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받는 또다른 ‘새싹’들 있었다
▲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마침내 일부 내용이 공개된 고 장자연의 문건에는 루머로만 존재하던 연예인 술접대 및 성상납의 실체가 담겨 있었다. 그렇지만 총 열두 장 가운데 세 장만 공개됐을 뿐 술접대 및 성상납을 받은 이들의 리스트와 비슷한 처지의 동료 연예인 리스트 등이 담긴 나머지 아홉 장의 내용은 여전히 미궁이다. <일요신문>이 문건 관계자들을 통해 확인한 문건 리스트의 실체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연예계와 언론계 유명 관계자부터 정·재계 유명인사, 그리고 검찰과 경찰 등 정부 관계자 등의 실명이 문건에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것으로 확인됐기 때문이다.
신인 배우 장자연의 자살 사실이 알려진 뒤 곧이어 고인이 생전에 남긴 문건이 존재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문건을 보관하고 있던 이는 고인의 전 매니저인 호야스포테인먼트 대표인 유장호 씨다.
애초 알려진 분량은 여섯 장이었지만 장례식장에서 유 씨가 유가족에게 보여준 문건은 일부에 해당되는 네 장이었다. 그렇지만 지난 13일 유 씨가 자신의 사무실에서 유가족을 만나 전달한 문건의 분량은 열두 장이었다. 유족에게도 보여주기 꺼려한 여덟 장에 담긴 내용이 무엇이었을까. KBS가 공개한 문건 역시 열두 장 전체가 아닌 세 장이었다. 연예 관계자들은 이번에 공개된 문건 세 장과 장례식장에서 유가족이 본 네 장이 일치할 가능성이 높다고 관측한다. 아직 공개되지 않은 아홉 장에는 유가족들에게도 차마 장례식장에선 보여줄 수 없는 내용이 담겨 있다는 얘기인데 유 씨가 애초 전체 분량을 여섯 장이라고 밝힌 까닭 역시 다른 여섯 장은 도저히 공개할 수 없는 내용이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열두 장을 모두 본 뒤 유가족이 공개 대신 소각을 선택한 까닭은 무엇일까. 고인의 문건 전체를 직접 본 유 씨의 한 지인은 “유 씨는 고인의 뜻에 따라 공개하려 했지만 그러기엔 너무 어마어마한 내용이었다”면서 “유가족 역시 공개에 대한 부담이 컸을 것”이라고 밝혔다.
고 장자연 문건과 관련된 이들을 통해 확인한 결과 미공개된 나머지 문건에는 실명이 직접 거론된 두 개의 리스트가 담겨 있다고 한다. 첫 번째 리스트는 술접대 및 성상납과 관련된 이들의 명단이다. 공개된 문건에서 고인은 룸살롱에서의 술접대는 물론 태국까지 가서 술과 골프 접대를 하기도 했다고 밝힌다. 또한 잠자리를 요구하도록 만드는 적극적인 성상납까지 해야 했다고 적었다. 그 대상으로 일부 유명 드라마 PD와 언론계 유명 인사, 그리고 대기업 임원 등의 실명이 거론되고 있다. 수사를 담당하고 있는 분당경찰서의 오지용 형사과장 역시 지난 15일 중간브리핑에서 “확보한 문건에 10여 명의 실명이 거론돼 있다”고 밝혔다.
▲ KBS에서 입수 공개한 고 장자연이 죽기 전 남긴 문건. | ||
아직 공개되지 않은 문건에 담겨 있는 리스트에는 더 충격적인 실명이 다수 등장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알려진 것처럼 연예계나 언론계 유명인사와 대기업 임원 등의 재계 인사들뿐 아니라 수사기관 관계자와 유명 정계 인사들의 실명이 나머지 아홉 장의 미공개 문건에 실려 있다는 것. 유 씨의 한 지인은 “경찰과 검찰 관계자까지 포함돼 있어 수사기관이 문건 전체를 입수한다 할지라도 정상적인 수사가 진행되기에는 어려움이 따를 것”이라며 “한국 사회가 발칵 뒤집힐 만한 이들의 실명도 여럿 등장한다“고 설명한다.
더욱 충격적인 부분은 두 번째 리스트다. 고인은 문건에서 술접대와 성상납 등을 요구당해 고통받고 있는 연예인이 자신 외에도 더 있다며 그들의 실명까지 밝혔다고 알려졌다. 이번 사안이 다만 고 장자연 개인의 문제가 아닌 연예계 전반의 이야기라는 해석이 가능해지는 대목이다. 유 씨는 문건이 공개되기 이전에 이미 이를 예상케 하는 글을 남겼다. 지난 9일 유 씨가 자신의 미니홈피에 남긴 ‘자연이에게’라는 글에 “자연이가 단 한 명의 공공의 적을 (상대로) 싸울 상대로 나를 선택한 것이다. 공공의 적은 너무나 많은 사람에게 고통을 주고 피해를 주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고인이 문건을 남긴 이유가 공공의 적으로 지목된 소속사 대표 김 아무개 씨에게 고통 받는 고인 이외의 많은 사람(연예인)을 위해서라는 해석이 가능해진다. 문건 전체를 직접 본 관계자들 역시 고인과 비슷한 처지의 연예인 실명이 기록돼 있다고 전한다.
또 하나의 관심사는 문건 유출 경로다. 문건을 최초로 입수해 그 실체를 공개한 노컷뉴스 측은 유족의 뜻에 따라 비공개를 원칙으로 삼았지만 문건의 형식을 공개해 ‘존재한다’는 사실과 ‘저는 나약하고 힘없는 신인배우입니다. 이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습니다’는 문장만을 공개해 ‘우울증에 의한 자살’이 아님을 드러내는 선에서 보도를 마무리했다. 유 씨는 문서 전체를 받은 유가족이 최종적으로 비공개를 결정했으며 그 자리에서 원본과 사본을 모두 소각했다고 밝혔다. 그렇지만 KBS를 통해 문건 일부가 공개됐다.
▲ 가주 김지훈이 들고 있는 영정 사진 속의 장자연이 활짝 웃고 있다. | ||
알려진 바와 달리 고인이 유 씨 외에 또 다른 이에게 문건을 남겼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유 씨의 한 지인은 “문건 공개를 두고 고심하던 유 씨가 자신 이외의 다른 이도 고인에게서 문건을 전달받았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고 전한다. 분당경찰서 오 과장 역시 “유 씨가 경찰 조사에서 자신이 갖고 있는 문건과는 다른 별도의 문건이 존재할 가능성을 언급해 확인하고 있다”고 밝혔다. 제3자가 같은 문건을 갖고 있었거나 혹은 별도의 문건을 갖고 있을 가능성이 대두되고 있는 것. 또한 이번에 공개된 문건과 애초 유 씨가 갖고 있던 문건이 별개의 것일 가능성도 있다.
한편 고인의 문건에 대한 진위 여부 공방도 벌어지고 있다. 공공의 적으로 지목된 소속사 대표인 김 아무개 씨는 관련 혐의를 강하게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 씨는 문건 자체가 유 씨가 조작한 자작극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는 김 씨와 유 씨의 묘한 관계 때문이다. 김 씨는 한 방송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유 씨는) 나와 민형사상 소송이 네 건이 걸려있다. 그걸 이용하려고 그런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관건은 고인의 문건이 친필로 직접 작성된 것으로 판정돼 진위 공방이 마무리된 이후 실명 공개 여부다. 이에 경찰 측은 “사실관계가 확인되더라도 실명공개는 피의사실공표죄에 해당되므로 향후 공익 여부를 따져서 판단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다만 경찰은 10여 명의 실명만 거론된 문건 세 장을 확보하고 있는지 아니면 두 개의 리스트가 담긴 열두 장의 문건 전부를 확보했는지 여부는 밝히지 않고 있다. 이 부분이 향후 수사 범위를 결정짓는 결정적인 요인이 될 전망이다.
분당=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