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구의 책임인가 지난 6월23일 반기문 외교부 장관이 김선일씨의 빈소에 헌화하고 있다. 김선일씨의 죽음을 둘러싼 의문은 풀리지 않은 채 김천호 가나무역 사장과 정부가 서로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 제공=국제신문 | ||
다만 감사원이 최근 “김천호 가나무역 사장의 구명협상이 부실했다”는 잠정결론을 내린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 게 전부다. 또한 ‘정부가 김선일씨 납치 사건을 사전에 인지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는 “사실무근”으로 결론을 내린 것으로 알려진다.
하지만 아직까지 이번 사건의 기본적 진실조차도 제대로 밝혀진 게 하나도 없다. 오히려 김천호 사장측과 정부가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려는 것이 아닌지 의구심이 들고 있다. 김 사장은 “정부가 파병 의지를 재천명하지 않았다면 상황은 달라졌을 것”이라며 정부쪽에 화살을 돌렸다. 하지만 최근 여권 일각에서는 “김천호 사장의 석방 노력이 부족했다”고 주장하고 있어 이 문제가 김 사장 개인의 책임 문제로 귀결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김선일씨 피살사건 한 달을 맞아 아직까지 밝혀지지 못한 미스터리를 따라가 봤다.
김선일씨 피살 사건의 열쇠는 김천호 사장의 진술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가 최초로 김선일씨의 피랍 사실을 인지했고 그 뒤 구명협상을 주도하는 등 이번 사건의 핵심인물이기 때문. 하지만 김 사장이 과연 얼마나 이번 사건에 대해 진실을 이야기하고 있는지 의문이 일고 있다. 김 사장은 자신의 ‘실수’나 ‘노력 미비’로 김씨가 피살되었다는 결론이 내려지면 도의적 책임을 면할 길이 없다.
그래서 이번 사건의 진상을 알고 있어도 진실을 그대로 말할 수 없으며 말을 하더라도 자신이 ‘다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만 언급할 것이라는 게 일반적 관측이다. 이 예상은 지금까지 들어맞고 있는 셈이다. 감사원은 김 사장을 네 번이나 소환하면서 조사를 벌였지만 그의 입에서는 별다른 진술이 나오지 않았다.
문제는 김 사장이 만약 자신에게 불리한 정황에 대해서 부인으로 일관하더라도 이를 확인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김선일씨 피랍 사건 청문회를 준비하고 있는 열린우리당의 한 관계자는 “모든 것이 김 사장의 입에 달려 있다. 문제가 있어도 확인할 길이 없지 않나. 이라크 무장단체의 주장을 들어볼 수 없는 상황에서 그가 어떤 말을 해도 믿을 수밖에 없다. 세 차례 예정돼 있는 청문회에서도 지금까지와 다른 주장은 나오기 힘들 것이다. 그래서 이번 사건은 미제로 끝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 김천호 가나무역 사장 | ||
또한 김 사장의 형 김비호씨에 대한 의혹도 여전히 꼬리를 물고 있다. 그가 사실상 김 사장의 후원자였고 가나무역의 사업도 지시를 하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김 사장이 피랍 사실을 형 김비호씨에게 당연히 보고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일요신문 제633호 7월8일자 보도). 이에 대해 감사원도 김비호씨가 이번 사건에 어느 정도 관계가 되었을 가능성을 인정해 그에 대해 출국금지 조치를 내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최근 밝힌 바 있다.
그런데 최근 이와 관련해 여권에서 주목되는 발언이 나왔다. 국회 김선일 국정조사 특위 위원으로 최근 이라크에서 현지조사를 벌인 열린우리당 윤호중 의원은 “가나무역 김천호 사장이 김선일씨 석방을 위해 노력한 흔적이 그가 주장한 것만큼 확인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윤 의원의 이 같은 주장은 김 사장에 대한 네 차례의 조사를 통해 ‘김 사장의 구명협상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결론을 내린 감사원 중간조사 결과와도 일치하는 것이어서 주목된다.
만약 이번 사건이 김 사장의 구명협상 미흡 쪽으로 결론나면 김 사장은 도의적 책임을 면할 수 없다. 여권이 김 사장측에 이번 사건의 모든 책임이 있다고 몰아세울 수 있는 부분이다. 김선일씨 피랍 사건의 책임 소재를 둘러싸고 김 사장과 정부 양측은 이미 신경전에 들어간 것이나 마찬가지. 사실 책임 공방의 포문은 김 사장이 먼저 열었다.
김 사장은 지난 7월6일 일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정부의 파병 재천명이 없었다면 상황이 달라졌을 것으로 보는가’라는 질문을 받은 뒤 “그렇게 믿는다”고 말한 적이 있다. 또한 “이라크인 변호사도 굉장히 화가 났다. 그는 ‘이것(파병)은 그냥 죽이라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외교부는 “외교부에 쏠렸던 비난과 의혹이 본인에게 돌아가자 물길을 돌려보기 위한 방편으로 꾸며낸 말이 아닌가 한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사건 발생 한 달이 지났지만 실체적 진실은 밝혀지지 않은 채 김 사장과 정부의 책임 회피 공방만이 계속되고 있다. 이에 따라 일부에서는 애초부터 이번 사건의 진실 규명이 어려웠다는 주장도 하고 있다. 이번 사건과 별다른 관련이 없는 감사원이 이 사건을 맡았을 때부터 이런 사태가 예고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수사권이 없는 감사원이 철저한 수사는커녕 양측의 주장만 종합 정리해준 꼴이 되었다는 것이다. 또한 국가 전체에 엄청난 파문을 몰고 온 사안의 중대성을 감안하지 않고 사건의 ‘진실’을 숨긴 채 정부만 비난하는 김 사장의 무책임한 행태도 비판받아 마땅하다고 할 수 있다.
김 사장과 정부의 책임 떠넘기기 공방 속에 오는 7월30일 처음 실시되는 국회 청문회가 어떤 진실의 문을 새롭게 열지 관심을 모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