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검찰 사이 ‘인(人)라인’ 깔았나
▲ 불법자금 2억 원을 수수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공성진 의원이 검찰의 조사를 받은 후 귀가하고 있다. 이광재 의원은 2억 원 수수 혐의로 구속됐었다. | ||
이 과정에서 참여정부 핵심 실세였던 한명숙 전 국무총리가 불구속 기소됐고, 현경병 한나라당 의원과 현 여권 실세인 공성진 한나라당 최고위원도 불구속 기소되는 수모를 겪었다. 연말 사정 정국의 최대 관전 포인트였던 공 최고가 결국 불구속 기소되면서 정치인 사정 수사는 일단락된 모양새다.
하지만 검찰 수사 과정과 그 결과물을 둘러싼 부실·봐주기 수사 논란이 증폭되고 있고, 뒷말도 무성하게 나돌고 있다. 특히 사정당국 주변에서는 청와대 민정실과 검찰 수뇌부가 핫라인을 구축하고 정치인 사정 수사를 물밑 조율하고 있다는 얘기가 설득력 있게 나돌고 있는 실정이다.
공 최고위원의 사법처리로 외형상 마무리 수순을 밟고 있지만 신년 정국을 뜨겁게 달굴 핵뇌관으로 잠복해 있는 정치인 사정 수사를 둘러싼 남은 쟁점 및 풀리지 않은 의혹을 되짚어 봤다.
지난해 10월부터 시작된 대한통운 비자금 사건과 스테이트월셔 골프장 인·허가 로비 의혹 사건은 정치권을 겨냥한 검찰 사정 수사를 알리는 신호탄이 됐다.
검찰은 과거 ‘박연차 게이트’ 사건을 둘러싼 편파·보복 수사 논란을 의식한 듯 이번에는 전·현 정권을 동시에 겨냥하는 전략을 구사했다. 대한통운 비자금 사건은 대한통운이 노무현 정부 시절에 거액의 비자금이 조성됐다는 점에서 검찰 수사의 칼끝은 궁극적으로 구 여권 실세들을 겨냥할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렸다. 일부 언론에서는 한명숙 전 총리와 정세균 민주당 대표 등 구 정권 실세들이 영문 이니셜로 리스트에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반면 스테이트월셔 골프장 인·허가 로비 의혹 사건의 경우 상당수 여권 인사들이 개입된 정황이 포착돼 ‘골프장 게이트’로 확전될 가능성에 힘이 실렸다. 사정당국 주변에서는 불구속 기소된 공성진 최고위원과 현경병 의원 외에 또다른 여권 거물급이 연루됐을 것이란 의혹도 끊임없이 나돌았다.
검찰이 여야를 망라하고 성역 없이 정치권에 사정 드라이브를 구사하는 모양새였다. 정치권을 겨냥한 검찰 칼날에 여의도 정가는 초긴장 모드로 빠져든 반면 국민들은 성역 없는 검찰 수사에 잔뜩 기대를 걸었다. 하지만 국민적 기대와는 달리 검찰 수사는 이상한 방향으로 흐르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검찰은 ‘박연차 게이트’에 버금가는 구여권 권력형 비리 사건으로 확전될 가능성이 높았던 대한통운 비자금 사건을 서둘러 마무리했다.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는 지난해 11월 25일 거액의 비자금을 조성하고 이 중 일부를 개인적으로 유용한 이국동 대한통운 사장과 곽영욱 전 사장 등 3명을 특가법상 횡령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하고, 비자금 조성에 가담한 관계자 몇 명을 불구속 기소하는 선에서 사건을 종결했다.
야권 주변에선 참여정부 일부 실세들이 연루된 의혹을 받고 있는 사건을 검찰이 서둘러 종결한 배경에는 분명 정치적 노림수 등 불순한 의도가 투영돼 있을 것이란 의구심을 감추지 않았다. ‘골프장 게이트’ 사건에 일부 여권 실세를 비롯한 적지 않은 여권 인사들의 연루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에서 구 여권 실세들에게 먼저 사정 칼날을 들이댈 경우 야당 탄압 내지는 표적 수사 논란이 재연될 것을 우려한 검찰이 정치인 수사 대상 및 시기를 조율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다.
민주당 일각에선 공성진 최고위원을 비롯한 일부 여권 실세들이 ‘골프장 게이트’에 연루된 의혹을 받고 있는 만큼 구 여권 실세들을 ‘사정 리스트’에 올려 놓고 ‘정치적 빅딜’을 시도하기 위해 구색을 맞추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마저 제기하기도 했다.
야권의 이러한 의구심과 경계심은 곧 현실화 단계로 접어들었다. 골프장 게이트 수사가 본격화되면서 공 최고와 현 의원 등 여권 인사들이 수사 대상에 오르자 검찰은 이미 종결했던 대한통운 사건과 관련해 한명숙 전 총리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검찰은 한 전 총리에게 5만 달러를 건넸다고 주장한 곽영욱 전 사장의 진술을 한 일간지에 흘려 여론 추이를 살핀 후 한 전 총리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했다. 한 전 총리가 수사에 불응하자 검찰은 12월 18일 강제로 체포영장을 집행한 뒤 12월 22일 불구속 기소했다. 검찰이 구체적인 뇌물 수수 증거를 확보하지 못했음에도 전직 총리를 지낸 구 정권 실세를 속전속결로 사법처리를 한 셈이다.
한 전 총리에 대한 사법처리는 공교롭게도 스테이트월셔 골프장 회장 공 아무개 씨(구속기소)로부터 1억 3000여만 원을 받은 혐의로 한나라당 현경병 의원이 불구속 기소(12월 21일)된 다음날이었다. 편파 수사 내지는 형평성 논란을 잠재우기 위해 여당 의원을 먼저 사법처리한 뒤에 한 전 총리를 기소한 게 아니냐는 의구심을 떨쳐버릴 수 없게 하는 대목이다.
검찰은 또 공 최고에 대한 구속 여부가 사정 정국의 최대 관심사로 부상하자 정세균 대표의 역할론에 의혹의 시선을 보내면서 민주당을 압박했다. 검찰은 2006년 12월 20일 한 전 총리와 곽 전 사장이 만난 자리에 정 대표가 동석한 사실을 밝혀내는가 하면 당시 정 대표가 장관으로 재직했던 산업자원부가 조직적으로 인사 청탁에 개입한 정황을 잡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검찰은 여러 정황상 정 대표가 곽 전 사장 인사 로비 사건에 모종을 역할을 했을 가능성을 열어 놓고 정 대표 주변 인물들을 대상으로 사실 관계를 전 방위적으로 파악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검찰 내부에서조차 의견이 분분했던 공 최고의 사법처리 수위를 둘러싼 논란은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는 지난 30일 기업인과 후원업체 등에서 2억 원의 불법 자금을 챙긴 혐의로 공 최고위원을 불구속 기소했다. 검찰에 따르면 공 최고위원은 지난 2008년 경기도 안성 스테이트월셔 골프장의 대표 공 씨로부터 4100만 원을, 골프장 카트 제조업체 C 사와 바이오 기술업체 L 사에서 각각 1억 1800만 원과 4100만 원을 받는 등 모두 2억 원을 수수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공 최고의 이종육촌 형인 배 아무개 씨(구속기소)가 주류업체 회장으로부터 받은 1억 원 중 5000만 원으로 체크카드를 만들어 공 최고에게 건넨 것과 관련해서는 “배 씨가 정치자금을 지원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고, 친척 간의 정치자금 지원은 형사처벌할 수 없다”고 밝혔다. 검찰은 또 공 최고위원을 불구속 기소한 사유에 대해 자금수수 방법에 참작할 만한 사유가 있고 증거인멸 가능성이 낮다는 점, 국회 회기 중이라는 점 등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검찰이 공 최고의 불법자금 수수 혐의 액수를 2억 원으로 특정하고도 구속영장을 청구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부실·봐주기 수사 논란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검찰은 지난해 3월 이광재 민주당 의원이 2억 원에 가까운 불법 정치자금을 수수한 혐의로 구속한 전례가 있어 형평성 논란도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야권 일각에서는 청와대 민정실을 정점으로 한 사정당국이 핫라인을 구축해 정치인 사정 수사를 물밑 조율하고 있다는 의혹마저 제기되고 있다. 사정당국 주변에서도 지난해 9월 권재진 민정수석이 사정 사령탑을 맡은 이후 그 어느 때보다 막강한 사정라인을 구축하고 있다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권 수석은 임채진 전 총장 퇴임 당시 후임자 1순위로 거론됐지만 ‘권력기관장 영남 독식’ 여론 등에 등떠밀려 검찰을 떠난 뒤 지난해 9월 청와대 민정수석으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 권재진 민정수석(왼쪽)과 김준규 검찰총장 | ||
야권은 물론 시민사회단체와 일부 법조계 관계자들조차 대한통운 비자금 사건과 골프장 게이트 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 과정 및 그 결과물에 의혹의 서선을 보내고 있는 배경에는 찰떡 궁합을 자랑하고 있는 현 사정라인이 자리잡고 있다. 속전속결로 끝낸 한 전 총리의 사법처리, 정세균 대표 주변 인물들에 대한 전방위 내사로 민주당 압박, 드러난 불법자금 수수 액수만 2억 원인 공성진 최고 불구속 기소 등 일련의 검찰 수사 및 결과물이 마치 ‘짜고친 고스톱’처럼 손발이 척척 맞아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제1야당 대표와 참여정부 실세로 강력한 야당 서울시장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인사를 수사하고 사법처리할 때는 권력 핵심부와 교감이 있었을 것이란 시각이 우세하다. 민주당 관계자들이 권력 핵심부의 입김이 작용할 수밖에 없는 두 사건에 대해 청와대 민정실이 진두지휘하고 법무부와 검찰이 보조를 맞춘 게 아니냐는 관측을 내놓고 있는 것도 이러한 시각과 그 맥을 같이하고 있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