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정기관 최고위층도 ‘그집’ 단골”
경찰은 N 룸살롱의 실제 업주 이 아무개 씨(39)의 휴대전화 2대의 통화내역을 확보해 지난 3주간 조사를 벌였다. 이 씨가 단속을 피해 매월 약 50억 원대의 매출을 올릴 수 있었던 배경에는 경찰의 비호가 자리잡고 있을 것으로 추정했기 때문이다.
특히 지방 모 대학 총학생회장 출신인 이 씨는 업소를 운영하면서 사정기관 고위층과 다양한 인맥을 형성해 왔다는 점에서 경찰의 수사 추이에 비상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실제로 <일요신문> 취재결과 전직 사정기관 최고위층 인사도 이 씨가 운영하는 업소에 자주 드나들었던 것으로 알려져 사실 유무에 따라 적잖은 파장을 예고하고 있다.
경찰과 유흥업주 간의 단순한 유착 의혹을 넘어 사정기관 최고위층은 물론 정·관계 유력인사들이 연루된 권력형 비리 사건으로 확전될 조짐이 일고 있는 사건 속으로 들어가 봤다.
‘강남 밤거리의 제왕’으로 불리던 이 씨는 경찰의 수차례 단속에도 불구하고 오뚝이같이 되살아났다. 이는 그가 지난 10년간 쌓아온 철저한 인맥 덕분이었다. 이 씨는 지방 모 대학 총학생회장 출신으로 대학 졸업 후 서울로 상경해 북창동 유흥주점의 호객꾼으로 일했다. 경찰의 단속을 피해 수익을 올리는 방법을 터득한 이 씨는 강남 영업현장에 직접 뛰어들었고 이후 성공가도를 달리기 시작한다.
이 씨는 바로 신종 퇴폐업소로 불리는 이른바 ‘북창동’식 룸살롱을 강남에 정착시킨 장본인으로 유명하다. ‘북창동’식이란 술자리 현장에서 성매매까지 이뤄지는 원스톱 서비스를 말한다. 여종업원은 속옷만 입고 남성 손님을 접대한다. 가격 또한 강남의 다른 룸살롱에 비해 3분의 1 수준이어서 샐러리맨들이 부담 없이 다녀가는 명소로 자리 잡았다.
이 씨는 강남의 대표적인 유흥업소 5곳의 실제 소유자로 알려졌다. 그는 룸살롱 지하에 호텔과 연결된 비밀통로를 마련해 2차 성매매를 하는 ‘풀살롱’ 방식으로 영업을 하기도 했다. 이번 사건의 발단이 된 논현동 N 룸살롱은 내부 면적만 1038㎡(약 314평)에 이를 정도로 대규모 영업장이다. 이 씨는 한 업소에서 최대 월 14억 원의 매출을 올렸고, 유흥주점 5곳을 운영하며 매월 약 50억 원의 수입을 올린 것으로 경찰 수사 결과 드러났다.
이 씨는 업소 이름을 10여 차례 바꿔가며 영업을 계속해 왔다. 실제로 2007년과 2009년 시행된 경찰의 대대적인 단속에서 직원 10여 명이 처벌을 받았지만 이 씨는 처벌받지 않았다. 당시 그는 “유흥업소 관리에 조언만 해줬을 뿐 실제로 영업을 하지는 않았다”고 주장하면서 경찰 단속망을 피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도 이 씨가 해당 유흥주점의 실제 소유자라는 증거가 부족했다는 이유로 그에게 면죄부를 줬다.
하지만 유흥업계 주변에서는 월 매출 50억 원대라는 막대한 수입을 올리고 있는 이 씨가 경찰의 단속망을 계속 피할 수 있었던 것은 경찰 등 공무원과의 유착관계 때문이라는 의혹이 끊이질 않았다. 강남 유흥업소 주변에서 이러한 의혹이 확산되자 결국 경찰은 이 씨 업소에 대한 수사를 본격화했다. 여기에 지난 3월 15일 조현오 서울지방경찰청장이 “문제의 유흥업소와 경찰의 유착 관계가 드러날 땐 파면과 해임 같은 중징계를 내릴 것”이라며 강경 수사를 지시하면서 이 씨와 관계된 경찰 및 공무원들의 대대적인 사정이 불가피한 상황으로 급변했다.
서울경찰청은 이 씨의 휴대전화에 저장된 1526명의 인적 사항을 토대로 통화내역 8만 4047건을 확보했다. 이 씨의 휴대전화에 저장된 1526명 중에서 유흥업소 관계자 25명의 진술과 통화 내역을 대조해 경찰관 63명을 추려냈다. 이 중 이 씨와 400통 넘게 통화한 경찰관을 비롯해 100통 넘게 통화한 경찰관이 3명, 50통 넘는 경찰관은 9명인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 중에는 강남지역 외에 다른 지역 경찰관도 상당수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총경급 고위 간부가 중간에 연루됐다는 소문이 돌아 일선 경찰서가 바짝 긴장하고 있다.
지난 3월 17일 기자와 통화한 서울경찰청 특별조사계 관계자는 “유흥업소를 단속했던 1월 12일 즈음에 업주 및 관련 폭력배들과 통화한 내역만 있어도 일단 명단에 올렸다”며 “이 씨와 통화한 적 있는 경찰관들에게 미리 자진 신고토록 했다. 신고하지 않은 경찰관들은 통화 내용을 구체적으로 소명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소명절차는 간단하다. 명단에 포함된 경찰관이 이 씨와 통화한 이유 및 내용만 보고하면 된다. 따라서 해당 경찰이 이 씨와의 관계를 부인하거나 통화 내용을 거짓으로 소명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에 대해 특별조사계 관계자는 “통화 횟수 및 유흥업소 관계자의 진술을 토대로 증거를 잡아낼 것”이라며 수사에 강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특히 이 씨가 강남에서 룸살롱을 운영하면서 경찰은 물론 판·검사 및 사정기관 고위층과도 친밀한 관계를 맺어 왔다는 점에서 경찰의 수사 추이에 비상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실세로 취재결과 전직 사정기관 최고위층이었던 A 씨는 재임시절 이 씨가 운영하던 룸살롱에 자주 드나들었던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이와 관련 최근 기자와 만난 정보기관의 한 관계자는 “A 씨를 비롯해 사정기관 고위층이 이 씨 업소에 단골로 드나들면서 뒤를 봐준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이 씨와 통화한 경찰은 조족지혈에 불과하고 사정당국의 수사 의지에 따라 사정기관 고위급 등 거물급이 걸려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업계 주변에서는 이 씨가 경찰 단속 등 어려움을 당할 때마다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해 뒤를 봐줬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현재 해당 업주에 관한 수사는 서초경찰서에서, 경찰 및 공무원 비리에 관한 사항은 서울경찰청 특별조사계에서 각각 진행하고 있다. 경찰을 비롯해 고위 공직자가 연루된 사건인 만큼 투명한 수사가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도 점점 커지고 있다.
과연 경찰이 60명이 넘는 경찰관과 사정기관 고위층이 연루된 의혹을 받고 있는 이번 사건을 읍참마속의 심정으로 발본색원할 수 있을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정유진 기자 kkyy1225@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