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왼쪽)와 이명박 서울시장. | ||
열린우리당의 이 시장에 대한 공세가 이 시장의 인지도를 끌어올리며, 이 시장을 일약 정국의 주요 인물로 부각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박근혜 대표의 지지도는 계속 떨어지는 추세를 보이면서 한나라당 대권게임을 혼돈으로 몰아넣고 있다. 한나라당 일부에서는 열린우리당이 이명박 시장을 띄워 박근혜 대표를 견제하려는 의도라고 분석하고 있어 주목된다. 열린우리당이 이 시장을 정국의 파트너로 삼으면서 박 대표를 무력화시킨다는 내용이다. 열린우리당의 이이제이 대권전략이 움직이고 있다는 분석이다.
1일 오전 박 대표와 이명박 시장, 손학규 경기지사, 안상수 인천시장 등이 한꺼번에 만났을 때 묘한 분위기는 이 같은 상황을 뒷받침한다.
김덕룡 원내대표가 이 시장에게 “올해 최고의 국정감사 스타가 이 시장”이라고 농담반 진담반으로 얘기하면서 자연 대화의 주제는 이 시장으로 옮겨갔다. 이 시장은 아예 열린우리당이 국회에 부르면 부지런히 출석하겠다고 말했다. 열린우리당의 공세의 적극 대응한 것이다.
실제 서울시 관제데모를 둘러싼 여당과 서울시의 공방에서 최대 수혜자는 이명박 시장이라는 게 중론이다.
이 시장은 올 여름만해도 교통체계개편의 비난 여론 등이 겹쳐 최악의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잇따라 터진 발언 실수(교통체계 개편을 이해못하는 서울시민이 문제다. 서울시를 하느님께 봉헌한다 등)로 설상가상의 국면이었다. 몸무게가 3kg 이상 빠질 만큼 고민이 깊었다.
이런 가운데 9월20일 이부영 열린우리당 의장이 서울시의 관제데모 의혹을 전면 제기하고 나섰다.
관제데모 논란은 장기적으로 여권에게 득이 되지 못하는 공방이다. 서울시민의 70%가량이 행정수도 이전에 반대하는 가운데, 서울시장이 반대 목소리를 내지도 못한다는 말인가. 일반 시민들은 심정적으로 서울시장의 행동을 그다지 큰 문제라고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여권이 아무리 이 시장을 공격해봐야 수도이전에 대한 반대여론을 돌려놓기는커녕 찬반논란을 가중시킬 뿐이다. 찬반논란이 확대되면 될수록 찬성하는 표가 결집되지만, 반대하는 표도 역으로 결집된다.
결국 수도이전을 둘러싼 찬반논란은 이 시장이 최대의 수혜자가 될 수밖에 없다. 박근혜 대표는 이미 대안론을 펴면서 강력 반대의 뜻을 접었다.
열린우리당의 관제데모 의혹제기는 이러한 이 시장에게 날개를 달아준 격이다. 이 시장이 공개적이고 광범위하게 반대투쟁에 나설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해준 셈이다.
아니나 다를까. 이 시장은 정면대응에 나섰다. 이 시장은 지난달 24일 서울시의회의 수도이전 반대운동에 대해 서울시 예산을 공식적으로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이 시장은 이날 “서울시의회가 예산을 지원하지 않으면 시장에게 책임을 묻겠다고 나섰는데 어떻게 하겠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이 시장은 “수도를 빼앗기는데 시장이 눈만 껌뻑껌뻑하고 있으면 시민들이 가만히 있겠느냐”며 “예산은 시의회 소관이니까 그렇게 될 것”이라고 말해 수도이전 반대운동에 대한 서울시 예산 지원 의사를 분명히 했다.
이 시장은 또 “세금 대부분이 서울과 수도권에서 걷힌다. 정부가 수도이전을 반대하는 국민들의 세금을 걷어다가 수도이전 홍보에 쓰고 있는 꼴”이라며 수도이전 반대운동에 대한 서울시의 예산 지원의 정당성을 강조했다.
때마침 열린우리당은 한나라당이 수도이전에 대한 대안 당론을 제대로 채택하지 못하자 박 대표와 이 시장 세력간의 대권싸움탓이라고 몰아붙였다. 이 시장을 박근혜 대표의 대항마로 확실히 세워준 것이다.
한나라당 내에서는 이 시장을 도와야한다는 여론이 형성되고, 비주류들은 이 기회에서 수도이전 반대투쟁을 통해 이 시장편에 가담할 수 있게 됐다.
한나라당에서 박 대표를 엄호하는 세력은 급속히 빠지고 있는 반면, 이 시장에 대해선 본회의장에서까지 엄호발언이 쏟아지고 있다. 한나라당이 박근혜당이 아니라 이명박당이 됐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한나라당은 수도이전 문제를 두고 분열돼가고 있는 것이다.
열린우리당은 수도이전 문제에 대해 이 시장을 의도적으로 끌어들여왔다. 수도이전 당론 채택 실패를 대권투쟁탓이라고 몰아붙일 만큼 틈나는 대로 이 시장을 링위로 몰고왔다.
과거 김대중, 김영삼 전 대통령 등이 정권의 공격을 받을수록 부각됐다. 더 많이 공격을 받은 사람이 정국의 중심인물이고, 야권의 주도권을 쥐게 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 시장을 부각시키는 열린우리당의 의도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람은 손학규 경기지사다. 자칫 수도이전 반대투쟁의 결실을 이 시장이 독차지할 경우 자신의 존재는 미미해질수 있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표의 대항마가 이 시장으로 굳어질 수록 손 지사는 설땅이 없어진다.
손 지사가 부랴부랴 “수도이전 문제를 국민투표로 결정하자”고 주장하고 나선 것은 이 때문이다. 이 시장과 차별화를 꾀하면서 정국의 최대 이슈에 자신도 편승하기 위한 의도다.
여권과 한판 싸워야 한다고 주장해온 한나라당의 주전파들은 이 시장 주변으로 몰리고 있다. 일부 언론을 중심으로 한 강경 보수파들도 자연스레 이 시장 노선에 가까워졌다.
박 대표 지지도는 최근 한 달 동안 지속적으로 빠지고 있다. 9월 초만 해도 60%의 지지도를 보였으나 최근 50% 초반으로 떨어졌다. 가장 최근인 9월 말 MBC 여론조사에서 박 대표 지지도는 52%였다. 언제 50%대 지지가 떨어질지 모른다.
열린우리당은 절반의 성공을 거둔 셈이다. 자칫 이 시장을 너무 키우는 것도 화근이 될 수 있는 법. 열린우리당은 다시 이 시장을 국감증인으로 채택하려는 방침을 철회했다. 이 시장이 어느 정도 부각되면 이 시장의 약점도 다시 나오게 될 것이다. 열린우리당은 힘들이지 않고 야권의 두 거물을 쓰러뜨릴 수 있다는 계산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
이제 본격적으로 박 대표와 이 시장의 한판대결을 유도해놓고 열린우리당은 슬쩍 빠져나가고 있는 형국이다. 그래서 한나라당의 대권게임은 더욱 흥미롭게 진행돼가고 있다.
한편 여권 일각에서는 ‘이 시장 키우기’가 돌이킬 수 없는 악수가 될 수 있다는 분석 아래 우려의 목소리도 내고 있다.
이필지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