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임용 탈락은 네 탓” 극단적 복수
황산테러 사건이 벌어진 수원검찰청사 내부 모습(위)과 건물 전경. 연합뉴스
지난 5일 수원지검 4층 형사조정실. 오후 5시 40분쯤 형사조정을 하기 위해 A 교수(37)와 학생 B 씨(21), 형사조정위원과 법률자문위원 등 6명이 모였다. 형사조정이란 고소가 제기됐을 때, 고소인 측과 피고소인 측을 불러 양측의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한 절차다. 합의를 통해 형벌을 자제하자는 취지로, 민간 위원들을 통해 조정이 성립되면 이후 고소를 취하할 수 있다.
지난 8월 A 교수는 학교 내에서 B 씨에게 창피를 당했다며 명예훼손과 모욕 혐의 등으로 학생 B 씨를 고소한 바 있다. 사건은 지난 11월 화성동부경찰서에서 수원지검으로 송치됐으며 지난 5일에는 첫 형사조정이 열린 자리였다. 고소가 제기됐지만, 사제지간인 만큼 어느 정도 합의를 예측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오후 5시 50분쯤 한창 얘기를 하고 있던 상황에서 A 교수가 잠시 조정실 밖으로 나갔다. 자리에 남은 B 씨 측은 형사조정위원들과 막판 조율을 하고 있었다. 이후 A 교수는 조정실 안으로 들어왔는데, 그의 모습이 심상치 않았다. A 교수의 손에는 500㎖ 정도의 액체가 담긴 플라스틱 용기가 쥐어져 있었다.
순식간이었다. A 교수는 B 씨와 형사조정위원들에게 액체를 뿌리기 시작했다. 갑작스런 상황에 조정실에 있던 사람들은 미처 액체를 피하지 못했다. 충격적이게도 A 교수가 뿌린 액체는 유독물질인 ‘황산’이었다.
당시 조정실에는 B 씨뿐만 아니라 B 씨의 부모도 함께 있었다. B 씨의 부모도 황산 테러를 피할 수 없었다. B 씨의 어머니가 증언한 바에 따르면 A 교수의 행동은 더욱 충격적이다. B 씨의 어머니(48)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교수가 갑자기 들어오자마자 통을 들고 와서 내리 부었고 남은 것은 아빠 얼굴에 부었다”라며 “황산을 뿌린 뒤 우리 상황을 태연하게 계속 보고 있었다. 순식간에 타들어 가던 아들이 너무 놀라했다”고 전했다.
B 씨는 얼굴과 상, 하반신 등에 2도 화상을 입었으며, B 씨의 부모, 형사조정위원 등은 얼굴과 손, 허벅지 등에 화상 피해를 입었다. 부상자들은 모두 인근 대학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았다. <일요신문>은 B 씨의 현재 상태를 알아보기 위해 B 씨의 어머니에게 여러 차례 연락했으나 끝내 닿지 않았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다행히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상태로 알려졌다.
황산테러를 벌인 A 교수는 사건 직후 현행범으로 체포됐다. 11일 수원지검 관계자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A 교수에 대한 조사가 현재까지 진행 중이다. 사건이 발생한 형사조정실은 외부인뿐만 아니라 검찰 직원들까지 통제가 금지되어 있는 상태다”라고 전했다. 수원지검은 해당 사건을 형사 3부에 배당할 예정이다.
경기도 한 대학교수인 A 교수는 대학에서 영어 과목을 가르치는 교포 출신 외국인 강사였다고 한다. 한 대학 관계자는 “A 교수가 출석 체크를 하라며 B 씨를 조교로 채용했던 것으로 안다. 한국말도 서툴기 때문에 조교가 필요했을 것이다. 그런데 정식 조교는 아니었고 아르바이트 형식이었기 때문에 교수와 제자 간에 개인적으로 맺은 계약 비슷한 것”이라고 전했다.
복수의 대학 관계자들에 따르면 문제는 “A 교수가 B 씨에게 아르바이트 비용을 제대로 지급하지 않았다”라는 소문이 돌면서 시작됐다. 심지어 두 사람의 갈등과 언쟁이 심해지자, A 교수가 B 씨를 자신의 사무실에 감금하고 폭행했다는 얘기까지 불거졌다. A 교수는 이러한 얘기를 B 씨가 퍼트린 것으로 봤다. 그리고 결국 8월에 B 씨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기에 이른다. A 교수는 오히려 “B 씨가 일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라고 주장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고소 사건을 담당한 화성동부경찰서 관계자는 “고소 사건과 관련해서는 해줄 말이 없다”라고 전했다.
어찌됐건 A 교수의 엽기적인 ‘황산테러’ 사건이 전해짐에 따라, 해당 대학은 충격에 빠진 분위기다. 일각에서는 A 교수의 평소 성격이나 수업 스타일까지 암암리에 회자되는 중이다. A 교수를 알고 있다는 복수의 관계자들은 “A 교수가 성격이 툭하면 화를 잘 내고 상당히 다혈질이었다. 과제도 음식을 먹는 동영상을 찍어서 보내라는 등 뭔가 특이한 점이 있었다”라고 입을 모았다. 하지만 A 교수가 황산테러라는 극단적인 선택까지 벌였다는 점에는 모두 경악을 감추지 못했다.
B 씨가 있는 해당 학과 역시 분위기는 마찬가지다. 학과 소속 한 관계자는 “B 씨와 관련해선 아무 말도 해줄 수 없다. 다만 몇몇 언론보도에 여학생으로 나왔지만 그건 아니고 남학생이 맞다. 이런 상황이 발생해서 너무나 안타깝다”라고 전했다. B 씨를 가르쳤다는 한 대학교수는 “걔 우리 반 아이야”라며 안타까운 반응을 보이면서도, 기자 신분을 밝히며 인터뷰를 요청하자 “할 말이 없다”며 빠르게 자리를 피했다.
한편 A 씨가 검찰청사로 황산을 들고 유유히 들어왔다는 사실이 확인됨에 따라 검찰청사의 보안 실태 역시 지적되고 있다. 수원지검에 따르면 1층 현관에 보안검색대가 설치돼 있지만, 검색대는 흉기 등 금속 물질만을 탐지할 뿐 액체류는 잡아내지 못해 미처 사건을 방지하지 못한 것으로 파악된다. 수원지검 측은 조만간 보안과 관련한 종합대책을 마련해 추진할 계획이라고 전해졌다.
박정환 기자 kulkin85@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