뚜껑 열자마자 ‘’색깔 논쟁‘’ 부글부글
▲ 보수단체들 반발 <친일인명사전> 발간 보고대회가 열린 8일 숙명여대 앞에서 박정희바로알리기국민모임 회원들이 민족문제연구소 해체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 ||
과거 사회지도층 인사들의 ‘친일 행적’ 논란을 넘어 보·혁 갈등과 사회 분열을 증폭시키는 핵뇌관으로 부상하고 있는 <친일인명사전> 발간 후폭풍을 들여다 봤다.
지난 8일 민족문제연구소(민문연)와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는 서울 용산구 효창공원에서 ‘친일인명사전 발간 국민보고대회’를 갖고 사전 발간을 알렸다. 민문연에 따르면 이번에 발간된 3권의 사전에는 을사늑약을 전후해 1945년 8월 15일까지 일본제국주의의 국권침탈과 식민통치·침략전쟁에 적극 협력함으로써 우리 민족과 타민족에게 신체적·물리적·정신적으로 직·간접적인 피해를 끼친 자 4389명의 명단이 수록돼 있다. 분야별로는 관료가 1103명으로 가장 많고 경찰 789명, 매국·수작 작위를 받은 자 134명, 제국의회 11명, 중추원 297명, 군 230명, 사법 183명, 교육학술 52명, 경제 26명, 언론 40명 등이다. 또 문화계(161명)와 종교계(183명) 인사도 상당수 포함됐다.
특히 이번 작업에는 을사오적 정미칠적 등 매국행위에 가담했거나 독립운동을 직접 탄압한 반민족행위자는 예외없이 전원 수록됐으며 군수·검사 등 소위 일정 직위 이상에 몸담았던 부일협력자도 그 지위에 대한 책임을 물었다. 또 교육·언론·종교·문화예술계 인사 등 대중적인 영향력이 큰 인물들도 사회적인 책임을 묻는 취지에서 등재시켰다.
주목할 점은 이번에 발간된 사전에 박정희 전 대통령을 포함해 눈에 띄는 유명인사들이 대거 수록돼 있다는 사실이다. 이들 중에는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명백한 친일파도 있지만 일부는 객관적 증거 부재 등을 이유로 ‘친일인사로 단정지을 수 있는가’를 두고 논란이 일고 있는 인물들도 적지 않다.
또 민족을 위해 자의와는 무관하게 일제에 협력했거나 보직상 친일행위에 가담한 것으로 매도된 인물이 적지 않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당시 ‘사정상’ 부일협력 행위를 했다해도 훗날 국가발전에 크게 이바지한 인물에 대해서는 면죄부를 줘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사전 발간 이후 보수단체와 유족들의 격렬한 항의와 비난이 들끓고 있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논쟁의 핵심은 객관성과 순수성으로 요약된다.
민문연은 논란에 대해 단호한 입장이다. 업적이나 공로 등과는 무관하게 당시 친일행위를 했는지 여부만을 따졌다는 것이다. 민문연 측은 “소위 황국의 성전을 위하여 글이나 쓰고 연설쯤 한 것은 문제도 되지 않는다고 하면서 도리어 발호하는 무리를 대할 때는 구역질이 나지 아니할 수 없다”는 백범 김구 선생의 말을 인용하기도 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민문연이 특정 성향을 지닌 이들이 모인 집단이라며 선정기준이나 형평성 측면에서 문제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하고 있다. 또 민문연이 친일인사를 규정할 만큼 공신력과 전문성을 갖춘 집단인지에 대해 서도 의구심을 표하고 있다.
가장 큰 논란의 중심에 있는 인물은 단연 박정희 전 대통령이다. 박 전 대통령은 만주신문(1939년 3월 31일자)을 인용, 만주국 군관으로 지원할 당시 작성했다는 ‘한번 죽음으로써 충성함’이라는 혈서와 1944년 일본군과 합동으로 팔로군을 공격할 때 만주국 소대장으로 작전에 참가했다는 이유로 명단에 올랐다.
장면 전 국무총리는 1938년 조선지원병제도제정축하회 발기인으로 참여한 이래 1940년 국민총력 천주교경성교구연맹 이사를 맡은 이유로 친일인사에 포함됐다.
윤치영 초대 내무부 장관은 을사조약 이후 대한자강회를 조직하고 1912년 ‘데라우치 총독 암살미수사건’으로 투옥됐으며 미주방면 독립운동에 참여한 공로가 인정돼 건국포장까지 받았다. 그러나 1924년 4월 독립사상 배척과 일선융화를 표방하며 결성된 ‘동민회’에 가입하고 1937년 황군위문금과 국방헌금을 내는 등 변절행각이 드러나 친일인사로 규정됐다.
동아일보 창업주인 김성수 전 부통령은 중일전쟁이 발발한 1937년 경성방송국의 라디오 시국강좌와 시국강연에 참가해 전쟁을 선전한 행적이 드러났다. 그는 또 조선에서 징병제 실시가 결정된 후 <매일신보>에 “징병제 실시로 비로소 조선인이 명실상부한 황국신민이 됐다”는 기고문을 썼으며 “대동아 성전에 대해 제군과 반도 동포가 가지고 있는 의무를 위해 목숨을 바치라”는 독려글을 게재했다.
조선일보 방응모 전 사장은 1933년 조선군사령부 애국부에 고사기관총 구입비로 1600원을 헌납했고 1942년 <조광> 2월호를 통해 “대동아전쟁은 세계평화를 도모하려는 것”이라고 옹호했다. 박석윤 매일신보 부사장과 내선일체 실천사 이사를 지낸 현영섭도 친일 행각이 드러나 사전에 이름을 올렸다. 항일논설인 ‘시일야방성대곡’을 쓴 장지연도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받은 항일투사로 알려졌지만 1914년부터 4년간 <매일신보>에 조선총독부의 시정을 미화하는 한시 700여 편을 실었다는 이유로 친일명단에 포함됐다.
예술계 유명 인사들도 대거 포함돼 있다. 애국가를 작곡한 안익태는 일본 왕 즉위식 축하곡으로 활용된 ‘관현악곡을 위한 환상곡-에텐라쿠’를 발표했고, 홍난파는 1937년 친일문예단체인 조선문예회에 참여하고 같은 해 9월 중국 보정 점령을 축하하는 ‘보정함락축하 황군 감사 대음악회’의 수익금을 일본군 위문에 사용하기로 결정하는 등 친일성향을 드러냈다. 무용가 최승희는 공연을 개최하면서 “우리 무적 황군이 싱가포르 공략에 성공하고 있는 이때 저는 무용으로 그 기쁨을 축하드리게 된 것을 참으로 광영으로 생각한다”는 소감을 밝히고 공연수익 중 7만 5000원이 넘는 금액을 국방헌금과 황군 위문금 등으로 헌납한 이유로 사전에 등재됐다.
서정주는 1943년 <국민문학> 10월호에 ‘항공일에’라는 기념시를 발표해 일제의 침략전쟁을 미화하고 전쟁동원을 독려했으며 ‘스무살 된 벗에게(<조광> 1943년 10월호)’ ‘징병적령기의 아들을 둔 조선의 어머니에게(<춘추> 1943년 10월호)’라는 글을 통해 “일제의 징병에 젊은이와 어머니들이 적극 부응해야 한다”고 독려한 행적이 드러났다. 이외에도 화가 김기창, 소설가 김동인, 시인 모윤숙, 극작가 유치진, 영화감독 최인규 등도 친일행위가 드러나 명단에 포함됐다.
독립운동으로 고초를 당하고 독립훈장까지 받았지만 친일 행각이 드러난 인물들도 있다. 1911년 1월 황해도 지역에서 독립자금을 모금했던 ‘안악사건’으로 독립훈장을 받은 김홍량은 이 사건으로 옥고를 치렀지만 후에 황해도 도회의원을 지내고 1942년 황해도 양곡배급조합대표로 대동아 전쟁 2주년을 기념해 조선군애국부에 전투기헌납기금을 내는 등 친일로 돌아섰다. 1919년 3·1운동 당시 <조선독립신문> 발간공로로 독립훈장을 받은 윤익선도 옥고를 치른 뒤 친일행각을 보였다. 그는 ‘내선일체와 충량한 황국신민화’를 기치로 내걸고 조직된 친일단체인 ‘대동일진회’의 산하기관 ‘동학원’ 교장에 취임하기도 했다. 이밖에 사상범들이 출옥한 뒤 항일운동에 나서지 못하도록 전향시키는 ‘촉탁보호사’로 활동한 박성행(애국장)과 사상자 전향단체인 ‘대동민우회’에 이사와 검사장으로 참여했던 이동락(애국장), 이항발(애국장) 등도 사전에 게재됐다.
종교인들도 예외는 아니다. 건국훈장 국민장에 추서된 이종욱은 해방 이후 조계종 총무원장 및 동국대 이사장을 맡고 2대 국회의원으로 선출됐지만 일제시대 전시채권을 팔고 전쟁기금을 모아 일제에 헌납하는 데 앞장섰다. 3·1운동에 참여했던 최지화 목사와 김우현 목사도 ‘국민총선조선예수교장로회총회연맹’에 소속되어 일제의 전쟁을 지원하도록 조선인들을 독려했으며 3·1운동 공적으로 애족장이 추서된 최준모도 ‘국민정신총동원천도교연맹’ 이사로 활동하며 부일 협력했다. 변설호 해인사 주지, 노기남 가톨릭 주교, 양주삼 감리교 목사 등도 친일 행위가 인정돼 친일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방학진 민족문제연구소 사무국장 인터뷰
“법적 대응 일삼는건 스스로 무덤파는 격”
▲ 방학진 국장 | ||
민문연은 현재 일부 우익단체 및 관계자들로부터 적잖은 항의를 받고 있다. 또 추후 해당 유족들 및 보수단체들의 줄 소송도 예고되고 있다. 실제로 11월 10일 기자가 연구소를 찾았을 때도 항의집회와 만약에 있을 사태에 대비한 신변보호 문제 등을 상의하기 위해 관할 경찰서에서 전화가 걸려오기도 했다.
현재 민문연이 당면한 가장 큰 문제는 인물수록의 공정성 및 형평성 문제와 관련된 것으로, 일각에서는 연구소의 친북성향 논란 및 정치적인 의도에 대해 강한 의혹을 제기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대해 방 국장은 “일제강점기 공문서와 관보, 신문과 잡지 등 3000여 종의 방대하고도 객관적인 문헌자료와 전문가들의 자문 등을 통해 당시 친일행적을 한 사실이 있는 사람들의 행위만을 토대로 수록했다”며 “이를 두고 이념과 사상을 거론하며 불순한 의도 운운하는 것은 그 자체가 더 이상하다”고 잘라 말했다.
일제시대 기득권층에 몸담고 있었던 유명 인사들이 대거 수록된 것에 대해 방 국장은 “국민의 녹을 받아먹는 기득권층에 더욱 가중한 책임을 묻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닌가. 먹고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친일행위를 한 서민들보다 권력을 등에 업고 부일협력을 일삼은 자에 대해 더욱 엄중한 잣대를 적용한 것도 이 때문이다. 상급의 지휘책임을 묻는다는 의미로 보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방 국장은 이번 사전 발간이 해당 인물의 치부를 까발리거나 후손들에게 해를 가하기 위함이 아님을 거듭 강조했다. “역사바로잡기 차원에서 친일 행각을 한 이들을 조사·정리한 것으로 진실규명을 토대로 반성과 화해를 끌어내기 위해 누군가 언젠가는 해야 할 민족사의 과제였다. 사전을 보면 객관적 자료로 입증된 그들의 친일 행적만 명시했을 뿐 그 후손들이나 해방 후 행적에 대해서는 일체 거론하지 않았다. 단지 해당인물이 그 시대 친일행각을 했다는 사실에 주목한 것이다. 논란이 되고 있는 박정희 전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일각에서 박 전 대통령이 등재된 것에 대해 과민반응을 보이고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며 문제 삼는 탓에 나라를 팔아먹은 이완용보다 더 부각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 방 국장의 얘기다. 방 국장은 또 “연좌제는 청산되어야 할 일제의 잔재 아닌가. 우리는 특정인을 겨냥한 정치적인 의도를 품거나 후손들을 압박하기 위한 의도로 작업을 한 것이 결코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연구소 측은 구성원의 편파적인 성향에 대한 지적이나 친북인사들이 명단에서 제외됐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월북한 사람 중 친일행각이 드러난 40여 명도 예외없이 사전에 이름이 올라있다”며 일축했다. 방 국장은 추후 예상되는 후손들의 거센 발발과 소송 등에 대해서는 “사적인 감정에 의해서가 아니라 공익을 위해 엄격한 원칙과 기준하에 이뤄진 작업인 만큼 전혀 두려울 것이 없다. 원래 그쪽(일부 우파단체) 사람들은 물불 안 가리지 않나. 민족사의 과제로 인정하고 순수하게 받아들이면 될 것을 가지고 법적 대응을 일삼는 것은 스스로 제 무덤을 파는 격이 될 것”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김동주 박정희바로알리기 국민모임 대표 인터뷰
“그들은 15년 전부터 박정희 죽이기 작업”
▲ 김동주 대표 | ||
김 대표는 우선 이번 작업을 진행한 민문연의 성향에 대해 의혹을 제기했다. “연구소 측에서는 각 분야 전문가들이 참여해서 공정한 심사를 통해 작업을 진행했다고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민문연은 단언컨대 이념적으로 편향된 인물들로 구성된 단체다. 이들은 15년전부터 일명 ‘박정희 죽이기’를 위한 작업을 끈질기게 벌여왔다. 실제로 연구소 내부 구성원들을 들여다보면 문제가 있는 인물들이 한둘이 아니다. 소장을 맡고 있는 임준열 씨만 해도 이적단체로 규정된 남민전(남조선민족해방전선준비위원회)에서 활동한 인물로 감히 친일을 논할 자격도 없는 종북주의자다. 남민전이 어떤 집단인지를 보면 답이 나올 것이다. 편찬위원장인 윤경로 씨도 남북공조에 의한 통일을 줄기차게 주장해온 인물이며 고문변호사를 맡고 있는 김승교 씨 역시 국가보안법 위반사건을 단골로 맡아왔던 사람으로 이들은 모두 명백한 친북성향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다. 예전 같았으면 모두 간첩행위로 구속되고도 남았을 사람들”이라는 것이 김 대표의 주장이다.
김 대표는 민문연이 자신들의 사상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특정인을 친일이라는 진흙탕에 밀어넣고 ‘인민재판’ 식으로 국민들을 선동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북한에서 과거 김일성이 친일파를 숙청했다고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정적 숙청’이었다. 국민들은 민문연의 교활한 실체를 알아야 한다. 실제로 이번에 그들과 같은 이념을 지향하거나 북한의 골수 사회주의자 중 친일 명단에 포함된 사람들은 전혀 없다. 또 일본 헌병으로 근무하거나 만주독립군 탄압활동을 벌인 신기남 김희선 전 열린우리당 의원의 부친이랄지 이미경 의원 부친, 김일성 동생 김영주, 현준혁 등 마땅히 등재됐어야 할 수많은 친일인사들이 명단에서 제외됐다. 말로는 월북한 인물들도 포함시켰다고는 하나 이들은 그들과 노선을 달리하거나 눈밖에 난 일부 경우에 해당한다”는 것이 김 대표의 주장이다.
김 대표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친일명단에 등재된 것과 관련해서는 “민문연에서는 진위도 불명확한 과거 만주신문 기사만 갖고 박 전 대통령을 친일파에 등재시켰지만 이는 객관적인 증인이나 자료도 없이 이뤄진 대단히 위험한 행위다. 박 전 대통령을 친일파로 규정하려면 만주군으로 있었다는 것 외에도 그가 우리 민족을 어떻게 괴롭히고 어떤 식으로 일제에 협조했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증거와 자료를 제시해야 한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이 친일행적을 일삼았다는 것을 봤다는 증인이나 기록은 전무하다. 우리는 박정희의 만주군관학교 동기들 등이 그가 진정한 독립군으로 활동했다는 행적을 증언한 자료 등 그들의 주장을 뒤엎을 만한 방대한 자료를 갖고 있다”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김 대표는 “민문연에 국민을 선동하고 사회를 혼란시킨 것에 대한 책임을 물을 것이며 추후 민문연의 추악한 실체를 밝히는 작업을 단행할 것”이라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수향 기자 lsh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