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애’는 멀고 ‘아쉬움’은 줄줄이…
박근혜 대통령 동생들이 문건 정국으로 최근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작은 사진은 청와대 문건 유출과 관련 참고인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중앙지검에 출석한 박지만 회장과 박근령 전 육영재단 이사장. 구윤성 기자
보고서는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과정에서 그 실체가 드러났다. 당시 박 대통령은 “최태민 목사가 제가 어려운 시절에 도왔다는 것은 고맙다고 생각한다”면서 “횡령을 했느니 사기를 했느니 하는 얘기가 있는데, 횡령을 당했다는 사람도 없고 사기당한 사람도 없다. 법원에서도 문제가 없었는데 그런 소리 나오는 게 네거티브”라고 강하게 부인했다.
박 대통령 측이 “실체가 없다”며 강하게 부인한 최태민 보고서를 동생들은 어느 정도 사실로 믿은 듯하다. 1990년 8월, 박 대통령의 두 동생인 박근령·박지만 씨가 노태우 전 대통령에게 육필로 쓴 ‘탄원서’가 <오마이뉴스>를 통해 알려졌다. 이 탄원서 역시 2007년 대선 경선 과정에서 공개된 것이다.
A4용지 12매 분량의 탄원서는 “저희 언니(박근혜)와 저희들을 최태민 목사의 손아귀에서 건져 달라”는 절박한 내용을 담았다. 탄원서에서 박근령 전 이사장은 “(최 목사는) 유족이 핵심이 된 각종 육영사업, 장학재단, 문화재단 등 추모사업체에 깊숙이 관여해 회계장부를 교묘한 수단으로 조작하여 많은 재산을 착취했다”며 ‘최태민 보고서’와 같거나 비슷한 내용을 거론하며 “지금은 서울 강남 및 전국에 걸쳐 많은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해당 탄원서가 실제 노태우 전 대통령에게 전해졌는지에 관해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다만 박지만 회장이 1990년 12월 <우먼센스>와의 인터뷰에서 “큰누나와 최 씨의 관계를 그냥 두는 것은 큰누나를 욕먹게 하고 부모님께도 누를 끼치게 되는 것 같아 떼어놓으려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어 최 목사를 둘러싼 박 대통령과 동생들 간 갈등은 어느 정도 사실인 듯하다.
해당 보도 이후 박근혜 대통령은 “내가 누구에게 조종받는다는 것은 내 인격에 대한 모독이다”라고 불쾌감을 표했다. 당시 <오마이뉴스>는 박 전 이사장의 친필 편지와 해당 탄원서를 전문가에게 필적 감정을 의뢰한 뒤, 박근령 전 이사장이 직접 쓴 것이라고 보도했다. 하지만 박근령 전 이사장은 최근 한 인터뷰에서 “누가 탄원서 초안을 갖고 왔다. 우리는 그냥 사인만 했다”며 조금 다른 입장을 취했다.
2007년 두 건의 기록물을 통해 적잖은 정치적 타격을 입은 박 대통령은 이후 동생들과의 관계를 끊다시피 했다. 먼저 관계가 회복된 것은 남동생인 박지만 회장이었다. 박 대통령이 정계 입문 이후 손을 뗀 육영재단 운영을 둘러싸고 박근령·신동욱 부부와 박지만 회장 측 사이가 틀어졌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신동욱 현 공화당 총재는 “지만 씨가 지인을 시켜 자신을 중국으로 납치한 뒤 죽이려 했다”는 허위사실을 유포한 혐의로 징역을 살기도 했다.
모진 풍파를 겪은 세 남매는 ‘정윤회 문건’ 파문으로 또 다른 위기를 맞았다. 검찰은 해당 문건에 적시된 ‘십상시 회동’ 및 ‘박지만 미행설’을 허위로 잠정 결론을 내렸다. 박지만 회장 역시 15일 참고인 조사 당시 자신의 미행설을 입증할 증거를 전하지 않았다. 두 사람 간 권력암투가 사실이라면, 정윤회 씨의 판정승인 셈이다.
동생의 참고인 조사 직전인 12월 7일, 박 대통령은 새누리당 지도부와 오찬을 갖고 이례적으로 ‘정윤회’ 석자를 거론했다. “이미 오래전에 내 곁을 떠났고, 연락도 끊긴 사람”이라는 것이다. 이어 “지만 부부는 청와대에 얼씬도 못하게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청와대 실세는 진돗개”라는 다소 썰렁한 농도 던졌다.
새누리당 고참 당직자는 “박 대통령은 자신을 정치적으로 완전무결한 사람으로 본다. 정 씨나 문고리 3인방 역시 자신의 심부름꾼일 뿐인데, 바깥으로부터 매도돼 억울한 일을 당하고 있다고 여기는 듯하다”며 “자기 생각과 다르다면 동생들마저 한칼에 끊어버릴 수 있는 게 박 대통령이다. 청와대에 못 오게 하는 것도 역대 대통령 가운데 친·인척 비리가 없는 유일한 사람으로 남고 싶기 때문인 듯하다”고 설명했다.
반면 박 대통령의 고집이 계속될 경우 언젠가 남매 간 갈등이 재론될 것이라는 관측도 적잖다. 앞서의 오찬 회동에서 거론되지 않은 박근령·신동욱 부부의 행보가 주목된다. 특히 신동욱 공화당 총재가 지난 5월 소수 정당을 만들어 정치 행보를 시작한 이후 민정수석실 감찰이 강화됐다는 후문이다.
이와 관련, 신동욱 총재는 19일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감찰당하는 사람이 그걸 알면 그게 어디 감찰이겠느냐”며 “심지어 저에게까지도 청탁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래서 제 앞에서는 가방도 열지 말라고 입버릇처럼 말한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자신의 처지를 이렇게 한탄했다.
“청와대에서 친인척 관리를 한다면, 감찰뿐만 아니라 어느 정도 지원도 뒤따라야 하는 것 아닌가. 박 대통령의 가족이자 박정희 전 대통령 가문의 일원으로 최소한 품위유지가 가능해야 하는데, 상황은 고통스럽다. 아내를 지킬 자가용도 없다. 대통령 직계 가족을 위한 법과 예산이 있지 않나. 박 대통령은 직계 가족이 없는데, 우리를 지원한다는 것이 결국 정권의 성공을 위한 것이기에 국민 여론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신 총재 부인 박근령 전 이사장 역시 최근 문건 파문 과정에서 “집에 빚쟁이들이 찾아오면 전등과 TV부터 끈다”며 어려운 처지임을 호소한 바 있다. 앞서의 여당 당직자는 “좀 무리한 이야기이긴 하나 공감되는 부분도 있다. 대통령과 가족에 대한 사소한 이슈 하나가 커지면 결국 정권에 부담이 된다. (저 부부를) 청와대 민정비서실에서 컨트롤하지 못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김임수 기자 ims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