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앗긴 ‘항일 투사’ 땅에도 봄은 올까
▲ 임병완 후손 임언상이 임야를 소유하고 있다는 증명서류(왼쪽)와 김병호, 김동호가 토지조사위원회에 재결 신청한 것을 보여주는 자료. | ||
항일 무장투쟁에 앞장 선 김호락(당시 호적상 이름은 김병락)과 그의 아들 김세동은 건국훈장 애국장까지 받은 대표적인 독립 운동가로 평가받고 있다. 이들은 퇴계 이황의 수제자였던 학봉 김성일(1538~1593)의 후손이기도 하다. 경북 안동 유림의 거두로 불렸던 학봉 가문답게 그 후손들은 일제에 항거해 독립운동의 최전선에 뛰어들었다. 김호락은 경북 예안의 일본군 분파소를 습격하는 등 항일 무장투쟁을 이끌었고, 그의 아들 김세동 역시 독립운동자금을 마련하다 보안법 위반으로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조선 말기 헌종은 학봉 김성일의 혁혁한 공훈을 표창해 강원도 삼척군 상장면 주위의 약 1억 2210만㎡(3700만 평)에 이르는 땅을 하사한다는 사패를 내렸다. 이는 왕이 공을 인정해 하사한 땅 중 가장 큰 면적이다.
이들 가문의 토지 소유를 막기 위해 조선총독부는 몇 단계에 걸쳐 방해 공작을 펼쳤다. 김병락이 헌종의 사패와 교서를 제출하며 임야소유를 신고하자 조선총독부는 사패가 허위라며 강원도지사에게 이들을 안동 지방 검찰청에 고발케 했다.
하지만 검찰은 감정인을 통해 사패와 교서가 진본임을 인정하고 김병락을 무혐의 처분했다. 토지조사위원회는 사패 및 교서의 진위 여부와 상관없이 본건 임야를 국유지로 사정했고, 이에 김병락이 불복했지만 임야조사위원회는 이를 각하해버렸다.
또 총독부는 법리적으로 정당하게 땅을 빼앗기가 어려워지자 또 다른 음모를 꾀한다. 경찰서장 출신 일본인 부송을 시켜 사패와 교서를 변조할 계획을 세운 것이다. 부송은 산림부 관원들과 극히 친밀한 사이라며 김세동에게 접근했다. 원본 서류를 가지고 오면 관원들에게 진본임을 확인시키겠다고 호언장담을 했다. 이후 고민하던 김세동은 사패와 교서를 가지고 왔고, 부송은 서류를 보자고 하면서 손에 든 것을 그대고 강탈해 달아나 버렸다.
‘한울타리 조상 땅 찾기’ 장상혁 대표는 “그 땅에 뭔가가 있다”면서 의문을 제기했다. 부송이 잠적해버리자 조선총독부에서 흥신소를 동원해 부송의 이후 행적과 김세동과의 관계를 두 번씩이나 조사했다는 점을 봐도 이 땅이 단순히 넓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란 게 정 대표의 견해다.
다행히 조선총독부의 위 모든 행적이 기록된 문건들이 국가 기록원에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국가기록원 기록을 바탕으로 그의 후손들은 조선총독부의 토지조사사업 당시 억울하게 국유지로 귀속된 조상의 땅을 찾기 위해 2002년 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법률상 원인 없이 경료된 국가 명의의 소유권보존등기는 무효’라고 주장하는 후손들에 대해 국가는 20년 이상 점유해 취득시효가 완성됐다고 맞서, 7년에 걸친 법정 공방전이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김호락의 후손이 승소한다면 이는 독립운동 가문이 토지조사사업 때문에 억울하게 뺏긴 토지를 되찾는 기념비적인 첫 사례가 될 것으로 보인다.
독립운동가 김동호 역시 토지조사사업의 피해자다. 김동호는 삼척 지역 출신으로 1910년대 국내의 대표적 혁명 단체였던 대한광복회 회원으로 활약한 인물이다. 그는 토지조사 당시 독립운동을 했다는 이유로 강원도 삼척군의 2만여 평에 달하는 토지의 소유권을 인정받지 못했고, 이 땅은 현재까지도 국유지로 귀속돼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강원도 삼척시에서는 지난 2004년 김동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해 9300만 원을 지원해 사당을 건립하기도 했다. 삼척시에서 사당 건립을 위해 지원한 9300만 원은 국유화된 땅 2만여 평에 대한 보상금으로 보기에는 한참 모자라는 액수다. 물론 삼척시에서 땅에 대한 보상금 형식으로 사당 건립 기금을 지원한 것은 아니었다.
논산 출신 독립운동가 임병완의 후손 역시 조상 땅을 찾기 위해 오랫동안 싸워왔다. 임병완은 독립운동자금을 모집하며 일제에 항거하다 그의 행동을 유심히 살펴오던 일본 경찰에 탐지돼 체포됐다.
임병완은 이후 종로경찰서로 연행돼 신문을 받던 중 고문을 이기지 못하고 순국했다. 임병완은 고종 32년 친일 세력에 반대한 대표적 인물인 림최수의 조카이기도 하다. 조상 대대로 일본 세력에 대항했던 이들 가문은 토지조사 때 충남 논산군에서 보유·관리하던 땅을 빼앗겼다. 후손들은 정당한 공시절차도 없이 국가 소유로 보존등기돼 버린 이 땅을 찾기 위해 진정서를 제출한 상태지만 지금까지 별다른 진전이 없어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일제로부터 광복된 지 벌써 60여 년이 흘렀다. 친일반민족행위자 인명사전 발간 등 일제 잔재를 씻어내기 위한 작업이 한창 진행되고 있지만 독립운동을 하다 조선총독부에 억울하게 빼앗긴 땅을 원 소유자에게 돌려주기 위한 노력은 보이지 않고 있다. 토지조사부에 등재된 자들에겐 소유자로서 강력한 권리추정력이 부여된다는 게 대법원의 판례다. 해당 토지의 소유자임이 마땅함에도 조선총독부의 방해로 토지조사부에 소유자로 등재되지 못한 독립운동가 후손들도 위 권리추정력을 인정받아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다.
정유진 인턴기자 kkyy1225@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