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에 널린 제조법이 ‘왕폭탄’
▲ 못이 살인 무기로… 지난 1일 울산남부경찰서가 한 30대로부터 압수한 사제폭탄. 화약이 폭발을 일으키면 나사못이 사방으로 튀어나가도록 만들어졌다. 연합뉴스 | ||
지난 1일 울산 남부경찰서는 공사장에서 일하면서 훔친 흑색화약을 이용해 사제폭탄을 만들고 이를 인터넷으로 판매하려한 김 아무개 씨(34)를 총포·도검·화약류 등 단속법 위반 등의 혐의로 구속했다. 김 씨는 리모컨으로 작동되는 사제 폭발물을 제작해 인터넷으로 1개당 30만 원씩 받고 팔려다 경찰의 추적에 덜미가 잡혔다.
경찰에 따르면 김 씨는 지난 4월 중순 충남 당진군의 한 여관에서 2008년 7월부터 올해 2월까지 울산 울주군의 한 공장과 충남 당진의 회사에서 일용직으로 일하면서 공사현장의 흑색화약을 조금씩 훔쳐 모아두었다가 담뱃갑 크기의 사제폭탄 두 개를 만든 혐의를 받고 있다.
김 씨가 만든 두 개의 폭탄은 사각형 케이스에 화약을 넣고 전기뇌관을 부착, 겉면에 나사못을 부착해 리모컨으로 작동하게 제조됐다. 김 씨는 이 같은 폭탄을 만들기 위해 인터넷과 서적을 통해 혼자 공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국과수 등에 김 씨가 제조한 폭탄에 대한 성능시험을 벌일 예정이다. 이와 관련해 한 무기 전문가는 “김 씨가 만든 폭탄이 과거의 경우와 다른 부분은 리모컨을 사용했다는 것”이라며 “비록 조잡하지만 못을 겉면에 장착해 만약 폭발할 경우 사람들에게 큰 피해를 줄 것으로 예상된다”는 의견을 보였다.
과거에도 이와 같은 사제폭탄이 사회에 물의를 일으킨 경우가 종종 있었다. 주로 10대들이 호기심으로 만들었다가 적발됐다. 2001년 2월 대구에서는 사제폭탄이 시민운동장에서 폭발해 사람을 다치게 한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은 당시 고등학교 2학년생인 임 아무개 군(17)이 인터넷 폭탄사이트의 제조법을 흉내 내 만든 것으로 밝혀졌다. 임 군이 인터넷 사이트에 올라와 있는 제조법에 따라 살상력을 지닌 폭탄을 제조한 것으로 드러난 것이다.
경찰에 따르면 임 군은 2001년 2월 3일 오후 1시 40분쯤 대구 시민운동장 화단에 자신이 만든 시한폭탄이 든 노트북용 가방을 놓았다가 이를 주운 시민 2명에게 화상을 입힌 혐의를 받고 있다. 임 군은 “40분짜리 시한폭탄을 설치한 뒤 두 시간쯤 지나 가보니 폭탄이 터졌고 경찰과 군인이 조사를 하고 있어 도망갔다”고 밝혔다.
임 군은 인터넷 쇼핑몰에서 화공약품을 구입해 만든 폭탄에 관한 책을 읽고 습득한 ‘군용 아지드화납 뇌관’을 장착해 인명 살상력을 가진 폭탄을 만들었다고 경찰은 밝혔다. 임 군은 “폭음탄을 흉내 내다가 화공약품을 다루게 됐다”며 “살상력이 있는 폭탄인 줄 몰랐다”고 말했다. 경찰은 폭탄사이트를 수사하던 중 폭탄제조기술이 수준급인 네티즌들 간에 정보를 교류하는 이른바 ‘언더그라운드 사이트’를 발견하고 추적 끝에 임 군을 검거했다고 한다.
지난해 3월에는 인천의 중고교생들이 인터넷에서 사제 폭탄과 총기 제조법을 퍼뜨리다가 경찰에 적발됐다. 당시 인천지방경찰청은 김 아무개 군(15) 등 중학생 3명과 박 아무개 군(18) 등 고등학생 2명을 총포·도검·화약류 단속법 위반 등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에 따르면 김 군 등은 2007년 9월 인터넷에 ‘악마의 무기 제조공장’이라는 카페를 만든 뒤 인명살상용 흑색화약폭탄, 염소산칼륨방수폭탄, 스모그폭탄, 부탄가스폭탄과 사제총기 23종의 제조법을 올린 혐의다. 김 군 등은 인터넷에서 정기적으로 모임을 갖고 폭탄을 제조하는 데 필요한 화학약품의 구체적 혼합 비율과 투입량을 공부했다.
폭탄 만드는 방법을 알게 된 이들은 실제로 폭탄 제조에 나서기도 했다. 같은 해 10월부터 폭발성이 강한 염소산칼륨과 화약을 만드는 재료인 유황을 부모의 주민등록번호를 활용해 인터넷으로 구입한 것. 자신들의 집에서 화학약품을 플라스틱과 실험용 유리병에 넣어 폭탄을 만들었으며 옥상이나 주택가 골목길에서 실험까지 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들은 인터넷 카페에 ‘우리의 꿈은 테러리스트나 청부살인업자가 되거나 폭력조직을 만드는 것’이라고 밝혔으나 실제로 범죄에 사용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처음에는 무기 제조와 관련된 인터넷 카페에서 폭탄 만드는 법을 배웠으나 폐쇄되자 직접 새 카페를 개설했다. 회원 350명을 포함해 1만 1000여 명이 다녀간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줬다.
변심한 애인에게 복수하기 위해 폭탄을 만들었다가 다른 사람을 숨지게 한 경우도 있었다. 2002년 7월 광주 남부경찰서는 사제폭탄으로 변심한 애인을 살해하려다 엉뚱한 사람을 숨지게 한 혐의로 유 아무개 씨(29)를 구속했다. 경찰에 따르면 유 씨는 7월 19일 오전 7시경 자신의 애인인 신 아무개 씨(28)가 근무하는 광주 남구 주월동의 한 빌딩 2층 여자화장실에 전선과 건전지, 휘발유 등을 이용해 만든 사제폭탄을 설치해 빌딩관리인 서 아무개 씨(72)가 청소하기 위해 이를 옮기던 중 폭발하는 바람에 서 씨를 숨지게 한 혐의다.
자신의 첫 번째 계획이 실패한 후 유 씨는 같은 날 오후 5시경 신 씨의 집 우체통에 폭탄을 넣은 비디오테이프 케이스를 설치했다. 하지만 우체통에 수상한 비디오테이프 케이스가 있는 것을 발견한 신 씨 부모가 경찰에 신고를 해 유 씨의 모든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경찰 조사 결과 유 씨는 최근에 신 씨가 다른 남자를 만나는 데 앙심을 품고 군대에서 배운 폭발물 제조기술을 이용해 만든 사제폭탄으로 신 씨를 살해하려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그렇다면 과연 사제폭탄의 위력은 어느 정도일까. 경찰이 폭탄사이트에 소개된 대로 각종 사제폭탄의 제조를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의뢰해 성능시험을 해본 결과를 살펴보면 사람에게 얼마든지 치명상을 입힐 만큼 위험한 것으로 확인됐다.
먼저 수백 개 성냥개비의 황을 모아 테니스공 속에 넣은 뒤 도화선을 설치한 ‘테니스공 폭탄’은 심지에 불을 붙인 직후 ‘펑’하는 소리와 함께 불꽃이 튀면서 공이 걸레처럼 찢겨 나간다. 국과수의 한 관계자는 “사람 주변에서 터질 경우 큰 화상을 입게 된다”며 “인화성이 월등한 딱성냥을 사용하면 던져서 폭발시킬 수도 있다”고 말했다.
플라스틱 통에 부탄가스통과 화약을 채워 넣은 ‘부탄가스 폭탄’은 파괴력이 테니스공 폭탄의 5~6배에 달한다. 도화선에 점화한 뒤 1분여가 지나자 엄청난 폭발음과 함께 화염이 치솟으며 플라스틱 통이 날아갔다고 한다. “폐쇄된 공간에서 터질 경우 폭발력이 몇 배나 강해져 많은 사람이 치명상을 입거나 화재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문가는 분석했다.
다이너마이트 원료인 니트로글리세린을 이용한 ‘니트로글리세린 폭탄’은 제조과정에서 다른 화학물질을 섞어 희석했는데도 양쪽에 세워둔 두께 1㎝짜리 철판들이 2∼3m 튀어나갈 정도의 위력을 보였다고 한다. 경찰관계자는 “‘니트로글리세린 폭탄’이 터질 경우 송판이나 철판이 뚫리는 것은 물론, 피해범위도 다이너마이트와 비슷하다”고 밝혔다. 이들 세 폭탄은 인근에 있는 사람들에게 화상이나 고막파열 등의 피해를 줄 수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한편 ‘질산염 폭탄(일명 비료폭탄)’은 인터넷에 제시된 디젤유 점화방식으로는 폭발하지 않아 제조법에 결함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정교한 점화장치를 이용할 경우 버스 한 대를 날릴 정도의 폭발력을 지닌 것으로 조사됐다. ‘표백제 폭탄’도 당초 실험대상에 포함됐으나 제조과정의 위험 때문에 실제 실험에서는 배제되기도 했다.
국과수의 한 연구원은 사제폭탄과 관련해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로 20여 분 만에 제조한 폭발물들이 예상외로 큰 파괴력을 보인다”며 “차량 폭파용으로 사용될 정도는 아니지만 인명살상이나 화재발생은 가능할 정도”라고 말했다.
서울경찰청은 사제폭탄과 관련해 “전체적으로 사제폭탄의 위력이 당초 예상보다 훨씬 강하다”며 폭탄 제조법을 제시하고 폭탄 사용을 선동한 사이트 운영자 등 관련자들에 대해서는 강경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경찰의 한 관계자는 “사이버 수사대가 폭탄 제조와 관련된 사이트에 대해 지속적인 감시를 펼친 결과 현재는 폭탄사이트가 많이 사라졌다”며 “하지만 외국 서적이나 사이트 등을 통해 독학한 경우도 많아 감시의 끈을 놓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큰 파괴력을 보이는 폭탄의 재료가 되는 물질에 대해서도 철저한 관리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밝혔다.
이윤구 기자 trus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