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부 파워게임 유탄 맞았나
▲ Y 행정관은 청와대 연풍문(왼쪽 사진) 공사 관련 금품을 수수했다는 루머에 휩싸였다. | ||
특히 청와대 외부에서는 이번 사건이 단순한 금품 수수 사건이 아닌 청와대 내 권력 투쟁 과정에서 벌어진 사건으로 해석하고 있다. 실제로 Y 행정관이 옷을 벗기 전 그와 관련된 각종 범죄정보들은 검찰 경찰 국정원 등에 보고됐다고 한다. 하지만 보고된 내용이 저마다 다른 ‘버전’의 것들이어서 누군가가 Y 행정관과 그 배후를 노리고 악성루머를 퍼뜨리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되고 있는 상태다.
청와대 행정관의 뇌물 수수 사건에서 비화된 청와대 내부의 권력 투쟁을 들여다봤다.
최근 청와대 공직기강팀이 자체 조사를 벌인 결과 청와대 총무비서관실 소속 선임행정관(2급) Y 씨가 모 회사로부터 금품을 수수한 사실이 드러났다.
청와대 한 관계자에 따르면 “액수가 크지 않았고 돈의 성격도 애매한 것이어서 별 문제가 없는 것으로 봤다”고 말했다. 총무비서관실 쪽에서도 Y 행정관을 다른 공기업으로 내려 보내는 방안을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내부에서 최근 이명박 대통령이 청와대 근무자들의 근무 기강 확립을 강조한 상황에서 불미스런 사건이 외부로 알려질 경우 좋을 것이 없다는 판단하에 적절한 차원에서 마무리하려 했던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이때부터 Y 행정관과 관련된 각종 소문들이 여의도 호사가들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흥미로운 것은 Y 행정관이 돈을 받았다는 소문의 내용이 여러 버전으로 돌아다녔다는 점이었다.
“모 자동차회사로부터 업무상 자동차 10대를 구입하는 대가로 돈을 받았다” “한 대기업 건설사에게 청와대 안내실 공사를 맡기는 조건으로 3000만 원을 받았다” “자동차 회사에서 차를 사며 할인을 많이 받아 물의를 일으켰다” 등 소문은 다양했다.
소문은 급속도로 퍼져나갔고 각 정보기관 및 해당 기업에도 관련 내용들이 보고됐다. 심지어 청와대 직원들 사이에서도 설왕설래가 이어졌다. 해당 기업들은 기자들의 문의가 잇따르자 저마다 억울함을 호소했다. <일요신문>도 소문에 오르내렸던 기업 관계자들에게 관련 내용을 문의했으나 모두 ‘사실무근’이라고 답했고, 일부 기업에서는 ‘법적 대응까지 갈 수도 있다’며 강경한 입장을 보였다.
자신에 대한 소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자 Y 행정관은 결국 지난 12월 1일 사표를 냈다. 다만 Y 행정관은 사표를 내는 순간까지 억울함을 호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Y 행정관이 옷을 벗은 것에 대해 청와대 내부 의견은 갈렸다. 한 청와대 관계자는 “뭔가 감사에서 지적이 됐으니까 문제가 됐지 안 그랬으면 여기까지 왔겠냐”고 말했다. 또 다른 청와대 관계자는 “Y 행정관은 아내가 교수에다가 청와대에 근무하기 전 고급 승용차를 몰 정도로 집안 형편이 넉넉했는데 굳이 건설사로부터 돈을 받아 ‘화’를 자초할 이유가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Y 행정관이 워낙 직설적인 언변을 구사하는 사람이어서 주변에 오해를 불러일으킬 만한 행동은 했었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Y 행정관의 사퇴를 놓고 청와대 안팎에서 논란이 일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현재까지 가장 설득력 있게 전해지는 것은 이번 사건이 청와대 내부의 권력투쟁 과정에서 벌어졌다는 해석이다.
Y 행정관은 모 중앙일간지 기획사업국장 출신으로 지난 대선이 끝난 후 이명박 대통령 후보 외곽조직인 ‘선진국민연대’에서 잠깐 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권 실세 P 씨의 소개로 총무비서관실에서 일하게 된 그는 청와대 내 물품 조달 등을 담당하는 수석 행정관(2급)이었다.
사실 청와대 공직기강팀에서 Y 행정관과 관련된 감사를 진행해 금품 수수건 등을 적발한 것은 2~3개월 전의 일이었다. 하지만 최근에서야 관련 사실들이 청와대 외부로 흘러나온 것이다. 왜 시간이 다소 흐른 사건들이 확대·재생산되어 청와대 외부에 돌고 있는 것일까.
<일요신문>은 청와대 내외부 관계자들을 상대로 취재를 하는 과정에서 이번 사건을 ‘선진국민연대’와 연관지어 보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청와대 내부 사정에 밝은 A 씨는 청와대 실세 비서관으로 통하는 L 씨의 청와대 내 영향력이 급감했다는 점에 주목했다. L 비서관은 이명박 대통령과 같은 포항 출신으로 대선 당시 ‘선진국민연대’에서 일했다. 그는 대통령과 독대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던 만큼 청와대 내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얼마 전 L 비서관이 경제수석실에 찾아가 막말을 한 것이 언론을 통해 흘러나오기도 했다. 이를 보도한 언론들은 L 비서관의 청와대 내 영향력을 언급하며 이런 소동을 일으켜도 다른 비서관들이 별다른 말을 하지 못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L 비서관은 지난 10월 국정감사에서 본인 담당이 아닌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의 활동 내용을 보고받았다는 의혹을 야당으로부터 받을 정도로 ‘실세 중의 실세’로 통하고 있다.
당시만 해도 L 비서관은 실세로 활동하면서 청와대 내 선진국민연대 출신들의 바람막이 역할을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A 씨는 “Y 행정관과 관련한 사건이 처음 불거졌을 때도 별다른 잡음이 들리지 않았던 것은 L 비서관의 영향력이 컸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폭언 사건으로 인해 이 대통령은 L 비서관의 활동범위를 대폭 축소시켰고 이때부터 그의 영향력도 자연스럽게 줄어들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L 비서관의 영향력이 작아지자 일종의 ‘풍선효과’처럼 평소 선진국민연대 쪽에 불만이 많았던 다른 쪽 세력들의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고, 이 과정에서 선진국민연대 출신 Y 행정관이 유탄을 맞았다는 게 청와대 내부의 ‘정설’이다.
또 다른 청와대 관계자는 최근 들어 선진국민연대를 이끌었던 현 정권 실세 P 씨와 관련한 루머들이 부쩍 증가한 점에 주목하고 있다. 이 관계자는 “최근 ‘P 씨가 모 건설사의 대형 교회 건축 민원을 해결해주는 조건으로 건설사로부터 돈을 받았다’ ‘이번 국세청 안원구 사건에 P 씨가 깊숙이 연결되어 있다’는 식의 P 씨 관련 루머들이 증가했다”며 “어디서 이런 소문들이 나오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누군가가 P 씨를 음해하기 위해 이 같은 소문을 흘리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고 주장했다.
결국 Y 행정관의 부적절한 처신에서 비롯된 이번 파문은 일부 기업에까지 불똥이 튄 것은 물론이고 정보기관 담당자들에게도 큰 혼란을 안겨다 줬다. 만약 청와대 일각에서 해석하는 것처럼 이번 사건이 청와대 내 권력 투쟁에서 비화됐다면 거기에 들어가는 ‘비용’이 너무 가혹하다는 것이 청와대 외부의 시각이다.
박혁진 기자 ph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