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의도 정가가 ‘한솔태풍’으로 술렁이고 있다. 이에 앞서 김현철씨는 조동만씨로부터 20억원을 받은 혐의로 전격 구속됐다. | ||
또 조 전 부회장으로부터 불법정치자금 20억원을 받은 혐의로 김영삼 전 대통령의 차남 현철씨도 지난 11일 서울구치소에 수감됐다.
이어 조 전 부회장과 현철씨가 구속되면서 ‘한솔 태풍’의 행로가 ‘여의도’를 향하고 있다는 관측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조 전 부회장이 지난 2002년 대선 당시 한나라당과 민주당 대선 캠프에도 거액의 불법정치자금을 제공했다는 미확인 소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다. 여기에 현철씨 변호인이 지난 8일 검찰 출입기자들에게 “누군지 말할 수 없지만 조씨가 검찰에서 현철씨 외에 돈을 준 사람이 더 있다고 진술했던 것으로 안다”고 밝혀, 큰 파문을 일으켰다.
정치권과 검찰 안팎에선 조 전 부회장으로부터 불법정치자금을 받은 정치인 명단이 실린 이른바 ‘조동만 리스트’까지 나돌고 있다. 이번 사건이 정·관계 인사들과 연루된 ‘한솔 게이트’로 비화할 조짐이 도처에서 감지되고 있는 것이다.
검찰 주변에선 세인들의 관심이 온통 현철씨에게 집중되자 현철씨 변호인이 검찰 수사에 ‘물타기’를 하기 위해 “조씨가 돈을 준 사람이 더 있다”는 발언을 한 것으로 보는 시각이 적지 않다.
그럼에도 정치권에선 이와는 별도로 ‘조동만 리스트’가 나돌고 있다. 여야 국회의원과 보좌관들은 ‘조동만 리스트’에 누가 포함됐는지 확인하기 위해 평소 친분 있는 국회·검찰 등의 출입기자들에게 전화를 거는 등 부산스럽게 움직이고 있다.
실제로 검찰과 정치권에선 조 전 부회장으로부터 자금을 받았다는 의혹을 사고 있는 전·현직 정치인 10여 명의 실명이 오르내리고 있다.
그렇다면 ‘조동만 리스트’에 오른 정치인은 누구일까. 현재 정치권과 검찰 안팎에서 거명되고 있는 여권 인사는 6명 정도. 여권의 주요인사인 L씨와 또 다른 L씨, Y씨, S씨 그리고 현 정부 유력인사인 C씨 등이며, 노무현 대통령의 측근으로 불리는 K씨도 포함돼 있어 진위여부에 관심이 쏠린다.
또한 야권에는 두 명의 H씨가 조 전 부회장으로 불법자금을 받았다는 의혹의 눈길을 받고 있다.
특히 정치권과 검찰 안팎에선 과거 여권의 실세였던 또다른 K씨를 놓고 “한솔그룹으로부터 확실히 정치자금을 받은 사람”이라고 지목하고 있다.
이들은 조 전 회장으로부터 한 사람 당 1억∼2억원씩, 모두 10억여원의 불법자금을 제공받았다는 소문까지 덧붙여지고 있는 상황.
특히 이들 가운데는 여권의 최고 실세들까지 포함돼 있어, 만약 불법정치자금을 받았다는 ‘소문’이 ‘사실’로 밝혀질 경우 여권에 큰 타격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예전에도 대기업이나 벤처기업 등의 비리사건이 터질 때마다 이들 기업으로부터 불법정치자금을 수수했다는 각종 ‘리스트’가 정가와 증권가에 전염병처럼 번졌다.
하지만 숱한 의혹에 대한 진위여부가 밝혀지지 않은 상태에서 수사가 마무리됐거나, 시중에 떠도는 낭설에 불과했던 경우가 적지 않았다.
그럼에도 정치권에선 ‘조동만 리스트’가 진실에 가깝다고 보는 시각이 적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리스트’에 오른 모든 사람이 불법자금을 받았다고 단정짓는 것 역시 무리다. 다만 리스트에 오른 인사들 가운데 몇몇은 조 전 부회장으로부터 자금을 받았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 또한 현재까지 리스트에는 거명되지 않고 있지만, 향후 검찰 수사를 통해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인사들의 이름이 불거질 개연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조 전 부회장이 현철씨 이외의 정치인들에게 정치자금을 전달했을 것이라고 보는 까닭은 무엇일까. 우선 조 전 부회장이 주식 매매차익으로 남긴 액수가 무려 1천9백억원에 달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천문학적인 이 돈의 사용처가 아직까지 대부분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에 정치권에선 이 돈의 일부가 정치권으로 유입됐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게다가 ‘현역 실세’가 아닌 현철씨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한다고 해서 20억원을 줄 정도면 정치권의 현 실세들에게도 정치자금을 제공했을 개연성이 크다는 이유를 들고 있다.
특히 조 전 회장이 정치권에선 ‘마당발’로 소문 나 있다. 그동안 여야 정치인과 두터운 친분관계를 유지해온 것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에 합법이든 불법이든 정치자금을 줬을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다.
여기에 검찰 주변에선 정치인 2~6명이 출국금지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에 한나라당이 먼저 포문을 열고 나섰다. 전여옥 대변인은 “노무현 대통령의 전공은 ‘개혁’과 ‘과거사 진상규명’이다. 노 대통령은 지금부터라도 ‘전공’에 충실하기 바란다”며 “‘조동만 비자금의 과거사’를 고백하고 자기개혁부터 해야 옳지 않은가”라고 논평했다.
한나라당은 ‘조동만 비자금’이 2002년 당시 한나라당 대선 캠프보다는 노무현 캠프에 더 많이 제공됐다는 항간의 소문에 대해 ‘확신’하고 있는 듯한 인상이다.
이에 비해 수세에 몰린 듯한 여당은 검찰 수사가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지 상당히 궁금해하고 있다. 열린우리당의 한 고위 당직자는 “과거 정부에선 검찰 수사에 대해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었으나, 현정부 들어서는 수사정보를 알지 못해 답답하다”며 “여권 인사들이 다수 (조동만 리스트에) 포함돼 있다는 말만 회자되고 있을 뿐 확인할 방법이 없다”며 오히려 기자에게 “‘조동만 리스트’를 알려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이번 사건을 수사중인 검찰은 조 전 부회장이 현철씨 이외의 정치인에게도 불법정치자금을 제공했다는 의혹에 대한 수사여부를 신중히 고민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조 전 부회장이 현철씨 이외의 정치인에게도 정치자금 제공했다고 진술했느냐’는 질문에 “확인된 게 없다”고만 말했다. 이는 검찰이 아무래도 정치권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데다, 여론의 향배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에 섣불리 정치권으로의 수사 확대 여부를 밝히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그렇지만 검찰이 현철씨를 구속하는 선에서 이번 사건을 마무리지을 것으로 보는 시각은 그리 많지 않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이번 수사에 대해 검찰은 어느 때보다도 보안에 신경을 쓰고 있다”고 전하면서 “현재 ‘조동만 리스트’로 언급되고 있는 인사 가운데 (앞서 언급한 노 대통령의 핵심측근인) K씨와 (여권의) S씨에 대한 혐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다만 (과거 여권실세였던) K씨는 분명한 것 같다”고 귀띔했다. 이 관계자는 ‘리스트’에 오르내리고 있는 나머지 인사들에 대해선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고만 언급했다.
다시 말해 검찰은 첩보와 의혹 수준인 ‘조동만 리스트’에 대해 별도의 확인작업을 벌이고 있다는 얘기다. 다만 정치인에게 자금이 전달됐다는 확실한 ‘물증’이나 ‘진술’을 아직 확보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검찰이 진행하고 있는 조 전 부회장의 계좌 추적과 진술 등이 정치권으로의 수사 확대여부를 결정짓는 핵심 열쇠인 것이다. 만일 검찰이 ‘조동만 비자금의 꼬리’를 잡는다면, 이 사건은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될 것이고, 17대 국회는 초반부터 ‘게이트 정국’으로 심한 몸살을 앓을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