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 앞에선 ‘족보’도 안 통했다
▲ ‘낙화유수’ 김태련(사진 오른쪽)과 ‘천안곰’ 조일환. 한 시대를 풍미했던 이들은 이제 고인이 됐다. | ||
서울대 상대 출신으로 인텔리 주먹으로 통했던 ‘낙화유수’ 김태련 씨가 대표적이다. 50년대 ‘동대문사단’에서 활동하며 이름을 날린 김 씨는 2006년 11월 77세의 나이로 운명을 달리했다. 5·16 직후 정치깡패로 법정에 섰던 김 씨는 석방 후 국회의원 자리를 제안받기도 했으나 “군사정권에 협력하기 싫다”는 이유로 단호히 거부했고, 노년을 ‘정의사회실천모임’ 고문으로 활동하며 범죄추방운동에 매진했다. 생전에 “내가 걸어 온 길이 사람에 따라 비난할 수 있지만 그래도 한 점 부끄럼 없이 당당한 협객의 길을 걸어왔음을 자부한다”고 고백한 김 씨는 2004년 마포구 상수동의 자택을 비롯한 전 재산을 사회복지센터 건립기금으로 내놓고 재소자 교화활동과 사회봉사활동에 전념해 주먹계 원로로서 모범을 보여줬다.
김두한의 후계자 ‘천안곰’ 조일환 씨도 72세의 나이에 갑작스레 사망해 충격을 줬다. 타고난 체격과 주먹, 배짱 하나로 불과 17세 때 지역을 평정한 조 씨는 40년 이상을 주먹 세계에 몸담으며 이름을 날렸지만 말년에는 “돌이켜보면 참 덧없는 세월이었다”며 목회자로서 제2의 삶을 살았다.
항간에서는 언론에 노출을 즐기던 그의 변화를 미덥잖아했지만 그는 “낯 뜨겁지만 좋은 일 하는 것은 자꾸 소문을 내야 어둠의 무리들을 교화시키는 데 효과가 있다”는 논리를 펼쳤다. 그는 전국의 교도소와 소년원 등을 돌아다니며 강연과 상담을 하는가 하면 ‘현역시절’ 거느렸던 ‘아우’들 및 중고등학교 일진회 멤버들의 교화에 앞장서 왔다.
특히 목사로 변신한 그는 사재까지 털어 이웃을 돕고 충남 홍성에 은퇴한 원로목사와 오갈 데 없는 무임목사들을 위한 ‘목회자 안식의 집’ 건립을 추진하기도 했다. 주목할 점은 ‘족보’에 상관없이 그를 따르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점이다. 음모와 배신이 난무하는 주먹세계에서 조 씨는 주먹들을 두루 아우르고 중재시킬 수 있는 ‘큰형님’으로 통했다.
이수향 기자 lsh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