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하루만 기억한다? 과거와의 심리게임 ‘섬뜩’
@ 영화 정보
똑같은 설정을 가지고도 정반대의 영화가 완성될 수 있다. <첫 키스만 50번째>와 <내가 잠들기 전에>가 그렇다. 둘 다 아침에 일어나면 전날의 모든 일이 기억에서 사라지는 기억상실증을 다루고 있지만 <첫 키스만 50번째>는 로맨틱 코미디인 데 반해 <내가 잠들기 전에>는 미스터리 스릴러다.
기억상실증은 일치하지만 증상은 조금 다르다. <첫 키스만 50번째>는 사고가 나기 전날까지의 기억은 생생한데 그 이후는 기억이 없다. 그러다 보니 루시(드류 배리모어 분)는 수년째 자신이 기억상실증인지 모른 채 같은 날을 반복해서 살고 있다. 가족과 이웃들도 그런 루시를 몰래 돕고 있다. 너무 큰 충격을 받아 증상이 악화되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반복되는 루시의 일상에 헨리(아담 샌들러 분)가 끼어들면서 상황이 달라지는데 결국 루시는 매일 헨리를 처음 만나 사랑에 빠지고 잠이 들면서 그날의 기억을 모두 잊는다.
그렇지만 기억상실증은 사실 미스터리 스릴러에 더 적합한 소재다. <내가 잠들기 전에>에서 크리스틴(니콜 키드먼 분)의 증상은 매일 아침 아무런 기억도 없이 눈을 뜨는 것이다. 그나마 루시는 사고 직전까지의 기억은 생생한 데 반해 크리스틴은 자신이 누군지조차 알지 못한다. 그렇게 눈을 뜨고 하루를 보내지만 다음날 아침이면 그 전날의 기억 역시 사라져 버린다. 아침마다 똑같은 황당한 상황, 나는 누구이며 옆에 잠들어 있는 남성이 누군지 혼란에 빠진다.
크리스틴은 다양한 사진과 비디오카메라에 녹화돼 있는 영상을 통해 자신이 요즘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를 파악한다. 이 부분은 루시와 유사하다. 그렇지만 루시에겐 하루하루가 새로운 사랑의 시작인 데 반해 크리스틴에겐 하루하루가 악몽이다.
벽에 붙어 있는 사진을 통해 옆에 누워서 자고 있던 벤(콜린 퍼스 분)과 14년 전에 결혼했음을 알게 된다. 벤은 크리스틴이 사고를 당해 머리를 심하게 다쳐서 기억상실증에 걸렸다고 설명해준다. 이것으로 크리스틴은 매일 아침 새로운 일상을 시작한다.
그리고 남편 벤이 출근한 뒤 걸려오는 전화 한 통. 내쉬 박사(마크 스트롱)라는 사람이 전화를 걸어와서 침실 서랍장에 감춰 놓은 비디오카메라를 보라고 얘기한다. 거기에는 매일 크리스틴이 녹화해 놓은 영상이 들어 있다. 이를 통해 현재 자신은 남편 벤 몰래 내쉬 박사에게 치료를 받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거기에는 크리스틴 자신이 남겨 놓은 매우 충격적이면서도 중요한 메시지도 있다. ‘남편 벤을 믿지 말라’는.
영화 <내가 잠들기 전에>는 92분의 비교적 짧은 러닝타임으로 구성돼 있다. 반복되는 크리스틴의 일상을 다루고 있어 조금 지루할 수도 있는 한계를 빠른 전개와 응축된 스토리로 극복했다. 러닝타임 내내 팽팽하게 긴장감을 유지하며 결말을 향한 문을 하나하나씩 열어간다.
@ 초이스 기준 : 영화 <폰부스>를 재밌게 봤다면 클릭
기자는 영화 <내가 잠들기 전에>를 보며 무슨 까닭에서인지 영화 <폰부스>가 떠올랐다. 러닝타임 81분으로 짧은 시간 동안 팽팽한 긴장감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폰부스>가 이 영화가 비슷했기 때문이다. 폰부스라는 좁은 공간을 배경으로 자신이 왜 이런 상황이 놓였는지를 전혀 모르는 <폰부스>의 스튜 쉐퍼드(콜린 파렐 분)와 매일 아침 모든 기억을 잃고 눈을 뜨는 크리스틴의 반복되는 일상 역시 유사한 설정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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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말의 반전이 시시한지 신선한지에 대한 판단은 오로지 이 글을 읽는 독자의 몫인 만큼 거기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겠다. 다만 이 영화는 반전 외에도 평가할 만한 부분이 분명 존재한다. 결말로 다가가는 과정에서의 팽팽한 긴장감, 크리스틴과 관객 간에 생기는 정보의 격차(관객은 영화를 보며 조금씩 다양한 크리스틴의 기억을 알아가지만 크리스틴은 매일 아침 모든 기억이 사라진다)를 활용한 로완 조페의 탄탄한 연출력은 분명 좋은 평가를 받기에 부족함이 없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