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충북 청주에서는 한 여대생이 다방업주에게 빚을 진 친구를 잠시 숨겨준 ‘죄’로 대신 감금돼 혹사를 당하다가 구출된 사건이 있었다. 업주가 여대생을 협박하는 데 동원한 희한한 논리는 ‘빚진 친구를 숨겨주면 공범 사기죄에 해당한다’는 것. 곤경에 빠진 친구를 보호하려던 이 여대생은 결국 친구의 빚 때문에 대신 다방에서 현대판 노예생활을 해야 했다. 문제의 업주는 지난 14일 감금 및 폭력 행사 등의 혐의로 경찰에 구속된 상태. 하지만 악덕 업주의 횡포 때문에 눈물의 나날을 보내야 했던 이 여대생은 아직도 마음의 안정을 되찾지 못하고 있다. 친구를 재워줬다는 이유로 ‘티켓다방’에서 강제로 일을 해야 했던 한 여대생의 끔찍했던 49일간의 여정을 따라갔다.
▲ 경찰에 구속된 다방업주 노씨 | ||
신영진양(가명?9)과 김희재양(가명?9)은 어린 시절을 함께 보냈던 고향 친구. 중학교 졸업 뒤 둘의 인생은 사뭇 달라졌다. 신양은 충북의 한 도시에서 술집과 다방을 오가며 험한 삶을 살았다. 반면 김양은 지방의 한 대학에 입학해 꿈에 그리던 대학생활을 시작하게 된다.중학교 졸업 이후 한동안 연락없이 지내던 두 친구. 지난 8월 초 둘이 다시 만나게 되면서 이들의 생활은 뒤죽박죽이 돼 버리고 말았다. 당시 신양은 청주시내에 있는 ‘J다실’에서 종업원으로 일하고 있었다. 선불금 3백50만원을 받고 일하는 조건이었다.
문제가 시작된 것은 신양이 김양의 자취방에 찾아온 지난 8월9일. “힘들어서 일을 못하겠다. 업주가 꼼짝도 못하게 한다”며 자신의 처지를 하소연하던 신양의 말에 가슴이 아팠던 김양은 위로라도 해줄까 싶어 그녀를 하룻밤 재워줬다. 다음날 오전 9시께, 무심코 창밖을 바라보던 신양이 사시나무 떨 듯 새파랗게 질려 버렸다. 이유인즉, 다방 업주 노승표씨(가명?1)와 종업원 한 명이 신양을 잡아들이기 위해 김양의 집을 포위하고 있었던 것.그런 신양을 보며 순간적으로 보호본능이 발동했던 김양은 그녀를 이불 속에 숨겨둔 채 업주와 맞닥뜨렸다. 신양의 소재를 묻는 업주 노씨의 물음에 김양은 짐짓 시치미를 뗐다. 하지만 산전수전을 다 겪은 업주 노씨가 그런 김양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리 없었다. 며칠이 지난 8월23일 노씨는 다방일을 총괄하던 자신의 어머니와 함께 다시 찾아와 김양에게 신양의 소재를 물었고 결국 김양은 “얼마 전 신양을 하룻밤 재워준 사실이 있다”고 털어놓고 말았다.
업주 노씨 모자가 노발대발했음은 물론. ‘그 X이 거액의 선불금을 받고 도망쳤는데 너 때문에 놓쳤다’며 폭언이 날라오기 시작했다. 노씨는 “사창가에서 몸을 팔든지 아니면 여기서 영진이 대신 일을 해라. 그렇지 않으면 공범사기죄로 징역가야 한다”며 그녀를 윽박질렀다. 젊은 사내와 중년 여성의 서슬에 놀란 김양은 친구 신양이 업주에게 지고 있다던 빚 9백60만원에 대한 차용증과 현금보관증을 써주고 다방에서 일하겠다는 ‘근로계약서’까지 작성해야 했다. 법적으로 아무런 근거가 없는 협박이었지만 순진했던 김양은 실제로 자신이 처벌을 받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약점을 잡힌 김양은 이때부터 업주 노씨에게 꼼짝없이 붙잡히는 신세가 됐다. 하루아침에 여대생에서 다방종업원 신세로 전락한 김양으로서는 억울하고 기가 막힐 일. 부모님에게 자신의 처지를 알려 도움을 청하고 싶은 생각도 있었지만, 노련한 노씨 모자는 김양의 의중을 간파하고 있었다. 겁을 주는 한편 김양에게 “영진이를 붙잡을 때까지만 네가 대신 일하면 다 된다”는 말로 일말의 희망을 던져줬던 것.업주 노씨의 이런 약속에 굳이 부모님에게 알릴 것은 없다고 생각한 김양. 하지만 오산이었다. 실제로 노씨는 지난 9월3일 서울 신당동에서 신양을 붙잡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김양의 처지는 그 이후에도 나아지지 않았다. 막상 그녀가 짐을 꾸려 떠나려고 하자 노씨 모자는 “저것이 또 말썽을 부린다. (법적으로) 너도 같이 돈을 물어내야 하니 일이나 해라”라며 재차 협박을 했다.
김양으로서는 이때도 ‘무작정 계속 일하라’고 했다면 부모님에게 알리는 것 외에는 별다른 선택이 없었을 터. 이 점을 간파하고 있었던 노씨는 다시 ‘9월19일이 되면 보내주겠다’는 약속으로 김양을 얼렀다. 하지만 약속 날짜는 말도 안되는 이유로 자꾸만 늦춰졌다. 그러던 것이 무려 5차례나 이어졌고 지난 11일 더 이상 견딜 수 없게 된 김양은 결국 부모에게 다방에서 감금당한 채 찻잔을 나르고 있다는 충격적인 고백을 할 수밖에 없었다.49일 동안 뜻하지 않게 ‘뒷골목 세상’을 경험해야 했던 김양은 다행히 이날 오후 부모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의 손에 구출됐다. 이런 걸 우정이라 해야 할까. 친구 탓에 최악의 경험을 하게 됐던 셈이었지만 김양은 풀려나는 그 순간에도 친구 신양의 처지를 걱정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