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액 야금야금...정 관계 꼬리 보인다
수사 초기 검찰은 이번 사건을 “최 씨가 고위공직자들과의 친분을 내세워 로비 명목으로 금품을 받아 가로챈 단순 사기사건으로 치부했지만 수사를 할수록 실제 로비를 한 정황이 확인되는 등 의혹이 커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일요신문> 취재결과 검찰은 이번 사건과 관련해 전 정권 실세 공직자 및 한나라당 전 국회의원의 비서관 등을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조사할 예정인 것으로 확인됐다. 검찰은 수사 과정에서 최 씨가 전 정권 인사들에게 로비를 벌였다는 진술을 확보하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검찰은 이번 사건이 “단순히 한두 명의 소환 조사로 그칠 것 같지 않다”는 입장을 피력해 적잖은 후폭풍을 예고하고 있다. 여의도 정가로 북상하고 있는 한나라당 당원의 로비 의혹 사건 속으로 들어가 봤다.
지난 9월 24일 서울중앙지검 특수3부(부장 양부남)는 한나라당 당원 최 아무개 씨(64)를 구속했다. 검찰에 따르면 최 씨는 정부 고위 공무원들에게 로비를 해주겠다는 명목으로 돈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에 구속된 최 씨는 모든 혐의를 시인했고, 특별범죄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 혐의로 지난 10월 8일 구속 기소됐다.
지금까지 검찰이 공개한 최 씨 관련 의혹은 D 식품 대표이사 이 아무개 씨(52)에게 접근해 정부지원금을 받을 수 있게 해주겠다며 로비용 금품을 받아 가로챈 혐의 정도였다. 검찰에 따르면 이 씨는 1999년 6월 개설한 D 식품의 사세확장을 위해 정부지원금을 받을 방법을 알아보던 중 2005년 2월 지인의 소개로 최 씨를 만난 것으로 전해졌다.
최 씨는 2003년 말 서울 지역 한나라당 당원으로 등록해 17대 국회가 출범한 이후 왕성한 활동을 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최 씨는 이때부터 수년간 당원 활동을 하며 한나라당 내 실무급 인사들과 꾸준히 친분을 쌓아왔다고 검찰은 밝혔다.
최 씨는 당시 이 씨에게 “재정경제부와 기획예산처 출신 전직 고위직과 현직 국장급 간부들과 친분이 있는데, 중소기업자금이나 산업자금을 지원받게 도와주겠다”고 말하며 이 씨에게 로비 명목의 금품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 씨는 처음에는 이 씨에게 몇 백만 원 정도의 적은 액수를 송금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이후 2007년 11월까지 2년여간 무려 185회에 걸쳐 총 6억 4600만여 원의 거액을 자신의 개인 통장으로 받은 것으로 검찰 수사 결과 드러났다.
그러나 D 식품은 최 씨에게 로비자금을 전달한 후에도 중소기업자금을 지원받지 못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D 식품은 최 씨에게 로비명목 자금을 마지막으로 송금한 그 다음 달인 2007년 12월 최종 부도처리됐다.
D 식품 본사가 위치한 건물의 관리자는 D 식품의 부도 원인에 대해 “2005년부터 2007년 말까지 2년 사이에 무리한 사업 확장을 했는데 이것이 문제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공교롭게도 이 기간은 이 씨가 최 씨에게 주기적으로 돈을 전달한 시점이다. 최 씨의 말을 믿고 공격적인 사업 확장을 시도한 이 씨가 어음을 막지 못해 결국 최종 부도를 맞게 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최 씨 관련 수사는 D 식품 도산 이후 관련 내용이 검찰에 제보되면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최 씨를 구속한 검찰은 “최 씨가 자신의 사회적 입지가 탄탄한 것처럼 행세하고 다니면서 청탁 대가로 금품을 요구한 것으로 보이지만 성공한 로비 사례는 없다”고 밝혔다. 또 수사가 한참 진행된 후에도 검찰은 “거액의 돈이 빈번하게 오갔을 뿐 돈은 모두 최 씨가 개인적으로 유용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취재결과는 달랐다. 검찰은 이번 사건과 관련 한나라당 인사 및 전 정권 공직자들의 로비 의혹으로까지 수사를 확대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번 사건을 잘 알고 있는 검찰의 한 관계자는 “최 씨가 실제로 D 식품을 위해 로비를 벌였다는 진술을 해 조사를 벌이고 있다”고 밝혔다. 최 씨가 전 정권의 몇몇 공직자 및 한나라당 소속 인사들에게 실제로 로비를 벌였다는 자백을 했다는 것이다.
검찰은 최 씨가 진술한 로비 대상을 중심으로 혐의가 뚜렷한 일부 인사들에 대해 우선적으로 소환 조사한다는 내부 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중에는 17대 국회에서 한나라당 의원을 지내고 현재 공기업 사장으로 재직 중인 A 사장의 비서관 출신인 H 씨와 참여정부 당시 농림해양수산위 연락관을 지낸 M 씨 등이 포함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앞서의 관계자는 H 씨와 M 씨에 대해 “내주 중 소환 조사를 통보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특히 검찰은 이번 소환 조사 후에 다른 인사들에 대한 추가 소환 조사도 배제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관계자는 “최 씨가 D 식품 외에 다른 업체로부터도 로비를 받은 정황이 포착돼 수사를 확대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귀띔했다.
검찰은 소환 대상에 대해서는 “수사 중인 사안이기 때문에 밝힐 수 없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구속된 최 씨가 참여정부 당시 기획재정부 공직자나 한나라당 소속 인사 등 정관계에 폭넓은 인맥을 구축하고 있었던 것으로 확인되고 있어 검찰 수사가 본격화될 경우 적잖은 파문이 일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이번 사건은 몇몇 정·관계 인사를 소환하는 선에서 마무리될지 아니면 뜻밖의 ‘대어’가 걸려들지는 아직 속단할 수 없다. 다만 검찰이 ‘박연차 게이트’ 사건 이후 위축된 위상과 실추된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다시 고강도 사정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는 점에서 이 사건 또한 권력형 비리 사건으로 확전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김장환 기자 hwan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