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뉴 엘비스’” 허풍 떨다…긴 꼬리 밟혔다
거칠면서도 멋진 외모로 여성팬들의 큰 사랑을 받았던 밀리 바닐리.
요리사 출신 가수였던 프랑크 파리안이 명성을 얻은 건 프로듀서로 전업한 후였다. 1970년대 전설의 디스코 그룹 보니엠을 결성해 전세계적인 사랑을 받은 그는, 1980년대엔 ‘파 코퍼레이션’이라는 그룹을 결성해 레드 제플린의 ‘Stairway to Heaven’을 리메이크하며 큰 인기를 끌었고, 미트 로프의 앨범을 제작하기도 했다. 프로듀싱한 앨범의 총 판매고는 8억 5000만 장. 그는 대중적으로 엄청난 성공을 거둔 프로듀서였다. 밀리 바닐리 사건이 터지기 전까지는 말이다.
밀리 바닐리는 프랑크가 1988년에 뮌헨에서 결성한 듀오였다. 완벽한 비주얼 그룹이었고, 유럽에서 낸 데뷔 앨범은 큰 인기를 끌었으며 22세의 파브리스 모반과 23세의 로브 필라투스는 단숨에 스타덤에 올랐다. 여세를 몰아 1989년에 미국에 진출한 밀리 바닐리의 인기는 대서양을 건넜다고 해서 사그라들지 않았다. 하지만 다소 의아한 점은 있었다. 모반과 필라투스의 영어 실력은 정말 형편없었던 것. 그들이 첫 미국 인터뷰는 MTV에서 이뤄졌는데, 당시 간부였던 베스 맥카시-밀러는 그들의 엉성한 영어 실력을 보고 진짜로 그들이 노래 부른 게 맞는지 의심할 정도였다. 그런데! 그 의심은 정확한 것이었다. 밀리 바닐리는 100퍼센트 립싱크에 의존했으며, 게다가 음반에 녹음된 목소리도 자신들의 것이 아니었던 허울뿐인 듀오였던 것이다.
프로듀서 프랑크 파리안.
아무튼 그들은 미국에서 성공을 거두었지만, 오래 지속될 것은 아니었다. 첫 사고는 1989년 7월 21일에 터졌다. 코네티컷의 브리스톨에 있는 테마 파크에서 MTV 라이브 공연이 있었고, 밀리 바닐리는 자신의 대표 히트곡 ‘Girl You Know It’s True’를 불렀다. 하지만 립싱크를 할 음반에 문제가 생겼고, 대사 중 ‘Girl, you know it‘s…’ 부분이 튀어 계속 반복되었다. 두 사람은 노래와 춤을 이어가려 노력했지만, 결국 무대에서 도망치듯 내려와야 했다. 흥미로운 건, 당시 이 광경을 목격했던 수많은 사람들의 반응이었다. 흥에 취한 탓이었는지, 이 엄청난 NG 장면을 거의 눈치 채지 못했던 것이다.
밀리 바닐리
루머는 계속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결국 프랑크 파리안은 1990년 11월에 직접 모든 사실을 털어놓았다. 그래미 어워즈는 취소됐고, 27개의 소송이 이어졌으며, 환불 소송이 잇따랐다. 미국을 넘어 전 세계 팝 뮤직 팬들을 대상으로 한 거대한 사기극은 그렇게 막을 내렸고, 밀리 바닐리는 희대의 오명을 남긴 채 음악계에서 사라졌다. 프랑크 파리안은 오명을 씻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1991년에 찰스 쇼를 비롯, 원래 스튜디오 세션이었던 브래드 하웰과 존 데이비스를 영입해 ‘더 리얼 밀리 바닐리’(The Real Milli Vanilli)라는 그룹을 조직했다. 하지만 찰스 쇼가 1996년에 투어 공연에 사용될 돈을 횡령했다가 1998년에 체포되었다.
사기꾼으로 낙인찍힌 파브리스 모반과 로브 필라투스는 ‘로브 앤 파브’라는 이름으로 바꿔 계속 활동을 이어갔지만, 밀리 바닐리 시절의 인기와는 비교할 수 없었다. 그들은 보컬 트레이닝을 하면서 절치부심 끝에 1998년에 직접 노래를 부른 앨범으로 컴백할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음반 제작 기간 동안 로브 필라투스는 마약과 범죄로 인해 최악의 상태에 처했고, 프로듀서인 파리안은 보석금을 내고 그를 감옥에서 빼와 계속 음반 작업을 했다. 드디어 음반은 완성됐고, 1998년 4월 3일에 프로모션은 시작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필라투스는 4월 2일, 프랑크푸르트의 호텔 방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되었다. 과다한 알코올과 약물이 사인. 33세의 젊은 나이였다.
김형석 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