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씨의 수사와 검거 과정에서 경찰은 그야말로 총력전을 폈다. 지난 8개월 동안 한 명의 용의자를 검거하기 위해 문경경찰서를 비롯, 제천, 평창, 안동, 영주 등 5개 경찰서에서 70∼80여 명의 인력이 투입됐고, 여기에 DNA검사, 영상데이터베이스 시스템 등 과학수사기법이 총동원됐다. 형사들이 기록한 수사 일지만도 보통 사건의 7∼8배가 넘는 규모였다. 경찰의 조사결과를 토대로 사건의 전말을 추적했다.
범인 S씨는 강도상해, 강간치상 등으로 대구교도소에서 복역하다 지난 3월12일 출소한 전과 5범이었다. 그는 출소 이후 경북 풍기 집에서만 머물렀다. 취업이 용이하지 않았던 탓에 그의 유일한 낙은 포르노비디오였다.
하루 온종일 남녀가 뒤엉켜있는 장면을 바라보며 하루를 보냈다. 아니나 다를까. 결국 그는 끓어 오르는 ‘욕구’를 참지 못했다. 출소한 지 한 달만에 또다시 거리를 배회하며 먹이를 찾는 하이에나처럼 범행 대상을 물색하기 시작했다.
첫 범행은 4월 중순경에 있었다. 문경 소재 여고 기숙사 학생이 표적이었다. 그는 일요일 오후를 D-데이로 잡았다. 대다수 학생들이 집에 가 있는 틈을 이용한 ‘노림수’였다. 그는 경찰로 신분을 위장한 뒤 기숙사로 잠입하는 기지를 발휘했다. 기숙사 수위는 “XX경찰서 형사다. 누군가가 이 학교 기숙사 사감에 대한 비리 사실을 제보해 확인 차 왔다”는 그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다.
그의 예상대로 기숙사 내부는 한적했다. 몇몇 학생들만 각자의 방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복도를 거닐며 각 방 내부를 살피던 그는 한 여학생이 잠이 든 것을 확인하고 문을 살짝 열었다. “소리지르면 죽는다. 입 다물고 내 말대로만 해.” 범인은 방에 누워 있던 이아무개양(17)의 목에 칼을 들이대고 조용히 속삭였다. 그는 바로 이양의 입을 테이프로 막고 끈으로 손을 묶었다. 놀란 이양이 거칠게 저항하자 수 차례 주먹을 날린 뒤 이양을 성폭행했다. 시간은 채 5분도 걸리지 않았다.
이후 S씨는 형의 승합차와 승용차를 번갈아 이용하며 본격적으로 범행에 나섰다. 주로 오전에 차를 주택가에 세워놓고 혼자 집에 있는 부녀자를 노렸다. 특히 아이를 유치원에 데려다주고 귀가하거나 인근 점포에 다녀오는 20대 후반이나 30대 초반 부녀자들의 뒤를 기습적으로 밟아 욕구를 채웠다.
S씨의 범행은 이곳저곳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터졌다. 한 달에 한 번꼴로 문경은 물론, 제천, 단양, 안동 등지로 옮겨 다니며 범행을 저질렀다.
그는 피해자가 곧바로 신고할 수 있다는 점을 우려, 범행 후 도주에 어려움이 있는 아파트나 주택 2층, 3층 거주 부녀자는 건드리지 않았다. 무조건 지하나 1층에 사는 부녀자를 범행 대상으로 삼았다. 범행 시에는 자신의 얼굴이 노출되지 않도록 테이프나 마스크를 이용해 피해 여성의 눈을 가렸다.
▲ 피의자 S씨의 압수품들. | ||
S씨는 경찰 조사 결과 훔친 목걸이, 시계 등을 경북 영주의 K금은방에 팔아넘긴 것으로 밝혀졌다. 절도한 귀금속은 금으로 따지면 무려 1백45돈 정도. 놀랍게도 범인은 금은방 업주가 자신을 절도범으로 오해(?)하지 않도록 1천5백만원을 빌려주기까지 했다.
경찰은 사건이 처음으로 발생한 2003년 4월부터 피해 신고 접수를 받고 수사에 들어갔다. 그러나 용의자가 주도면밀하게 증거를 없애고 여러 곳에서 범행을 저지른 탓에 별다른 수사의 진전을 보지 못했다.
수사 초기부터 사건 관할 문경경찰서는 관내 용의자 49명의 담배꽁초와 모발을 채취해 피해 여성들로부터 나온 정액과 DNA대조 수사를 벌이면서, 도내 동일수법 전과자 1백여 명의 신상과 피해자 진술을 함께 비교 분석했으나 특정 용의자를 찾아내는 데에 실패했다.
경찰이 사건 해결의 실마리를 잡은 것은 지난 12월4일. 이날 경찰청 과학수사과 몽타주반에 출석한 피해 여성 조아무개씨(28)의 증언이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했다. 조씨의 증언대로 만들어진 3백여 명의 몽타주 가운데 피해자들의 진술과 외모가 맞아 떨어지고 비슷한 수법으로 범행을 저지른 전과자를 추적하다보니 어느새 용의자는 15명선으로 압축됐다.
이때부터 경찰은 몇 갈래로 수사팀을 나누어 15명에 대한 미행에 들어갔다. 그즈음 경찰은 S씨에게 돈을 빌렸다는 금은방 업주의 제보를 받고 S씨를 가장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했다. 경찰은 주변인들을 대상으로 집중 탐문수사를 벌이면서 풍기에 위치한 S씨 자택 잠복 수사에 돌입했다.
그 사이에도 S씨의 범행은 계속됐다. 범인은 12월10일 안동에서 여학생 두 명을, 12월12일에는 40대 주부를 강간하고 현금과 금품을 강취했다.
하지만 S씨는 이틀 후 경찰에 꼬리를 잡혔다. 12월14일 오후. 잠복 중이던 수사진들이 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족적과 같은 신발을 S씨 집에서 목격한 것이었다. 수사팀은 다음날 오전 7시45분 S씨를 긴급 검거하고 증거물을 압수했다. 사건 8개월 만에 올린 개가였다.
경찰은 S씨에게서 현금 1천3백79만원, 귀금속, 시계 등 30점(시가 1천4백만원), 예금통장(1천1백만원), 차용증서 1천만원 1매를 압수했다. 현재 범인은 문경 내에서 밝혀진 범행만을 자백하고 있는 상태다.
그러나 국립과학수사연구소가 지난 12월19일 S씨의 DNA와 안동 제천 평창 등지에서 발생한 강간사건 용의자의 DNA가 일치한다고 통보해옴으로써 문경경찰서는 S씨를 구속하고 여죄를 추궁하고 있다.
문경경찰서 수사과 황재식 경사는 “피의자의 배회처인 부산, 경북, 강원의 전 경찰서에도 공조를 요청, 그 부근에서 발생한 ‘낮털이’ 및 강도·강간 사건에도 S씨가 관련되었는지를 계속 수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발바리의 추억’은 끝나지 않은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