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압은 몰라도 ‘화두’는 던졌다?
![]() |
||
▲ 지난 25일 봉은사에서 열린 봉은사 직영사찰 지정에 관한 신도회의 기자회견 모습. 임영무 기자 namoo@ilyo.co.kr | ||
당사자들이 침묵으로 일관하는 사이 불교계 내부와 정치권에서는 이번 사건과 관련해 각종 의혹들이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이번 사태가 벌어지게 된 진짜 속사정 및 후폭풍을 들여다 봤다.
정치권 외압 논란을 떠나서 봉은사의 재정은 조계종 내의 ‘뜨거운 감자’였다. 강남구 삼성동 한 가운데 위치한 봉은사는 부유층 신도들이 많이 다니고 있었던 만큼 재정 규모도 다른 사찰에 비해 압도적으로 크다. 올해 조계종 총무원 한 해 예산규모가 300억 원, 강화도 보문사가 20억 원인 것과 비교해보면 100억 원이 넘는 봉은사의 재정 규모가 얼마나 큰지를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재정규모가 큰 만큼 탈도 많았다. 1990년대에는 주지 임명을 둘러싸고 폭력사태도 일어났다. 지난 2002년에는 조계종 내에서 “봉은사가 종단의 승인을 얻지 않고 사채를 빌려 통장 입출고 내역도 없이 간이 영수증으로 처리하는가 하면, 20억 원 정도에 불과한 보우당(사찰 내부 건물) 공사비용을 두 배로 부풀려 책정하는 등 66억 7000만 원의 수입을 의도적으로 누락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내부적으로 감사를 한 적도 있다. 또한 지난 2006년에는 공식적인 사찰 지원금 이외에도 음성적인 돈이 종단으로 빠져나간다는 의혹도 제기됐었다.
이에 명진 스님은 지난 2006년 봉은사 주지에 임명되면서 ‘사찰재정운용 투명화’를 취임 일성으로 들고 나왔다. 재정운용이 투명화된 이후 예산 규모는 명진 스님 취임 첫해 86억 원이었던 것이 올해 136억 원으로 늘었다. 명진 스님 임명 이후 법회 참석 신도 수뿐만 아니라 재적 신도 수도 많이 늘어났다고 한다.
여기에는 명진 스님의 자정 노력이 큰 역할을 했다는 데 대부분의 불교계 인사들이 동의하고 있다. 명진 스님은 주지 스님들이 개인용도로 쓰던 불전함도 신도들에게 맡겨 관리하도록 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불교계 일각에서는 봉은사가 회계를 투명하게 하면서 재정이 늘어났고, 이것이 조계종 직영사찰 전환을 부추겼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직영사찰로 전환되면 총무원장은 봉은사의 당연직 주지가 되고 모든 재정 관리도 종단에서 하게 된다. 이렇다 보니 봉은사 신도들 사이에서는 직영전환 논란이 불거질 때부터 “봉은사가 총무원의 돈줄이냐”는 볼멘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그렇다면 조계종 내부 사정과는 별개로 실제로 직영사찰 전환 과정에서 정치권의 외압이 있었던 것일까. 명진 스님은 지난 3월 21일 일요법회를 통해 한나라당 안상수 원내대표의 외압설을 최초로 제기했다. 그는 이날 “지난해 11월 13일 서울 프라자호텔에서 자승 조계종 총무원장, 안상수 원내대표, 고흥길 의원, 김영국 조계종 불교문화재단 대외협력위원 등이 함께한 자리에서 안 원내대표가 자신을 겨냥해 ‘강남 부자 절에 좌파 스님을 그대로 놔둬서 되겠느냐’는 발언을 했다”고 폭로했다.
이에 대해 안 원내대표는 “명진 스님이 누구인지도 모른다”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한 불교 전문 신문에 명진 스님과 안 원내대표가 10여 년 전 함께 찍은 사진이 공개됐고, 프라자호텔 회동에 배석했던 김 거사가 “안 원내대표가 그런 말을 한 것이 맞다”고 밝히면서 정치권 외압설이 진실게임 양상으로 번졌다.
특히 명진 스님이 현 정권 들어서 정부 정책에 날을 세웠다는 점은 외압설 의혹을 부추길 만한 근거로 제시되고 있다. 그는 현 정부에게는 쓰라린 기억인 촛불집회, 용산 참사, 정부 지도 사찰 누락,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 등이 불거졌을 때마다 신랄한 비판을 가해왔다. 그만큼 정부 여당 입장에서는 명진 스님이 눈엣가시였던 셈이다. 게다가 조계종 전 총무원장이었던 지관 스님 역시 현 정권과 불편한 관계였다는 점에서 명진 스님의 발언이나 거취를 간섭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그러나 상황이 달라졌다. 현 정권과 이렇다 할 악연도 인연도 없는 자승 스님이 신임 총무원장에 취임하면서 정부와 조계종 간에 ‘접점’이 생긴 것이었다. 게다가 최근 조계종은 전략사업 중 하나인 템플스테이 사업에 정부 측의 예산 증액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황이었다.
이에 대해 봉은사의 한 신도는 “안상수 원내대표가 이참에 정부에 삐딱한 봉은사를 정리해준다면 템플스테이 등 사찰 현안사업에 거액의 국고 지원을 해주겠다고 약속하자 무늬만 그럴듯한 명목을 들어 봉은사 직영 전환이라는 안건을 총무원회의에서 결의한 것 아니냐”며 의혹을 제기했다. 이와 관련, 명진 스님은 지난 28일 일요법회에서 “조계종 자승 총무원장이 현 정권과 밀착관계”라는 주장을 펼쳐 ‘빅딜’ 의혹에 힘을 실었다. 하지만 조계종 측은 “종단 관련 업무에 외압은 있을 수 없다”며 이번 논란에 선을 긋고 있다.
당사자들이 함구하고 있고 무엇 하나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추측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명진 스님과 김영국 거사 간에 음모론까지 불거지고 있는 상황이다. 김 거사는 한나라당 소속으로 지난 2006년 지방선거 당시 수도권 아무개 시장 캠프에서 일하다가 선거법 위반으로 실형과 추징금을 선고받았다. 이번 선거에 지방자치단체장 출마를 준비했던 김 거사로서는 출마를 위해서는 사면이 꼭 필요했다. 그러나 김 거사는 사면을 받지 못 했고 실제 이번 지방선거 출마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결국 명진 스님과 김영국 거사는 현 정권에 감정이 좋지 않은 가운데서 이번 사건이 불거져 나왔다는 것이다.
이번 사태와 관련해 어느 쪽의 말이 진실인지 여부는 당사자들만이 알 수 있다. 하지만 현 정부 들어서 유독 색깔론과 종교편향 논란이 자주 불거지고 있는 상황에서 ‘봉은사 외압설’이 불거졌다는 점에서 파문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박혁진 기자 ph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