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 사람들에 따르면 노총각 강씨는 비디오 영화관람이나 컴퓨터 게임이 유일한 취미일 정도로 내성적 성격의 소유자. 서씨 역시 지난 99년 교도소에서 출소한 뒤 가깝게 지내는 친구가 거의 없었다. 종업원이 8명뿐인 소규모 직장이었지만 그 안에서도 ‘색깔’이 비슷했던 둘은 유난히 자주 어울리게 됐다.
이날의 술자리는 동료 직원 4~5명이 중간중간 다녀가는 바람에 애초 생각과 달리 조금씩 길어졌다. 맥주와 소주를 번갈아 마신 이들은 새벽 2시가 넘어서야 술집을 나올 수 있었다. 술자리에 최후까지 남은 것은 평소 절친하던 강씨와 서씨. 둘은 서로 만취한 상태에서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평소 자주 가던 강씨의 집으로 향했다.
강씨가 청천벽력과도 같은 노모의 사망 사실을 알게 된 것은 다음날 아침. 술에서 깨어났을 때 뜻밖에도 숨져 있는 어머니 손길례씨(가명?8)의 모습을 발견했던 것. 전날 지나친 음주로 ‘필름’이 완전히 끊겼던 탓에 어찌된 영문인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이윽고 강씨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 현장에선 외부의 침입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다. 경찰로선 일단 가족인 강씨를 상대로 전날의 행적을 조사하는 것이 당연한 수순이었다. 강씨의 불운은 이때부터 시작된다. 아무리 전날 기억을 떠올려보려 해도 초저녁에 술자리를 시작했다는 것 이외에는 전혀 기억나는 것이 없었다.
누구와 몇 시에 귀가했는지도 머리에 떠오르지 못했다. 그가 ‘어머니를 죽이지 않았느냐’는 형사들의 질문에 “모르겠습니다. 술에 취해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는 정도의 대답밖에 내놓지 못했던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이날 밤 늦게 귀가조치됐던 강씨에 대한 조사는 이튿날에도 이어졌다. 강씨의 태도가 바뀐 것은 어머니 빈소를 다녀온 직후였다. 계속되는 조사도중 “어머니에게 문상을 다녀오겠다”며 빈소를 다녀온 시각이 6월10일 밤11시.
경찰에 따르면 강씨는 조사를 받기 시작한 지 2∼3시간쯤 지난 11일 새벽 1시∼2시 사이 심경에 변화를 일으킨 듯 ‘자백’을 시작했다. “만취한 상태에서 술집 여자인 듯한 누군가가 뭐라고 하는 것 같아 한 대 쳤더니 쓰러졌다. ‘힘도 없구만’ 하고 생각하면서 이불을 덮어놓고 나와서 잤다.”
이상은 경찰이 밝힌 강씨의 범행 자백 내용. 다음날인 12일 오전 경찰은 이를 바탕으로 강씨의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이날 영장실질심사 때 판사 앞에서도 강씨는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습니다만 제가 죽인 것 같습니다”라며 범행을 시인했다고 한다.
그 가운데 강씨의 절친한 동료였던 서씨의 진술에서 뒤늦게 이상한 점이 발견됐다. “술을 마시고 봉천동 집으로 귀가하니 새벽 3시30분이었다. 다음날 아침 8시30분 친구가 등산을 가자고 전화를 해 집을 나섰다.” 서씨의 어머니 역시 그의 진술이 사실이라고 확인해주었다. 반면 13일 이동통신회사에서 도착한 서씨의 휴대폰 통화조회 회신 결과는 달랐다. 사건 당일 아침 8시30분 서씨가 집 근처가 아닌 화양리에서 통화한 사실이 발견된 것.
화양리는 피살자의 집과 서씨의 집 중간지점에 해당되는 지역. 서씨의 행적에 의심을 품은 경찰은 곧바로 서씨를 소환해 조사를 벌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고개를 숙이며 범행 일체를 자백하기 시작했다. 경찰 관계자에 따르면 사건 전날 강씨와 술을 마시고 강씨의 집으로 함께 간 서씨는 다음날 오전 7시에 화장실을 가려고 방을 나섰다. 이때 공교롭게도 강씨의 노모 손씨와 마주치게 됐다. 서씨는 강씨의 집에 자주 출입했던 터라 강씨의 노모 손씨와도 이미 어느 정도 안면이 있던 사이.
이 자리에서 손씨는 “술 좀 그만 마시고 다녀라”라고 서씨를 꾸짖었다고 한다. 이에 서씨는 몇 마디 말대꾸를 했고 손씨는 어린 서씨의 버릇없는 말투에 화가 나 뺨을 한 차례 올려붙였다. 아직 술기운에서 완전히 깨지 못했던 서씨는 이에 격분해서 주먹으로 손씨를 한 차례 가격했다.
상황이 심각해진 것은 그 다음이었다. 넘어진 손씨가 고함을 지르며 반항을 했던 것. 당황한 서씨는 손씨의 아들 강씨가 깰까봐 그녀의 배 위에 올라타 마구 폭행했다. 이윽고 그가 다시 정신을 수습했을 때 손씨는 이미 사망한 상태였다.
유혈이 낭자한 손씨의 모습을 보고 한동안 고민하던 서씨는 일단 사건 현장에서 빠져나오기로 했다. 그는 먼저 자신의 손에 묻은 피를 물로 닦아낸 뒤 손씨가 성폭행을 당한 것처럼 위장해 놓고 이불을 덮어두었다. 자신이 다녀간 흔적을 없애기 위해 잠자리도 말끔히 정리해놓고 살며시 강씨의 집을 빠져나왔다.
이때가 지난 6월9일 오전 8시. 감쪽같이 사건 현장을 은폐한 서씨도 마지막 순간만큼은 방심했던 것일까. 그가 문을 열고 나오면서 낸 소리가 이웃 주민의 귀를 자극했다. 집 안에 외부의 침입 흔적이 없었던 것과는 달리 누군가가 현장에서 빠져나갔음을 시사하는 유력한 단서가 되는 부분이었다.
집으로 돌아온 서씨는 자신의 어머니에게 “경찰이 귀가시간을 물으면 새벽 3시30분쯤에 왔다고 대답하라”며 알리바이를 조작하려 했다. 더욱 기가 막힌 사실은 범행을 저지른 이후에도 서씨가 태연하게 손씨의 빈소를 찾아 노름을 하는 등 주변의 눈을 철저히 속였던 것.
서씨에겐 이미 남에게 누명을 씌운 전력이 있었다. 10년 전 사람을 죽이고 무고한 경찰관을 살인범으로 내몰리게 해 1년 남짓 억울한 징역을 살게 했던 것(상자 기사 참조). 그런 과거의 노하우 때문이었을까. 서씨의 ‘완전범죄’는 거의 성공 직전까지 갔다. 하지만 범행 뒤 휴대폰을 사용한 것과 강씨 집을 나서면서 소리를 냈던 것, 두 가지의 사소한 ‘실수’ 탓에 그의 범행은 결국 들통나고 말았다. 그로 인해 어머니가 피살됐음에도 ‘존속살해’라는 패륜 혐의를 뒤집어써야 했던 강씨에게는 참으로 끔찍했던 3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