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7월28일 강금실 전 장관이 이임식을 위해 식장에 들어서고 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겉으로 보기에 강 전 장관의 경질은 너무나 전격적이었다. 하지만 청와대는 지난 연말부터 경질을 ‘준비’해왔다는 정황이 포착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 연말 김승규 신임 장관을 단독 면담한 사실이 알려진 것. 또한 여권 내에 강 전 장관에 대한 비토세력의 입김도 상당했던 것으로 관측된다. 과연 권력의 핵심부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또 이후 ‘강금실 카드’는 어떻게 사용될 것인가. 강금실 전 장관 낙마의 내막을 추적했다.
지난 연말 청와대 내부에서 작성된 ‘장관 성적표’ 외부 유출 파문이 있었다. 개각설이 흘러나오던 시점에 새어나온 장관들에 대한 평가는 각 부처를 술렁이게 만들었다. 당시 여론의 폭발적인 관심을 받았던 강 전 장관은 ‘의외로’ 내부에선 후한 성적을 얻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권 내 일각에선 당시부터 강 장관 경질에 대한 움직임이 있었다고 보고 있다. 장관 성적표 파문이 있었던 무렵 노무현 대통령은 이번에 법무부 장관에 오른 김승규 변호사와 단독 면담한 것이 알려져 이러한 정황을 뒷받침하고 있다.
노 대통령과 김 장관의 당시 만남에 대해 노 대통령의 최측근인 열린우리당 의원은 “노 대통령은 즉흥적으로 인사를 하는 분이 아니다. 예상 외의 인사를 잘한다는 평을 듣지만 미리부터 나름대로의 ‘인재풀’을 마련해놓고 심사숙고한다. 당시 김 장관과의 만남도 같은 맥락에서였다”고 밝혔다.
이 의원은 “강금실 장관 교체를 기정사실화하고 김 전 장관을 만난 것은 아니다”고 밝혔지만 차기 법무장관 후보로서 노 대통령이 김 장관을 지난 연말부터 의중에 둔 것은 인정한 셈이다.
지난 연말부터 시작된 것으로 보이는 법무장관 교체 검토는 대중적 인기가 높은 강 장관에 대한 ‘총선 후보 차출’ 측면보다는 ‘새 법무장관 기용’이라는 면에 무게가 더욱 실렸던 것으로 보인다.
▲ 지난 7월29일 노무현 대통령이 김승규 신임 법무장관에게 임명장을 수여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 ||
그러나 청와대 내에서 조용히 검토되던 법무장관 교체 움직임은 올 초 탄핵정국을 맞이하면서 일단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지만 오래 가지는 못했다.
지난 6월 여권 내부에서 집권 2기를 맞는 조각 수준의 개각이 불가피하다는 요구가 거세게 불거졌을 때 강 전 장관도 교체 대상이었다고 전해진다. 외부로 표출이 잘 안됐을 뿐, 사실상 교체는 ‘기정사실’이었고, 문제는 그 시기였다는 것. 열린우리당의 한 의원은 “분명한 것은 강 장관의 교체가 갑자기 결정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사실 지난 6월 통일부 등 3개 부처 장관 교체 때 강 장관도 함께 바뀌는 것으로 알았다”고 밝혔다.
이렇듯 지난 연말부터 강 전 장관 경질론이 계속됐고 결국 현실화된 데는 여권 내 비토세력의 입김이 한몫했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강 전 장관과 비교적 가까운 것으로 알려진 한 법조계 인사는 사퇴의 배경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대뜸 “사퇴는 무슨…, 경질이지. 대통령 주변 측근들이 밀어낸 것 아니냐”고 다소 격앙된 반응을 감추지 않았다. 문화계의 한 지인도 “정치권에서 좀 견제 심리가 작용한 것이 아니겠느냐”고 기자에게 되물었다. 이처럼 강 전 장관 주변에서 지목하는 ‘비토세력’의 실체는 무엇일까.
법조계 출신인 여당의 한 의원은 “솔직히 강 장관이 개인적인 인기 올라가는 것에 비해서 한 일이 뭐가 있느냐. 개혁을 하려는데 손에 피 안 묻히고 고고하게만 할 수 있는가. 장관이란 자리가 입 바른 소리만 하고 뒤로 나앉게 되면 실질적인 현안의 불만은 대통령에게 바로 전달될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고 직격탄을 퍼부었다.
민변 출신의 한 여당 의원은 “검찰의 대선자금 수사 때는 솔직히 우리 당이 득을 좀 본 것은 사실이다. 청와대에서야 불만이 나올 수도 있겠지만, 당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오히려 최근 선거법 위반 수사에 대한 불만을 더 큰 원인으로 볼 수 있다”며 “그런 차원에서 보더라도 지금 당내의 불만은 사실 검찰에 대한 불만이라고 봐야 한다. 강 장관이 검찰을 좀더 강하게 이끌었으면 하는 불만이 그것”이라고 전했다.
강 전 장관의 경질 배경에 대통령 주변 측근들의 가중된 불만이 작용했을 것이라는 의견은 점차 설득력을 더해가고 있다.
한 여당 의원은 “대통령 측근인사들이 검찰 수사에 대해 갖는 불만은 의외로 컸던 것 같다. 특히 여택수 전 행정관에 대한 수사는 ‘해도 너무했다’는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고 전했다. 이러한 정서를 보여주듯 여당의 한 의원이 강 장관이 사퇴하자 “앓던 이가 빠졌다”고 했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 이임사를 하고 있는 강금실 전 장관. 만감이 교차하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다. | ||
어쨌든 이제는 물러나 야인이 된 강금실 전 장관. 그는 이대로 대중 앞에서 영원히 사라질 것인가. 여권은 인기 만점인 ‘강금실 카드’를 그대로 버릴 것인가. 강 전 장관의 ‘미래’를 보기 위해선 우선 그의 ‘과거와 현재’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강금실 전 장관은 총선 당시 직접 출마하지 않고도 열린우리당 인기를 높여주면서 노 대통령에게 ‘효녀’ 노릇을 톡톡히 했었다. 그런 그는 경질돼 법무부를 떠나면서까지 노 대통령을 간접적으로 도와줬다. 강 전 장관의 경질에 쏟아진 스포트라이트가 북한군 NLL 침범에 따른 청와대 책임론 파장을 줄여주었다는 평을 듣는 것이다.
마지막까지 ‘효녀’노릇을 하고 떠난 강 전 장관에 대해 여권의 한 고위 인사는 “비록 경질의 성격을 띠었지만 강 전 장관은 절대 ‘버려진 카드’가 아니다”고 밝힌다. 적절한 시점에 노 대통령이 반드시 강 전 장관을 다시 찾을 것으로 보는 것이다.
이 인사는 “노 대통령은 국정1기에 강 전 장관이 검찰 개혁 밑바탕을 마련한 점에 대해 아직도 높게 평가하고 있다. 총선 때 출마도 하지 않은 강 전 장관에 대해 여론이 보여준 높은 관심 역시 강 전 장관만의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이라 밝혔다.
강 전 장관이 다시 부름을 받게 될 시점으로 정가 인사들은 다가오는 재보선 전후가 될 것이라 보고 있다. 내년 4월 혹은 10월에 치러질 재보선에서 강 전 장관만큼 여론을 ‘들뜨게 할’ 카드도 없다는 것이다.
총선 당시 핵심업무를 담당했던 여권의 한 인사는 “지난 총선 때 강 전 장관 영입엔 실패했지만 강 전 장관 이름이 언급되는 것만으로도 유권자들의 우리당에 대한 관심을 몇 단계 끌어올리는 데 도움이 됐다. 식상했을 법한 다른 정치인들에 비해 강 전 장관은 아직도 유권자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매력이 충분하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강 전 장관의 화려한 컴백무대가 정치권이 될 것이라 단정짓기가 쉽지는 않다. 지난 총선 당시 강 전 장관이 보여준 정치권에 대한 부정적 인식뿐만 아니라 여권 핵심층의 강 전 장관에 대한 불편한 심기가 강 전 장관 영입에 장애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지난 총선 당시 강 전 장관 영입과정에서 ‘비례대표 상위 순번을 주고 정동영 전 의장과 함께 공동선대위원장에 앉혀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당 지도부는 한사코 강 전 장관에게 접전 지역구인 서울 강남 지역이나 종로 출마를 권유했다”고 밝힌다.
대권후보로 성장할 잠재력을 지닌 강 전 장관의 정계진출에 여권의 대표주자들이 비단길을 깔아주지는 않을 것이란 지적이다. 여권의 차기 대권주자군으로 인식되는 한 인사는 “강 전 장관은 경질당한 게 아니라 휴가를 받은 것”이라며 경계심을 늦추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강 전 장관은 장관 경질 발표 이후 기자회견에서 “올 때도 요란했는데 갈 때도 요란해서 죄송해요”라 말하면서 앞으로 쉬게 돼서 기쁘다는 뜻을 밝혔다. 아침잠이 많은 것으로 유명한(?) 강 전 장관은 퇴임 이후 해외여행을 떠나는 등 당분간 휴식을 취하다가 이전에 활동하던 법무법인으로 돌아가 ‘본업’인 변호사 활동을 다시 할 예정이라고 한다. 하지만 정치권은 그녀가 다시 한번 ‘요란스럽게’ 재등장할 시점이 언제일 것인가에 벌써부터 주목하고 있다.
감명국 기자 km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