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가해자 분리 안 된 사이 ‘2차 가해’ 논란…피해자 속옷서 신원 미상 남성 DNA 발견돼 대조 중
#피해자 속옷서 발견된 DNA, 실마리 될까
지난 10월 31일 군인권센터는 공군 제17전투비행단에서 발생한 강간미수, 강제추행 사건을 고발 조치했다. 가해자로 지목된 A 대령은 공군사관학교 48기 출신 파일럿이며, 해당 부대 소속 전대장이다. 그는 지난 3월 임관해 4월 자대 배치를 받은 피해자 B 소위의 직속상관인 것으로 알려졌다. A 대령은 평소 B 소위를 포함한 하급자들을 포옹하는 습관이 있었고, B 소위는 이러한 행위가 불편했지만 다른 부하들에게도 똑같이 포옹하기 때문에 이를 감내했다.
하지만 지난 8월 8일 회식이 끝난 뒤 A 대령이 단순히 포옹하는 것을 넘어 볼에 뽀뽀를 하자 B 소위는 위기 의식을 느끼기 시작했다. B 소위는 이후 회식을 피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10월 24일 갑자기 회식이 정해졌다고 한다. A 대령과 B 소위를 포함한 5명은 이날 부대 영외에서 회식을 했고, B 소위는 술에 취할 경우 또다시 강제추행을 당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일부러 술을 버리기도 했다.
A 대령은 회식에 참여한 인원들에게 2차를 가자고 제안했는지, 이를 불편해 했던 한 하급자가 B 소위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B 소위는 하급자를 돕기 위해 A 대령을 직접 관사에 데려다 주겠다며 술자리를 마무리했다. A 대령은 관사로 가는 과정에서 즉석사진 부스와 택시 등에서 B 소위의 신체를 강제로 만진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A 대령은 B 소위에게 “공군에 계속 있게 되면 3번은 나를 보게 될 것”이라며 압박했다.
A 대령은 B 소위에게 “한잔 더 하자”하며 자신의 관사로 갈 것을 요청했고, B 소위는 강압적인 분위기 속에서 A 대령의 관사 안으로 들어갔다. B 소위는 이때 회식 자리에 있었던 다른 간부들에게 도와 달라며 문자를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A 대령은 자신의 관사로 돌아가겠다는 B 소위를 강간하려 했고, B 소위는 “보내주십시오, 그만하십시오. 저는 전대장님 딸과 세 살 차이밖에 안 나는 또래입니다. 아내분도 있지 않습니까”라며 저항했다.
A 대령의 강간 시도는 계속됐고, 당황한 피해자는 신발도 제대로 신지 못하고 도망쳤다. 이튿날인 10월 25일 A 대령의 행동에 두려움을 느낀 B 소위는 휴가를 상신한 뒤 다른 상관에게 피해 사실을 보고했다. 10월 31일 B 소위와 대면상담을 진행해 사건의 진상을 파악한 군인권센터 측은 기자회견을 열어 A 대령에 대한 즉각적인 구속을 촉구했다. 또한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에 A 대령에 대한 고발장을 제출했다.
그렇지만 A 대령의 혐의를 입증할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그는 관련 혐의를 대부분 부인하고 있다. 관사 내에는 CCTV가 없고, B 씨가 남긴 사진 등에도 현장 상황이 제대로 담기지 않았다. 경찰에 따르면 두 사람이 이용한 택시 블랙박스 영상은 보관 기관이 만료돼 포렌식을 맡긴 것으로 알려졌다. A 대령은 “성폭행을 시도한 사실이 없다”면서 강간미수 혐의를 전면 부인했고, 강제추행 혐의와 관련해서도 “(사진 부스에서) 포즈를 취하는 과정에서 있었던 일”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최근 새로운 증거가 발견돼 사건 수사의 물꼬가 트일 것으로 기대된다. 12월 5일 충북경찰청 여성청소년범죄수사계는 사건 당일 B 소위의 속옷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분석 의뢰해 신원 미상 남성의 DNA를 확보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해당 DNA 정보가 A 대령의 것과 일치하는 것으로 확인될 경우 그에 대한 구속영장을 신청할 방침이다. 경찰 관계자는 “현재 국과수에서 DNA 대조를 진행 중이지만 자세한 사항은 수사 중이기 때문에 밝힐 수 없다”고 말했다.
#공군 향한 비난의 화살
2021년 5월 공군에서는 제20전투비행단에서 근무하던 고 이예람 중사가 상관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한 사실을 신고했다가 가해자는 물론 다른 상관들로부터 회유와 협박 등 2차 가해에 시달리다가 극단적 선택을 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으로 군 최초 특검이 실시되고 군사법원법이 개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약 3년이 지난 뒤 발생한 이번 성폭행 미수 사건에서도 공군의 미온적인 대처와 2차 가해 방조 등 과오가 되풀이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가장 논란이 된 부분은 A 대령과 B 소위의 즉각적인 분리가 이뤄지지 않았고, 그사이 A 대령이 회식에 참석했던 간부 등에게 전화하거나 사무실로 불러 면담을 강요했다는 점이다. 군인권센터와 군인권센터 부설 군성폭력상담소가 제보 및 B 소위의 변호인 등을 통해 확인한 바에 따르면, 사건 발생 이튿날인 10월 25일 공군 성고충예방대응센터는 “나도 정신적 트라우마가 있다. 토요일(10월 26일)에 이동하고 싶다”는 A 대령의 요청을 받아들여 피·가해자 분리를 뒤늦게 한 것으로 드러났다.
10월 26일 부대에 출근한 A 대령은 10월 24일 회식에 참석했던 간부들에게 “너네가 봤을 때 (B 소위가) 많이 취했다고 생각했지?”, “(B 소위는) 좀 업되긴 했지만 나는 그렇게 많이 안 취했다고 생각하는데, 너도 그렇게 봤지?” 등 B 소위가 만취래서 벌어진 사건이라는 식으로 몰아가는 질문을 했다. 군인권센터에 따르면 A 대령에게 질문을 받았던 한 간부는 “본인(A 대령)한테 유리한 걸 얘기하라는 것도 웃기고. 그런 위증의 말을 우리한테 한 거 자체가 일단 미스”라고 반응했다고 한다.
A 대령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일부 간부들에게 “전대장실로 들어오라”고 명령해 대면 면담을 강요하기도 했다. 회식에 참석했던 간부를 포함해 관련 증언을 할 수 있던 부대원들이 면담 대상이었다. 면담 과정에서 A 대령은 “B 소위가 술에 취해 유혹을 했다”며 이른바 ‘꽃뱀’ 취급을 했다, 또한 본인에게 유리한 답변을 부하들로부터 유도한 뒤 이를 녹취해 증거 자료로 사용하겠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김숙경 군성폭력상담소장은 “피해자는 성폭력 피해자로서 공군으로부터 제대로 된 보호와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느낀다”면서 “공군에 대한 불신이 팽배한 상태다. 이는 2차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지 않은 공군 책임이 크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군성폭력상담소는 공군이 강간미수 사건이 발생한 7일이 지난 10월 31일에서야 보직해임 심의위원회를 열어 11월 1일 A 대령을 전대장에서 보직해임 했다는 늑장대응 의혹도 제기했다.
공군은 “지속적인 성인지 교육, 피해자 통합지원체계 구축 등에도 불구하고 이번 사건이 발생해 유감”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이어 “사건 접수일인 10월 25일 관련 법규에 따라 행위자 분리를 위한 파견 인사 조처, 2차 피해 방지 고지 등 관련 조치가 즉각 이뤄졌다”며 “이러한 조치에도 불구하고, 행위자(A 대령)가 회식 참석자들과 접촉한 것에 대해 엄중하게 인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은 “공군은 통렬한 반성은커녕 ‘할 만큼 했다’는 식의 입장만 표명했다”면서 “공군의 입장대로 사건 당일 공군참모총장에게 보고됐다면, 가해자의 핑계를 수용해 늑장 조치하여 2차 가해가 이뤄지게 된 점에 대해 공군 참모총장의 책임이 있다는 것을 공군이 스스로 인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11월 6일 구성된 공군본부 특별감찰팀과 관련해 “사건 접수일에 이미 (특별감찰팀이) 구성됐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손우현 기자 woohyeon1996@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