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비어천가’에 누가 태클 걸었나
‘반기문 대망론’이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반기문 총장 일화를 담은 책이 서점 출시 직전 전량 회수되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반 총장에 대한 언론의 비판을 반박하는 부분도 눈에 띈다. 대표적으로 반 총장의 조용한 외교 스타일을 비판하면서 ‘투명인간’으로 표현한 기사에 대해 저자는 “반 총장의 진면목을 제대로 알지 못한 실체 없는 비판”이라고 주장했다. 저자는 “공개적으로 일국의 지도자를 비난하는 발언을 하기란 쉽다. 그러나 그런 식으로 하면 결국 최고위급 외교채널을 닫아버리는 우를 범하게 된다”며 “반 총장은 파국은 피하면서도 막후에서 민감한 이슈에 대해 단호한 목소리를 내며 변화를 유도하는 현실적인 접근을 취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 책에는 반 총장의 메일함에 온 항의 메일까지 자세하게 나와 있어 반 총장의 실제 모습을 엿볼 수 있다. 2012년 반 총장의 항공 마일리지는 29만 625마일, 유엔본부와 해외에서 한 면담은 1727회, 언론 일정은 172회, 기록을 남긴 회원국 정상과의 전화통화는 270회였다. 2012년 반 총장이 탄 비행거리는 약 지구 12바퀴에 해당한다.
반 총장이 이렇게 바쁘다보니 지난 2011년에는 남태평양의 키리바티를 방문하기 위해 머물고 있던 이집트를 떠나 홍콩으로 이동했다가 시드니까지 날아가서 캔버라로 움직인 후 키리바티에 도착했다. 무려 60여 시간 만에 호텔에 여장을 풀고 다리를 뻗고 잠시 쉴 수 있었다고 한다. 반 총장도 당시의 어려움을 사석에서 토로한 적이 있다고 한다.
이런 살인적인 일정은 유엔 사무총장 전용기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일반적으로 출장 시에는 상용기를 이용한다. 그래서 유엔 사무총장은 아랍 지역에서 왕실 전용기를 제공받거나 아프리카와 같은 지역에서는 항공 연결편이 마땅치 않아 평화유지군 소속 유엔 항공기를 이용하게 된다고 한다.
또한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이 중동사태 협의를 위해 우간다에 있던 반기문 총장의 참석이 꼭 필요하다며 공항에 특별기를 보내왔지만 엔진에 문제가 생겨 출발할 수 없게 돼 파리 출장을 취소하고 상용기를 타고 뉴욕으로 돌아온 일도 있었다.
반 총장은 유엔 사무총장의 참석을 요청하는 회의가 많지만 현실적으로 전부 갈 수 없다고 한다. 그래서 참석할 수 없을 때 중요한 행사의 경우 대리인을 보내거나 반 총장이 영상 메시지를 만들어 보내기도 하고 그것조차 여의치 않을 경우 서면 메시지를 보낸다고 한다. 이와 관련, 반 총장도 한국인이기 때문에 팔은 안으로 굽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저자는 “지난 7년 동안 한국에 제공된 영상 메시지 수는 다른 회원국들에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압도적으로 많았다”며 “한국에 제공된 영상 메시지 중 상당수는 실무부서 검토과정에서 제외되었을 것이다. 그만큼 모두 반기문 총장이 각별히 배려한 덕분”이라고 말했다. 어째 영상메시지를 요청했다가 거절당한 국내 주요 단체나 인사들을 위한 변호처럼 들린다.
이처럼 반기문 총장에 대한 좋은 얘기만 있는 책이 왜 서점에서 사라지게 된 것일까. <유엔본부 38층> 출판사 관계자는 “저자가 판매 중단을 요청했다. 유엔에서 일했던 사람은 책을 내기 전에 유엔 측에 허락을 구해야 하는데 이 작업을 하지 않았기 때문으로 안다”고 그 이유를 밝혔다.
반 총장이 지난해 8월 23일 청와대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면담하는 모습. 사진제공=청와대
그러나 이를 곧이곧대로 믿는 이는 많지 않을 듯하다. <유엔본부 38층>은 출판사에서 기획을 한 후 적당한 저자를 물색해 책을 완성한 것이 아니라 저자가 원고를 완성해 출판사에 전달했고, 출판사 측에서 출판 가치를 높게 평가해 책으로 냈다고 한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출판사가 원고를 청탁한 것도 아니고 7년이나 반 총장을 보좌한 저자가 완성한 책이 그 정도 사전 작업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 납득하기 힘들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이 책은 지난 5월 30일에 발행해 초판 3000부만 찍고 시중 서점 배포 직전 출판사 측이 전량 회수 조치해 일부는 창고에 쌓여 있다고 한다. 그럼에도 아직 이 책을 온라인 서점에서는 구매할 수 있다. 앞서의 출판사 관계자는 “전량 회수 조치를 한다고 해도 우리가 뛰어다니면서 다 받아 올 수는 없는 일”이라며 “아직 소량 남아 있는 곳이 있을 수 있다”고 해명했다.
책이 시판되기 직전 판매 중지를 요청했기 때문에 출판사는 출판 비용, 디자인 비용, 인건비, 마케팅비 등의 손해를 입었다. 하지만 앞서의 관계자는 “출판사와 좋은 관계로 책을 냈기 때문에 손해에 관해서는 생각해 본 적 없다”고 잘라 말했다.
책의 저자인 이상화 심의관은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더 이상 할 이야기가 없다. 덧붙일 만한 이야기가 없다”고 말했다. 이 책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 출판사 측은 “책을 함부로 폐기하거나 할 수 없어 창고에 쌓아두고 있다. 재발간은 작가와 상의를 마치면 결정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밝혔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