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 맡으러 제주도나 갈까” 농담인데 참 슬프다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까치 담배 있어요?”
종로의 한 가판대. 기자가 개비(까치) 담배를 주문하자 할머니가 가볍게 옆으로 눈길을 준다. 가판대에 놓여 있으니 알아서 뽑아가라는 얘기. 한 개비를 뽑고 가격을 묻자 “300원”이라는 짧은 답변이 돌아왔다. 거래는 순식간. 기자 앞으로도 몇 명의 손님이 다녀갔는지, 나란히 놓인 네 개의 담뱃갑 중 일부는 비어 있었다. 개비 담배는 모두 국산담배였다. “혹시 외국 담배는 취급하지 않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어르신들이 좋아하는 것만 취급해서 그려”라는 답이 돌아왔다.
신년 담뱃값 인상 이후, 개비 담배는 종로뿐만 아니라 대학가, 고시촌이 밀집한 신림 지역에서도 높은 인기를 보이고 있다. 신림동 한 가판 판매상은 “고시생들이 무슨 돈이 있겠나. 고시촌에는 거의 담뱃값이 밥값보다 비싸다. 개비 담배를 한동안 팔지 않다가 올해 들어 찾는 사람들이 많아 다시 개시했다”라고 전했다. 복수의 가판대 판매상에 따르면 개비 담배는 지난 몇 년간 판매는 조금씩 해왔다고 한다. 하지만 올해 들어 이렇게 수요가 늘어날지는 예상을 못했다는 반응이 대다수다. 앞서의 가판상은 “예전에는 한 갑 정도를 뜯고 팔았다면 요즘은 3~4갑 정도를 뜯고 파는 상황이다. 하루에 15명씩은 오는 것 같다”라고 전했다.
개비 담배는 지역마다 조금씩 시세도 다르다. 한 마디로 ‘정가’가 없는 것. 어떤 곳은 200원에, 어떤 곳은 300원에 판다. 하지만 서글픈 것은 개비 담배마저 시세가 올랐다는 사실이다. 평소에 개비 담배를 자주 이용했다는 애연가 김 아무개 씨(66)는 “몇 년 전만 해도 개비 담배가 한 대에 50~100원밖에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점점 오르더니 작년까지만 해도 200원이었는데, 올해는 300원이다. 점점 살기 팍팍해진다”라며 한숨을 쉬었다.
개비 담배가 부활한 데 이어, ‘봉초 담배’도 부활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봉초 담배는 잘게 썬 담뱃잎을 직접 종이에 말거나 곰방대에 넣어서 피우는 담배로, 지난 1970년 전매청(현 KT&G)에서 판매하다가 수지가 맞지 않는다며 생산 중단했다. 봉초 담배 부활 조짐은 최근 기획재정부에서 “저소득층 노인들을 위해 생산을 검토하고 있다”고 언급했다고 전해지면서 더욱 점화됐다. 농촌 지역 노인들 사이에서는 ‘곰방대’가 다시 부활했다는 얘기도 있다. 특히 잎담배 농사를 짓고 있는 원주시, 홍천군, 횡성군 지역에서 이 같은 현상은 더욱 두드러지고 있는 상황이다.
젊은 층 사이에선 말아 피우는 ‘롤링타바코’가 인기다. 20개비 당 평균 2500원이다.
노인들이 곰방대라면, 젊은 층에는 ‘롤링타바코’(rolling tobacco)가 있다. ‘수입식 조립담배’로 직접 말아 피는 롤링타바코의 시세는 20개비 당 평균 ‘2500원’이다. 인상된 담뱃값에 비하면 훨씬 저렴하기에 20~30대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서울 강남에 위치한 롤링타바코 한 점주는 “롤링타바코는 사실 인터넷 카페도 만들어질 만큼, 일부 마니아층에서 인기였는데 최근 들어 신규 손님이 급격히 늘어났다”며 “보통 연초 20g이면 5000원이고, 2갑 정도 나오는데 좀 많이 말다보면 3갑까지도 가능하다. 훨씬 경제적인 셈”이라고 전했다. 다만 롤링타바코는 필터, 담배 종이 등 다소 초기 비용이 들어가는 게 단점으로 꼽힌다.
이처럼 각 연령층을 걸쳐 ‘담배 난민’이 속출하는 가운데, ‘담배 암거래’를 시도하는 ‘얌체족’도 등장했다. 중고 거래 인터넷 사이트에는 “담배 판매합니다”라는 게시글이 속속 업로드됐다. 한 판매자는 “담뱃값 인상 된다고 해서 가끔 한 보루씩 사놨다”며 “올해 초 담배 끊어 볼 생각으로 처분한다”라는 글을 게시했다. 판매자가 제시한 해외 담배 가격은 10갑에 4만 원. 저렴한 가격은 아니지만 “당장 사고 싶다”며 댓글이 쇄도했다. 하지만 이 같은 행위는 불법이다. 담배 판매자가 아닌 사람이 담배를 판매할 경우 6개월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지기 때문. 경찰 사이버수사대 한 관계자는 “신년부터 사재기한 담배를 온라인 사이트에 판매한다는 신고가 속속 들어오고 있다. 인터넷뿐만 아니라 암시장 쪽에 유통하는 부분도 꾸준히 단속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무엇보다 이번 담배 인상에 가장 큰 전쟁을 벌이는 곳은 단연 ‘편의점’이다. 편의점 업계는 연말부터 담배를 사재기 하려는 소비자와 끊임없이 갈등 관계를 빚어왔다. 하지만 소비자 측은 “편의점이 담배를 비축해놨다가 신년 때 비싼 값으로 팔려고 한다”라는 의심의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신년 들어서 편의점은 ‘사재기 손님 경계령’이 떨어지기도 했다. 지난해 담배를 사재기해 온 손님들이 다시 담배를 대거 환불하려고 찾아오는 경우가 속속 있다는 것. 때문에 기자가 찾아 본 곳곳의 편의점에는 ‘환불 금지’ 혹은 ‘영수증을 제시해 주세요’라는 안내 문구가 눈에 띄었다. 종로의 한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은 “환불할 때 혹시 몰라서 담배 제조일자까지 확인하는 게 습관이 됐다”라고 전했다. 담배 제조일자가 지난해 것이면 사재기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담배 제조일자 확인은 애연가들한테도 마찬가지다. 직장인 김 아무개 씨(30)는 “예전에는 몰랐는데 편의점에서 담배를 살 때 담뱃갑 아래쪽에 제조일자를 확인하게 된다. 만약에 지난해 것이면 백퍼센트 편의점에서 창고에 비축해 둔 담배이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이처럼 편의점과 애연가의 ‘눈치 싸움’은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한편 ‘담뱃값 인상 풍속도’는 지역마다 차이가 있다. 제주도와 인천공항 등 ‘면세 지역’에서는 담뱃값이 그대로이기에 최근 애연가들 사이에선 “제주도로 바람이나 쐬러 가자”는 말이 우스갯소리처럼 돌고 있는 상황이다. 반면 장병들이 모여 있는 군 지역은 암울한 분위기가 팽배하다. 평균 월급이 15만 원선인 군인들에게 인상된 담뱃값은 굉장한 부담이 되기 때문. 한 군 관계자는 “군대에서 금연 열풍이 불고 있긴 하지만 여전히 담배는 스트레스를 받는 군인들에게 위안이 되기 마련이다. 군대에서만큼은 면세 가격을 적용하는 방침이 필요하다”라고 전했다.
박정환 기자 kulkin85@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