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한 뒷거래‘’ 거물도 엮였나
사정당국 주변에선 이 시장과 노 시장의 뇌물 수수 사건에 여권 출신 전·현직 유력 인사들이 연루된 의혹마저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 시장 사건에는 현직 검사의 남편으로 17대 총선 때 한나라당 공천으로 수도권에 출마한 조 아무개 씨가 직간접적으로 연루됐으며, 노 시장 사건에는 여권 실세인 A 씨의 부인이 구설수에 오르내리고 있는 사실이 확인됐다.
이처럼 일부 여권 인사들이 연루된 정황이 포착되고 있지만 검찰은 수사 확대를 차일피일 미루고 있어 ‘축소·봐주기’ 수사 논란을 부추기고 있다. 여권을 초긴장 모드로 몰아넣고 있는 오산·군포시장 뇌물수수 사건 속으로 들어가 봤다.
수원지검 특수부는 지난 11월 5일 아파트 건설업자에게 수억 원대의 금품을 받은 혐의로 이기하 오산시장(44)을 구속했다. 검찰에 따르면 이 시장은 올해 6~7월경 오산시 양산동에 위치한 E 아파트 건설사업 인허가 과정에서 업자에게 편의를 봐주고 그 대가로 10억 원을 건네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이 시장은 M 시행사 전 임원인 홍 아무개 씨(63)로부터 직접 뇌물을 전달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홍 씨는 이 시장에게 뇌물을 준 혐의로 지난 11월 2일 구속기소됐다. 하지만 홍 씨는 지병 때문에 보석으로 출소한 지 이틀 만인 지난 15일 오전 지병인 간암으로 사망했다.
홍 씨의 사망으로 이 시장에 대한 검찰의 공소유지가 가능할지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검찰조사 과정에서 이 시장은 자신의 혐의를 모두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행법상 피고인인 이 시장이 법정에서 검찰의 주장을 부정할 경우 핵심 증인인 홍 씨가 법정에 나와 진술을 해줘야 하지만 이것이 불가능해진 상황인 것. 검찰은 “증인이 사망하거나 출국한 경우 예외적으로 검찰 조서 등을 법정에서 증거로 인정할 수 있는 만큼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는 입장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검찰 측의 생각일 뿐 법원의 판단은 다를 수 있다는 게 법조계 안팎의 중론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 시장 사건의 또다른 핵심 당사자로 조 아무개 씨가 주목받고 있다. 국내 유력일간지 출신인 조 씨는 지난 17대 총선에서 한나라당 공천을 받아 수도권에 출마한 이력이 있다. 조 씨는 또 지난 대선 정국 때는 유력 대선주자 캠프에서 활동했던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홍 씨는 정당 활동으로 친분을 쌓았던 조 씨를 통해 이 시장에게 접근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에 따르면 조 씨는 홍 씨로부터 이 시장이 건네받은 10억 원 중 최소 2억 원의 돈을 대신 전달한 혐의를 받고 있다. 따라서 핵심 증인인 홍 씨가 사망한 만큼 이 시장의 뇌물수수 혐의를 입증해 줄 유력한 당사자로 조 씨가 주목받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검찰은 조 씨를 불구속 입건한 상태로 수사를 벌이고 있는 것으로 확인돼 논란이 예상된다. 도주 및 증거인멸 우려가 없다는 게 검찰의 불구속 입건 사유다. 현역 시장이 10억대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된 상황에서 ‘브로커 역할’을 한 의혹을 받고 있는 핵심 당사자를 불구속 상태에서 수사하는 것은 극히 이례적이라는 게 법조계 안팎의 중론이다. 이 시장에게 돈을 건넨 혐의로 구속됐다가 지병으로 사망한 홍 씨의 사례와 비교할 때도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사정당국 일각에서는 조 씨의 부인이 현직 검사라는 점이 고려된 것 아니냐며 의혹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축소·봐주기’ 수사 논란과 관련해 검찰 측은 “말도 안되는 소리”라며 일축하고 있지만 조 씨의 불구속 입건 배경을 둘러싼 논란은 이 시장 사건이 마무될 때까지 당분간 끊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30일부터 시작된 노재영 군포시장의 뇌물수수 혐의 수사 과정에서도 검찰의 수사 태도에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검찰은 노 시장에게 로비를 벌인 혐의로 브로커를 검거한 후 이 브로커가 또 다른 한나라당 유력 정치인에게 로비를 벌인 정황을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검찰은 해당 사건과 관련된 인물에 대해서는 전혀 수사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11월 2일 춘천지방검찰청 원주지청은 브로커 어 아무개 씨(44·P사 고문)를 구속한 바 있다. 어 씨는 2006년 4월부터 그해 12월까지 군포시장에게 사업수주 청탁 명목으로 H 사 대표 이 아무개 씨로부터 5억여 원의 로비자금을 받아 가로챈 혐의를 받고 있다. 이 씨는 컴퓨터와 음향장비 관련 사업을 하고 있는 인물이다.
어 씨는 또 노 시장 외에도 서울메트로 직원, 특허청 공무원, 시청 공무원 등에게도 로비를 해주겠다고 약속하고 돈을 받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어 씨의 사기 행각은 이 씨의 고소로 덜미가 잡혔다. 이 씨는 어 씨가 약속을 지키지 않자 지난 4월 16일경 어 씨를 사기 혐의로 고소하면서 검찰이 내사에 돌입했다. 검찰 수사가 본격화되고 8월 말경 이 씨가 증거자료를 제출하면서 어 씨는 결국 구속됐다.
검찰의 계좌추적 결과 어 씨는 청탁 명목으로 받은 돈을 대부분 사적인 용도로 사용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하지만 검찰은 이 씨가 노 시장에 대한 청탁 명목으로 금품을 수수한 시기가 현재 수원지검 안양지청에서 수사 중인 노 시장의 뇌물 수수 의혹 시기와 일치한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검찰은 어 씨가 사적으로 사용하고 남은 일부 금액을 노 시장에게 실제로 전달했을 가능성을 열어놓고 수사를 진행 중이다.
특히 검찰 수사 과정에서 여권 실세인 A 씨 부인이 로비 사건에 연루된 정황이 포착돼 사실 여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 씨는 소장에서 “브로커 어 씨가 ‘A 씨 부인에게 로비 명목으로 200만 원 상당의 가방을 줘야 한다’고 요구해 어 씨에게 손가방을 건네줬다”고 주장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 씨는 최근 검찰에 손가방을 구입할 당시 받았던 신용카드 영수증을 증거자료로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검찰은 고급 핸드백의 행방에 대해선 아직까지 수사에 나서지 않은 것으로 확인돼 논란이 예상된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검찰에서 현 정권 실세인 A 씨에게까지 수사가 확대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사건을 축소·은폐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검찰이 여권 인사 연루 의혹이 증폭되고 있는 오산·군포시장 뇌물 수수 사건을 어떤 식으로 처리할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김장환 기자 hwan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