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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8년 동국대 총학생회장이던 최재성 의원(오른쪽)과 동국대 경주캠퍼스 총학생회장의 ‘학원자주화’상의 장면. | ||
그는 1984년 동국대 불교철학과에 입학한다. 술집을 전전하며 방황하던 ‘청년’ 최재성은 1학년 여름방학 때 출가를 결심, 경북 점촌에 있는 사찰 ‘김용사’로 들어갔다. 하지만 “출가도 인연이 닿아야 했는지 결국 좌절과 실망만 가득 안고서 돌아와, 학생운동권에 뛰어들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열혈투사로 변신, 87·88년 집시법 위반으로 두 차례 투옥됐다. “덕분에(?) 10년 만에 겨우 대학을 졸업했다”며 웃는다.
그는 88년에 동국대 총학생회장(서울지역 총학생회연합 중앙상임위원 겸 남부지구 대표)이 됐다. 사진은 총학생회장 시절 동국대 경주캠퍼스 총학생회장이었던 강진수씨(현재 부산 리베라호텔 대표)와 학원자주화 투쟁을 공조하기 위해 상의하고 있는 장면이다. 총학생회장 시절 최 의원은 1백36일 동안 ‘학원자주화’를 위한 농성을 벌인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교수와 학생 교직원 모두가 대학의 주인이 되는 ‘학원자주’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했다”고 말했다.
최 의원은 국회 교육위원회에 소속돼 있다. 교육 문제의 심각성을 알기에 교육위에 몸을 실었고, 현재는 사립학교법 개정문제에 몰두하고 있다. 교육문제에 대한 관심은 아들 정호군을 지리산 실상사에 있는 대안학교인 ‘작은학교’로 보낸 사실만으로도 짐작할 수 있다. 그는 “경쟁 위주의 공교육에 아이를 맡겨두는 것이 속상해서 산과 들로 뛰어다니며 노닐라고, 그래서 아주 착한 인간으로 자라라고 그곳에 보냈다”고 설명했다.
그는 결혼 이후 포장마차를 시작으로 배추 장수, 신발 노점상, 공사장 막노동꾼 등 무려 20여 가지 직업을 경험했다. 세상의 ‘밑바닥 삶’을 몸소 체험한 것이다. 그래서인지 유난히 ‘현장 정치’를 강조한다. 최 의원은 “의원회관에만 앉아있으면 안 된다”며 “얼마 전엔 경찰들을 만나 3가지 정도 입법사항을 발견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