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에서 유가족에 뭔가 전달”
방 씨는 또 과거사 진상조사가 한창이던 2005년 2월 모 방송국과의 인터뷰를 통해 “공군대위 김 아무개라는 사람이 두 손을 결박시킨 김형욱 씨의 이마에 직접 권총을 대고 발사해서 죽였다는 증언을 받았다”고 주장해 논란을 야기하기도 했다. 방 씨 주장의 신빙성 및 진위 여부를 떠나 방 씨가 김 전 부장과 함께 60년대 권력 실세였다는 점에서 그의 발언과 행적은 세인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특히 김 전 부장의 묘비 발견으로 ‘김형욱 실종’ 사건을 둘러싼 진실게임이 재점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방 씨는 이 사건과 관련해 증언을 해 줄 수 있는 몇 안 되는 인물로 지목받고 있다. <일요신문>은 방 씨의 행방을 수소문한 끝에 9월 24일 오전(한국시간) 미국 뉴저지에 머물고 있는 그와 전화 통화를 할 수 있었다. 방 씨는 고령(83세)에도 불구하고 기자와 40여 분간의 전화 통화를 통해 김형욱 실종 사건과 관련한 자신의 입장과 소회를 상세히 밝혔다. 다음은 방 씨와 가진 전화 인터뷰 내용이다
―미국 뉴저지에서 김형욱 전 중정부장의 묘가 발견됐다는 소식을 들었는가.
▲며칠 전 미국 언론사 몇몇 기자들로부터 소식을 전해 들었다. 깜짝 놀랐다. ‘확실하냐’고 되물었더니 가족들 묘비도 있고, 실종된 날짜(1979.10.9)도 정확히 일치하는 걸로 봐서는 김 전 부장의 묘가 맞는 거 같다는 답변을 들었다.
―그 묘가 김 전 부장의 묘라고 생각하나.
▲그렇지 않아도 (미국 언론사) 기자와 전화 통화 후 한참을 생각했다. 세월도 많이 흘렀고 가족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 뭐라 단정하기가 쉽지 않다. 개인적으로는 실종된 날짜와 가족 묘비와 함께 있는 걸로 봐선 가묘일 가능성이 높은 거 같다. 미국에서 살해되지 않은 이상 뉴저지에 시신이 묻혀 있을 이유가 없지 않나.
―유골이 묻혀 있을 가능성도 있지 않나.
▲물론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노무현 정부 때 과거사 진상조사가 끝난 뒤 정부가 김 전 부장의 가족들에게 뭔가를 건넨 것으로 알고 있다. 유품이든 유골의 일부이든 그런 것을 묻어 놓았을 수도 있지 않겠나.
―‘김형욱 실종’ 사건은 여전히 영구 미제사건으로 남아 있다. 김 전 부장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본 동기로서 이 사건의 진실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과거 회고록과 일부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개인적인 견해를 밝힌 바 있다. 하지만 김형욱 사건을 둘러싼 온갖 추측이 난무하고 있고 정부에서도 진실을 규명하지 못한 마당에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나. 김형욱 납치 사건에 깊숙이 개입한 것으로 알려진 이상열 씨도 끝내 비밀을 안고 무덤으로 간 이상 이 사건은 영구미제로 묻힐 수밖에 없지 않겠나. 다만 여러 정황과 자료를 종합해 볼 때 김형욱은 정보기관의 사주에 의해 프랑스에서 살해된 것은 확실한 것 같다. 언제 어디서 살해됐고 그 배후가 누구인지, 또 시신을 어떻게 처리했는지 여부에 대해선 좀더 시간이 지나면 밝혀질 것으로 믿고 있다.
―한국 정부에 대한 애증과 회한이 많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한때는 소름이 끼칠 정도로 한국이 미웠다. 전두환 정권 시절에는 안기부(현 국정원)가 ‘조국이 부르니깐 돌아오라’고 해서 일시 귀국했더니 ‘뭐하러 귀국했냐.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라’고 면박과 협박을 해 돌아온 적도 있다. 박정희 대통령도 죽고 김 전 부장도 허망하게 사라지고, 정부는 외면하는데 한국에 대한 좋은 감정이 있겠는가. 하지만 세월도 많이 흘렀고, 살 만큼 살았으니 누구를 미워하고 원망하겠는가.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