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한 자신의 아내를 치어 죽이기로 했던 공범이 막상 실패하자 남편이 직접 차를 몰아 아내를 치어 죽인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은 “모든 정황과 증인들의 진술이 일치한다”며 이번 사건을 부부가 합의하에 저지른 ‘보험 사기 살인극’으로 종결짓고 있다. 하지만 현지 취재 결과 이번 사건은 여전히 많은 의혹을 남기고 있었다.
광주 남부경찰서는 지난 11일 총 29억원에 달하는 거액의 보험금을 타내고자 교통사고로 위장해 아내 나아무개씨(36)를 살해한 혐의로 남편 유아무개씨(43)와 공범 최아무개씨(35), 김아무개씨(29) 등 3명을 구속했다. 남편 유씨의 진술 등을 통해 경찰이 밝혀낸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유씨 부부는 1999년 10월부터 서울 삼성동에서 식당을 운영하며 초등학교에 다니는 3남매와 평범한 가정을 꾸려왔다. 그러나 경기침체와 광우병 파동 등이 겹쳤고 또 무리하게 끌어다 쓴 은행빚에 사채까지 불어나면서 순식간에 3억여원의 빚을 지고 말았다.
이미 가산을 탕진한 상태에서 부채를 갚을 엄두가 나지 않던 이들은 급기야 보험금을 유일한 해결책으로 선택하기에 이르렀다. 이들은 지난해 8∼9월 네 곳의 보험회사에 아내 나씨 명의로 총 6개의 생명보험 상품에 가입했다. 사망시 총 수령액만 자그마치 29억원.
보험 가입 후 나씨는 고의로 서해안고속도로 중앙분리대를 들이받는 등 세 차례에 걸쳐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지만 번번이 미수에 그쳤다고 한다. 당시 렌트한 차량을 폐차시킬 정도로 큰 사고였지만 이마 부분에 신경이 마비되는 중상을 입었을 뿐 사망보험금을 지급받는 데는 실패했다는 것. 결국 나씨가 남편에게 범행을 제안해왔고 고민 끝에 남편 유씨도 아내의 죽음을 담보로 한 ‘보험 사기극’에 참여키로 하고 최씨와 김씨를 공범으로 끌어들였다고 한다.
지난해 12월28일 유씨 부부는 계획을 실행에 옮기기 위해 고향인 전남 나주로 내려왔고, 뒤이어 합류한 공범 최씨, 김씨 등과 함께 인근 여관에서 범행을 모의했다고 한다. 이 자리에서 나씨는 “교통사고로 위장해 나를 죽인 후 보험금으로 빚을 갚고 아이들을 잘 키워 달라”고 다시 한번 확인했고, 김씨가 자신이 렌트해서 타고온 승합차로 교통사고를 내기로 했다는 것이 유씨의 진술이다. 장소는 나주시 산포면 비상활주로로 정했다.
하지만 막상 범행 당일 밤 김씨가 “도저히 못하겠다”며 발을 빼자, 결국 남편 유씨가 하루를 넘긴 새벽 1시35분쯤 직접 핸들을 잡고 “이왕 시작한 일이니 죽여달라”는 아내를 향해 승합차를 내몰았다고 한다. 범행을 마친 후 유씨는 김씨에게 경찰에 위장자수토록 종용하고 자신은 처제 집으로 돌아가 아무 일이 없었던 것처럼 행동했다는 것.
처음 이들의 범행은 성공적으로 끝나는 듯했다. 신고를 받고 사건 처리에 나선 나주경찰서에서 “내가 교통사고를 냈다”는 김씨의 진술을 인정, 교통사고처리특례법 위반 혐의로 구속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사건이 단순 교통사고로 처리되자 광주 남부경찰서에 익명의 제보자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죽은 나씨가 거액의 보험에 가입되어 있다”는 것. 의혹이 있다고 판단한 남부경찰서는 재수사를 통해 남편 유씨를 추궁한 끝에 결국 그의 자백을 이끌어냈다.
경찰은 보험금을 타기 위해 유씨 부부가 합의하에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결론지었다. 유씨와 공범들의 진술이 일치할 뿐 아니라 심지어는 나씨의 여동생조차도 “언니가 자살하려 했다”고 진술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를 단순한 ‘보험 사기 자작극’으로 서둘러 종결짓기에는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문들이 남아있다는 지적이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먼저 부부가 합의하에 계획적으로 준비해온 범행치고는 사건 진행 과정이 너무 엉성하다는 점이다. 공범이 교통사고를 내기로 한 마당에 굳이 부부가 고향길에 동행해서 의심을 사게 하고, 사람들 눈에 띄기 쉬운 여관에서 일행이 함께 범행을 모의할 필요가 있었느냐는 것이다.
또 범행 장소로 선택한 도로가 매우 인적이 드문 곳이어서 새벽 1시의 시각에 여성 혼자 차량도 없이 지나갈 수 있는 곳이 아니라는 점을 전혀 감안하지 않았던 것도 의문이다.
굳이 교통사고를 위장하려 했으면 보다 적합한 장소가 많았고, 또 그곳은 유씨 부부의 고향이어서 인근 지리에도 밝은 것으로 전해졌기 때문이다. 실제 경찰측 역시 사고 지역에 대한 의심으로 유씨 일당을 강하게 추궁한 끝에 자백을 받아낸 것으로 알려졌다.
유씨와 공범들과의 관계에도 석연치 않은 부분이 많다. 최씨는 유씨 부부가 운영하던 식당 인근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단골손님으로 알려졌다. 또 위장자수한 김씨는 최씨가 잘 아는 후배로 유씨에게 소개해준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들이 어떤 경위로 범행에 동참하게 된 것인지, 무슨 보상을 받기로 한 것인지는 제대로 밝혀지지 않고 있다.
특히 나씨의 사망보험금 계약 조건을 보면 29억원 중 12억원을 최씨가 수령하도록 되어 있어 의문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 1년 전 보험 가입시부터 최씨를 남편과 똑같이 보험 수령자로 정한 것도 의문이거니와 설사 ‘범행 사례비’라고 하더라도 실제 최씨가 담당한 역할에 비해 너무 큰 금액이기 때문.
경찰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이렇다할 설명을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보험가입 당시부터 이런 계약을 맺은 상태였다면 ‘나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노력하다 미수로 돌아가자 범행을 제의해왔다’는 앞선 진술 내용과도 상당부분 어긋나 있다.
결과적으로 부부가 함께 사업에 실패한 책임을 왜 정작 아내 혼자서 다 감당하려고 했는지에 대해서도 유씨의 설명은 너무나 어색하다. “아내가 평소에도 남자같은 성격으로 집안을 리드했다”는 것.
상황이 이렇다보니 “경찰이 유씨 등의 진술을 바탕으로 사건을 너무 급하게 마무리지으려 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안성모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