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리 잡았나 비위 거슬렸나
▲ 김준규 검찰총장은 국정감사에서 야당 의원들로부터 집중공세를 받았다. | ||
아직까지 정치인이 연결됐다는 뚜렷한 물증이 나오지 않았지만, 검찰은 비리들을 파헤쳐 올라가면 정치권과 맥이 닿아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강력한 사정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형국이다.
이 중 구여권 실세 A 의원이 연루돼있다고 알려진 두 가지 사건이 특히 눈길을 끌고 있다. 하나는 신동아건설 비자금 조성 의혹건이고 다른 하나는 보건복지부 바우처 비리건이다.
A 의원은 최근 국정감사에서 잇따라 검찰을 곤혹스럽게 만든 장본인. 때문에 검찰의 수사가 실제로 구체적인 혐의를 가지고 이뤄지는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A 의원을 향한 ‘무언의 압력’인지에 정치권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아직까지 확신할 수는 없지만 일단 A 의원과 두 개의 사건 사이에 약간의 접점은 있다”고 말했다. 두 개의 사건을 둘러싼 검찰과 구여권 실세의 미묘한 신경전을 들여다봤다.
지난 11월 6일 서울중앙지검 특수 2부는 신동아건설의 서울 용산구 본사 사무실과 경기 성남시 분당구 본점 사무실, 일해토건 서울사무소 등 4곳을 압수수색했다.
검찰은 신동아건설이 아파트 건설과정에서 하도급업체에 지급하는 공사대금을 실제보다 부풀리는 방식으로 거액의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단서를 잡고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하지만 검찰 주변에서는 검찰의 신동아건설 수사의 무게 중심이 비자금 조성보다는 일해토건의 신동아건설 인수 특혜 의혹에 실려있다고 보고 있다.
일해토건은 지난 2001년 신동아그룹이 해체되면서 신동아건설을 인수했던 중견업체로 당시 건설업계에서는 이를 두고 ‘새우가 고래를 삼켰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이번 수사가 인수 특혜 의혹에 모아져 있다고 보는 이유는 검찰이 현 신동아건설의 회장이자 당시 일해토건의 사장이었던 김용선 회장에게 수사의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전남 목포 출신의 김 회장은 A 의원과 상당한 친분 관계를 맺고 있는 인물로 알려져 있다.
정치권에서는 “A 의원이 신동아그룹 몰락 과정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고 보고 있는 것이 정설이다. 신동아건설에 대한 검찰 수사의 최종 목표는 A의원일 것이라는 얘기가 나돌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특히 검찰은 신동아그룹 최순영 전 회장이 모 월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신동아그룹 해체 과정에 정치권의 압력이 있었다’는 발언에 주목하고 수사를 진행해 나가고 있다. 검찰은 지난 4일 김 회장을 출국금지 조치했으며 김 회장과 관련된 광범위한 계좌 추적을 실시하고 있는 중이다.
특수 3부에서 진행하고 있는 보건복지부 전자바우처 사업자 선정 비리 수사에도 A 의원의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다.
검찰은 ‘전자 바우처’(노인·산모·신생아 도우미 사업 등에 전자카드 형태로 지원금을 지급해 이용자가 신용 카드처럼 쓸 수 있게 하는 제도) 사업과 관련해 공무원에게 뇌물을 주고 회삿돈을 횡령한 혐의 등으로 모 카드기술 업체 대표 하 아무개 씨를 11월 11일 구속했다. 하 씨는 ‘전자 바우처’ 시스템 구축을 위한 업체 선정 과정에서 복지부 공무원에게 뇌물을 줘서 공정한 입찰을 방해하고 공금 10억여 원을 횡령한 혐의를 받고 있다.
문제는 하 씨가 A 의원의 전직 비서 출신이라는 점이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바우처’ 선정 과정에 A 의원이 개입한 것 아니냐는 의혹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특히 당시 보건복지부 평가에서 하 씨가 대표로 있던 회사가 아닌 다른 회사가 자체 평가에서 1등을 했는데 실제 선정자로는 하 씨의 회사가 낙찰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이 과정에서 정치권의 압력이 있었다고 보고 있다.
지난 10월 국회 국정감사에서도 바우처 수사 건과 관련해 여·야 의원들이 한바탕 설전을 벌이기도 했다. 한나라당 아무개 의원이 보건복지가족부 국감에서 ‘2007년 전자바우처 사업자 선정과정에 A 의원 측근인 하 씨가 대표로 있는 S 사가 개입한 의혹이 있다’며 전재희 장관을 추궁하고 나선 것. 이에 민주당 의원들이 “검찰에서 확인되지 않은 추측성 이야기를 하면서 (A 의원) 실명을 거론하는 것은 부적절한 정치공세”라고 여당 의원을 비판했다.
우연의 일치인지 몰라도 두 개의 수사건과 관련해 A 의원의 이름이 거론되면서 검찰 주변에서는 수사의 최종 종착지는 A 의원이 될 것이라는 추측이 난무하고 있다. 특히 검찰 주변 인사들은 최근 검찰과 A 의원이 국감 등을 통해 여러 차례 직간접적으로 부딪친 사실에 주목하고 있다. A 의원은 지난 10년 정권 동안 실세로 군림하며 사정기관 내에 적지 않은 인맥을 쌓은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국감에서 검찰을 코너로 몰아넣은 바 있다.
한때 검찰은 A 의원에게 자료를 넘긴 내부자를 색출하는 소동을 벌이기도 했다고 한다. 검찰 사정에 밝은 한 인사는 “결국 A 의원이 앞선 두 개의 사건과 무관하다 하더라도 이번 검찰 수사가 A 의원에게 무언의 압박으로 비칠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하지만 검찰 관계자는 “비리 혐의가 포착돼 수사를 시작했을 뿐 수사에 어떠한 정치적인 의도도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과연 이번 수사를 진행하고 있는 검찰의 진의가 무엇인지 정치권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박혁진 기자 ph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