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남동 이건희 삼성 회장 집 앞에서 분신소동을 벌인 김 씨는 지난해부터 골목 초입에 피켓을 걸어놓고자신의‘억 울함’을 호소했다. | ||
그가 시너를 뿌리며 분신을 하겠다고 하자 이 회장 집 앞에서 경비를 서고 있던 경비업체 직원 서너 명이 달려들어 김씨로부터 라이터를 빼앗아 분신을 저지, 소동은 일단락됐다. 그리고 김씨는 용산경찰서에 방화 예비 혐의로 입건됐다. 왜 김씨는 이건희 회장 집 앞에서 이 같은 소동을 벌였을까.
이 사건이 있기 전, 김씨는 지난해부터 이 회장 집 앞에서 매일 시위를 벌여왔다. 그는 이 회장 집 앞 골목 초입에서 “어음 위조범 최XX 구속하라!!”, “비리온상 삼성법무팀 해체하라!!”, “부패판사 송XX 자결하라”는 피켓을 걸어놓고 시위를 벌여온 것.
김씨가 이 시위를 벌이게 된 것은 삼성과 사업을 함께 하다 빚더미에 앉은 김씨 부친 때문. 삼성과 김씨의 악연은 지난 95년 10월부터 시작됐다.
김씨의 부친인 방송작가 김아무개씨는 당시 한보영화사(현재는 회사가 없어졌다)와 삼성물산이 비디오 판권계약을 맺을 때 보증을 서 주었다. 그 후 한보가 부도를 내자 삼성물산은 “자금지원 보증금인 3억7천만원을 변제하라”며 김씨의 부친을 상대로 재산 압류 신청을 냈고, 결국 김씨의 집이 강제 경매에 넘어갔다.
이에 대해 김씨쪽에선 삼성이 “비디오판권 계약 연대보증인인 나도 모르는 사이에 부친이 자금지원 보증인으로 둔갑했다”며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법원에선 민사재판 1심을 빼곤 모두 삼성물산의 손을 들어줬다. 그때부터 김씨의 한남동 1인 시위가 시작됐다.
김씨가 억울하다고 호소하고 있는 부분은 삼성물산이 항소심에서 증거물로 제시한 백지어음의 서명. 그는 이 서명이 완전히 위조됐고 어음에 찍힌 명판의 제작시기도 삼성물산의 주장과 다르다는 증거를 내놨지만 재판부는 이를 계속 무시했다고 주장했다.
김씨의 주장은 김씨의 부친이 한보영화사에 보증을 선 부분은 한보영화사의 비디오배급 판권계약과 관련된 부분일 뿐, 한보영화사에 대한 보증은 아니라는 것. 때문에 삼성물산이 한보영화사에 지원금 명목으로 준 돈에 대해 김씨 부친이 책임질 부분은 없다는 것이다.
▲ 김씨가 만든 피켓의 문구. | ||
이에 김씨는 어음위조를 이유로 삼성물산 임원인 최아무개씨를 형사고소했고, 경찰 조사에서 최씨의 어음위조죄가 인정되어 동부지청에 송치됐다는 것.
하지만 검찰로 넘어간 사건은 김씨의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검찰 수사에서 어음 위조 사건과 관련된 삼성쪽 직원이 무혐의인 것으로 판명난 것. 이런 일련의 상황으로 인해 김씨의 피해의식은 더욱 커진 것으로 보인다.
김씨는 이번 분신 소동을 일으키기 전에도 김씨측이 제기했던 경매무효 소송건을 맡고 있던 항소심 담당 재판부 송아무개 판사의 사무실로 찾아가 농약을 마시고 시너를 뿌리기도 했다. 당시 담당 판사는 김씨를 주거침입죄로 구속했다.
김씨의 이번 분신 시도는 두 번째인 셈. 김씨는 삼성물산과의 송사가 시작된 이후 부친은 정신병원에 입원을 했고, 삼성 계열사에 근무하던 동생은 유무형의 회사 내 압력을 견디다 못해 퇴사하는 등 집안이 풍비박산났다고 주장했다. 지난해부터 이 회장 집 앞에서 단독 시위를 벌일 만큼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는 데는 이런 사연이 있었던 것.
하지만 삼성물산쪽에선 이렇다 할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사법부의 판단이 삼성물산의 책임을 묻지 않은 데서 보듯 삼성물산과는 별 상관이 없다는 것. 더욱이 이 회장 집 앞에 와서 시위를 해야 할 사안도 아니라는 반응이다.
삼성의 이 같은 반응은 극히 이례적. 그동안 삼성은 삼성이 시공하는 아파트공사 현장에 이 회장 이름을 내걸고 항의하는 데모만 벌어져도 민감한 반응을 보여왔다.
삼성그룹 관계자는 “그룹과 약간의 관련이 있어도 민원인들이 이 회장의 이름을 파는 등 한계를 넘어서고 있다”며 “삼성이 봉이냐”고 항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