하던 기타 연주는 끝내 이뤄지지 않았다.
지난 2002년 1차 공개 때 박 대표의 자택을 찾은 한 기자는 “다소 을씨년스러웠다”는 반응을 보인 적이 있다. 이번에 박 대표의 자택은 그정도 분위기는 아니었다. 가구가 거의 없다 보니 을씨년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다. 대신 도자기 제품 등을 거실 곳곳에 놓아 썰렁한 분위기를 보완했다.
박 대표는 한 번 사용한 물건을 좀체 바꾸지 않는다. 2층 거실에 놓인 진열대도 90년 이사온 그대로였고, 서재의 컴퓨터가 가장 최신 제품으로 보였다. 2002년 당시엔 전화기와 텔레비전 등이 워낙 오랜된 제품이라 보좌진이 할 수 없이 교체했다고 말했다. 당시 벽지도 워낙 낡아 자택 공개를 앞두고 벽지를 새로 입혔다. 그나마 박 대표의 자택이 외부 손님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은 당시 1차 단장을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박 대표의 자택은 대지 1백20평, 건평 60평 정도다. 마당에는 잔디가 잘 가꾸어져 있고, 모과나무와 감나무를 심어놓았다.
박 대표는 이날 선친 박정희 전 대통령 얘기를 하면서 잠시 감정에 겨운 듯했다. 박 전 대통령의 여름 휴양지인 경상남도 저도에 있을 때 이야기다.
육영수 여사가 사망하기 직전인 74년 여름 마지막 여름휴가를 저도로 갔을 때, 육 여사는 박 전 대통령에게 “사람이 죽으면 영혼이 있나요”라고 물었다는 것이다. 당시 어머니 육 여사가 죽음을 직감한 게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갖게 하는 씁쓸한 추억이었다. 그날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는 손을 꽉 잡고 저도의 해변을 몇 번이나 걸었다고 한다.
박 대표는 ‘휴가를 어디로 갈 것이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나야 어디 갈 데가 있나요”라며 “집에 있거나…”라고 말했다.
박 대표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사망한 이후 정계에 입문하기 전까지 18년 동안 고독하고 폐쇄적인 삶을 살아왔다. 국회의원이 된 다음 대중속에 모습을 드러냈지만 여전히 신비주의 이미지를 안고 살아왔던 게 사실이다. 이제 한나라당의 대표가 되고 유력한 대권주자로 떠오르면서 박 대표에 대한 검증 필요성에 대한 요구도 높아지고 있다.
2백99명 중 한 명인 국회의원과 달리, 유일무이한 존재인 대통령에겐 험난한 검증과정이 필수적이다. 사생활이든 비밀이든 상당부분 공개될 수밖에 없다. 박 대표는 자택을 추가로 다른 기자들에게도 공개할 예정이다. 박 대표가 자택 공개를 넘어 과거사와 관련된 갖가지 풍문 등에 대해서도 정면돌파할 필요성이 있다는 지적이다.
박 대표는 지금 과거의 인물로 남아 있느냐, 아니면 미래의 인물로 거듭 태어나느냐의 중대한 분수령에 놓여 있다.
김영선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