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지마 협박범 직업이…‘오, 신이시여!’
엘리트 성직자인 데이비드 아지미언(왼쪽)이 유명 토크쇼 진행자 코난 오브라이언(오른쪽)을 오랜 기간 스토킹한 것으로 밝혀져 충격을 주었다.
2010년부터 <코난>이라는 쇼를 진행하고 있는 코난 오브라이언은 서른 살에 데이비드 레터맨이 이끌던 <레이트나잇> 쇼를 이어받으며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때가 1993년. 초기엔 레터맨과 비교되며 위기를 겪었지만, 2009년 떠날 땐 레터맨 못지 않은 명성을 얻게 되었다. 하버드대학 시절부터 코미디에 심취했던 그는 <새터데이나잇라이브> 작가와 TV 애니메이션 시리즈 <심슨 가족>의 프로듀서를 거쳐 토크쇼 진행자가 되었다. <레이트나잇> 쇼에 이어 2009년엔 <투나잇쇼>를 잠깐 맡기도 했고 2010년부터 자기 이름을 간판으로 건 쇼의 호스트가 되었다. 그의 코미디는 약간 어색한 구석이 있으면서도 자기 비하적인 스타일로 유명했으며, 때론 외설적이면서도 괴짜 같은 면을 드러내기도 했다. 데뷔 이후 승승장구하던 그는 에미상 시상식 사회자로도 유명하며, 32개 도시를 돌며 코미디 투어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에게도 위기가 있었다. <레이트나잇> 쇼를 진행하던 2006년의 일이었다. 그는 어느 성직자에게 14개월 동안 편지를 받고 있었다. 팬레터는 아니었다. 종교를 권유하는 전도 편지도 아니었다. 협박 문구들이었고 성직자는 다름 아닌 스토커였다. “당신의 사제 스토커로부터”(your priest stalker)라는 문장으로 마무리되는 편지의 발신자는 데이비드 아지미언. 보스턴 교구의 신부였고, 나중에 밝혀진 바로는 코난 오브라이언을 따라다니며 이탈리아와 캘리포니아 등에서도 편지를 보냈던 인물이었다. 그는 오브라이언의 부모와 접촉하려고도 했고, 때론 죽이겠다는 협박도 있었다. 이유는 딱히 없었다. 물론 섬뜩한 유머 같은 건 더욱 아니었다.
신부는 오브라이언을 만나려 했다. 그는 실행에 옮겼다. 당시 <레이트나잇> 쇼는 뉴욕의 록펠러센터에서 진행되고 있었는데, 아지미언은 그곳으로 무작정 갔다. 가기 전에 보낸 편지엔 “나는 지금까지 시공간을 넘나들며 너를 쫓아왔다. 이번에 너를 만나러 간다. 당신이 방청석에 앉아 있는 나를 알아 봐 주길 바라는 희미한 희망을 가지고”라고 썼다. 하지만 방청권이 없는 그는 스튜디오에 들어가지 못했고, 건물 정문에서 경비에게 붙잡혔다. 사실 이전에도 무단으로 들어가려다 적발된 적이 있던 아지미언은 결국 경찰에 넘겨졌다. 2007년 11월의 일이었다. 2006년 9월부터 시작된 스토킹은 그렇게 허무하게 막을 내렸다.
그는 왜 오브라이언을 스토킹했을까? 명확하겐 알 수 없지만, 가장 직접적인 이유를 들자면 그가 당시 조울증을 앓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은 ‘성직자’라는 후광에 눈이 멀어 그의 심각한 상태를 알아채지 못했다. 그의 아버지는 2500달러의 보석금을 내고 구치소의 아들을 데리고 가면서 기자들에게 “약간의 정신적 문제가 있지만 감옥에 가둘 일은 아니”라고 말했다. 그의 교구 사람들도 아지미언을 감싸고 돌았다. 아지미언의 멘토였던 존 해넌 신부는 “그는 좋은 성직자였다. 단지 정식적인 어려움을 조금 겪고 있었을 뿐”이라고 말했다. 신도들의 증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사람들은 아지미언이 매우 뛰어난 성직자였고, 감동적인 설교로 유명했다고 말했다. 어떤 신도는 아지미언의 뛰어난 유머 감각을 언급하며 “코난 오브라이언보다 웃기는 사람”이라고 했다.
흥미로운 건 아지미언의 전력이었다. 1961년생인 그는 1963년생인 코난 오브라이언과 함께 1980년대 초에 하버드 대학을 다닌 적이 있었다. 학창 시절에 학교에서 꽤 유명했던 코난을 아지미언은 알고 있었다. 당시 아지미언도 코미디언이 꿈이었고, 그의 다소 건조한 톤의 유머는 나름 스타일로 굳어가고 있었다. 추론하자면, 아지미언은 어쩌면 코난을 자신의 라이벌로 생각했을지도 모르는 일. “이것이 당신이 당신의 가장 위험한 팬을 대하는 방식인가? 당신은 나에게 큰 빚을 지고 있어, 친구!”라는 편지의 구절을 본다면, 일종의 과대망상도 느껴진다.
체포 5개월 만인 2008년 4월에 열린 재판에서 아지미언은 결국 자신의 죄를 인정했다. 하지만 결코 누군가를 불안하게 만들거나 공포감을 주려는 의도는 아니었다고 말했다. 그는 95달러의 벌금을 내고 풀려났고, 향후 2년 동안 오브라이언 주변에 얼씬도 해선 안 된다는 명령을 받았다. 그리고 병원에서 치료를 시작했지만, 5개월 후 치료가 필요없다며 스스로 퇴원 수속을 밟아 나왔다. 그가 계속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던 주교 숀 패트릭 오말리 추기경은 아지미언이 명령을 어기고 병원에서 나왔기에, 사제직을 박탈하고 다신 사제로서 일할 수 없다고 발표했다. 결국 하버드 출신의 가톨릭 사제는 자연인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조용히 살아갈 줄 알았던 그는 다시 한 번 매스컴에 이름이 오르내렸다. 2010년 11월, ABC의 보스턴 지역 계열 방송사인 WCVB-TV의 앵커 앤서니 에버렛을 스토킹 한 혐의로 다시 체포된 것. 그는 다시 경찰에 넘겨졌고 다시 정신과 치료에 들어갔다.
김형석 영화칼럼니스트